항암 치료 루틴, 요가
항암 치료를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항암 약물로 인해 몸의 면역수치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에서 독감 같은 바이러스에 걸리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고생하는 것은 물론, 항암 치료 기간도 자연스레 연기된다. 매번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갈 때마다 간호사는 "혹시 몸에서 열이나 거나 감기 같은 거 걸리진 않으셨나요?"라고 묻는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항암 일정은 자연스레 뒤로 밀린다.
하필 영하 10~20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몰아쳤다. 두꺼운 코트를 껴입고 나가도 순식간에 콧물을 훌쩍이게 되고, 외부에 노출된 손가락이나 얼굴은 시리다 못해 깨질 듯 아프다. 그동안 1시간 걷기를 통해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나로서는 이런 낭패가 따로 없다.
집에서 홈트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영 홈트 체질이 아니다. 나의 암 소식을 듣자마자,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올라온 친언니의 짐들을 포함해 집에 물건들이 부쩍 많아진 탓에 운동할 생각조차 안 난다고 할까.
갑자기 요가가 하고 싶어
요가가 생각났다. 정식으로 요가원을 다녀보진 않았지만, 종종 원데이 클래스 형태로 요가 프로그램에 참가해 본 적은 있다. 복싱, 크로스핏 등 고강도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게 요가는 꾸준히 하고 싶단 동기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가를 싫어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가 참가하면 뻣뻣한 몸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는 상쾌함과 요가원에서만 맡을 수 있는 인센스 향과 신비로운 명상 음악, 특유의 나릇나릇함이 좋았다.
왜, 종종 종교를 믿진 않지만 절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처럼, 요가원은 요가를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곳에 들어가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요가는 다른 운동과 다르게 "힐링" "치유"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미드나 외국 영화에서도 살다가 길을 잃었을 때 혹은 큰 병 등에 걸려 절망에 빠진 여자 주인공이 요가를 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부분이 클리셰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에선 상관없이 마음 챙김(Mindfulness)이란 키워드가 오랫동안 웰니스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양인들이 신비하게 여기는 인도철학을 기반으로 한 요가는 마음 챙김을 수행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삶이 바쁘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없다.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여행을 떠나도, 이것저것 해야 할 것 투성이로 나를 수시로 바쁘게 한다. 명상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의외로 매일매일 실행하기가 어렵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 보라는 것은 대단히 추상적으로 들리고, 생산성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선 그저 10분-20분을 시간 낭비하는 느낌이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성공 비법으로 명상이 언급되지만, 우린 이를 쉽게 간과한다.
여전히 바깥에 나가면 영하의 날씨에 손발이 깨질 듯이 저릿하다. (항암치료할 때 대표적으로 겪는 증상이다. 냉장고 등 차가운 곳에 손을 넣거나 차가운 물을 마실 때 순식간에 엄청나게 강한 저림이 온몸으로 퍼진다) 롱 패딩으로 몸을 싸매고 도보 7분 거리에 위치한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원은 작지만, 원장님 1분이 하루 4~5타임 요가를 진행하는 곳이었다. 요가가 끝나면,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갈 수 있는 곳. 요가 등록할 때 왜 요가를 하려고 하는지 구체적인 사연 등을 꼬치꼬치 묻지 않아서 좋았다. 그저, 최근 배 수술을 해서 복부에 힘이 들어가는 동작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고만 언급했다.
거의 입문/초급에 해당하는 요가 프로그램을 수행하는데, 매번 할 때마다 체력과 근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별로 어려운 동작을 많이 하지 않은 거 같은데 다음날 되면 운동한 부위에 근육통이 왔다. 기분 좋은 근육통이었다. 요가를 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점차 회복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사바사나(Savasana)", 소위 말하는 시체 자세이다. 모든 요가 동작이 끝나면, 원래 어둑했던 조명이 더욱 어두워지고, 명상 음악 소리가 살짝 커진다. 매트에 가만히 누워 온몸에 힘을 뺀다. 이때 내 눈도 마치 바닥으로 가라앉듯이 힘을 빼라라는 요가 선생님 말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우리가 잠자는 자세와 동일하지만, 실제로 내가 잠을 잘 때 이토록 바닥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으로 힘을 뺀 적이 있던가.
마치 형태가 없는 젤리처럼 매트에 그대로 녹아든 느낌으로 몇 분간 지속하다가 원장님이 "발가락과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조금씩 움직여 보라"라는 지시에 몸이 조금씩 깨어난다. 그 움직이는 순간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구간이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절정 구간에서 심장과 몸이 분하고 떴다가, 바닥으로 치닿을 때처럼, 몸과 마음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갑자기 뜨는 느낌이랄까.
이름 그대로 시체인 상태에서 다시 깨어나는 셈인데, 문득 요가 자체가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바사나(시체)를 하기 위해 해 왔던 모든 요가 동작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고곤분투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사바사나는 바쁜 일상 중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휴식 같은 개념인 것인데, 난도가 높은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는 단계를 개개인의 성장이라고 한다면, 이 성장을 위해 반드시 우린 중간에 멈춰 휴식을 취해야 함을 요가를 통해 또다시 깨닫는다. 매일 시체 자세를 통해 잠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다음날 성장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 요가 다닌 지, 2개월 차, 여전히 뻣뻣한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요가 초보가 요가원 갈 때마다 설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