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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까지 가서 집순이 생활

로엘피, 콜롬비아 메데진

by 노마


“사진에 수영장이 있던데, 혹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건가요?”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한달 정도 쉬어갈 요량으로, 숙소를 고르던 중 괜찮은 아파트와 수영장 사진을 보고 호스트 로엘피(Roelfi)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로엘피는 내 질문이 인상깊었는지, 첫 날 숙소 체크인하는 날 “오늘부턴 바로 수영할 거냐?”란 질문과 함께 방을 보여주기 전에 수영장 이용시간부터 미리 알려주었다.


전철역에서 로엘피 차량을 타고 오르막길을 굽이굽이 올라간다. 메데인의 도시 광경을 바라보면, 높은 산까지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선 것을 볼 수 있다. 버스로 가는 게 한계가 있어 이들의 주요 대중 교통용 교통수단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이다. 로엘피의 집이 설마 이토록 높은 곳에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진 못했기 때문에 뚜벅이 여행하기엔 글렀다 생각했는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로엘피는 지나가는 마을버스를 보며 “OO번이랑 초록색 버스에서 ㅁㅁ가 적혀있는 버스를 타면 우리 아파트 앞까지 온다”라고 알려주었다. 꽤 커다란 아파트 정문에 도착하니, 경비실에서 차량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준다. 중남미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서 볼법한 현대식 고층 아파트 단지에 머무르는 것은 처음이라,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로엘피는 도시 건설 공학 엔지니어 출신으로 지금은 은퇴 후 제 2의 삶을 즐기고 있다. 이제 스물 살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아내는 현재 미국에 홀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혼을 했는지, 혹은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떨어져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따로 묻진 않았다. 그저, 종종 로엘피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가 최근 아내와 전화통화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언급하는 걸 보아, 사이가 나빠 떨어진 경우는 아니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아파트엔 총 3개의 방이 있는데 과거엔 부부 침실로 쓰였을 로엘피의 안방과 그의 아들 방, 게스트룸이었다. 숙소 소개에 “남자 아들과 살고 있다”라고 언급은 되어있었는데, 그 아들이 나보다 키가 큰 성인 남자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체크인하고 다음 날, 아침에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변기에 앉아 태연하게 나를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빤히 쳐다보는 그를 보고 도리어 깜짝 놀라 “미안하다”고 외치며 문을 닫은게 루이스(Luis)와의 첫 만남이었다.


에미넴을 닮았는데, 특히 빤히 쳐다보면 잘못한 게 없는데 괜히 쫄게 되는 그 눈빛이 닮았다. (변기에 앉아 그 눈빛으로 감정의 동요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에미넴을 상상해보라.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를) 루이스는 대학생으로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대부분 아침에 나가 밤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그가 일찍 오는 날엔, 종종 콜롬비아 슬랭같은 걸 알려주곤 했다. 차가운 인상과 달리, 말을 할 땐 꽤 유쾌했는데, 딱 부족함없이 예의바르게 자란 소년 느낌이었다.


그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외국인 게스트를 스쳐 보낸 탓일까. 한창 재밌게 이해하다가도, 편한 분위기에 의도치 않은 무례를 범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항상 적당한 타이밍에 선을 긋곤 했다. 처음엔 정말 나쁜 욕을 가르쳐 주는 것 조차 꺼려했는데, 내가 괜찮다며 국가별로 나쁜 욕을 수집하고 있다는 이상한 명분을 대며 설득하자 그제서야 “절대 남들에게 쓰지 말고, 누가 이 욕을 하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하고 신신당부하며 콜롬비아의 강도높은 비속어를 알려줬다. 물론, 내가 여행하면서 이 욕을 하거나 들을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저 에미넴 닮은, 이 예의바른 청년이 비속어 사용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집돌이 아저씨와 집순이 여행자

바쁜 루이스보다는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로엘피와 더 가까워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로엘피는 항상 소파에 앉아 TV 뉴스를 틀어놓고 신문을 함께 보고 있거나, 주방 한켠 테이블에 펼쳐놓은 10,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곤 했다. 그 덕분에 퍼즐을 스페인어로 “Rompecabezas”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는데 “머리를 부숴라, 머리를 깨부수게 하는”이란 재미난 뜻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이 단어를 설명할 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머리 아프다는 시늉을 해 잊을레야 잊을 수가 없는 단어가 됐다. 매일 틈날 때 마다 주방을 오가며 퍼즐 조각을 맞추는데, 보통 1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언젠가 그가 마지막 조각을 맞췄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인증 사진을 열심히 찍은 그는 1개월 걸려 애써 완성된 퍼즐을 아무 미련없다는 듯 해체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아깝지 않냐고 묻자 어차피 두뇌 훈련 개념으로 하는 거고 비슷한 취미를 둔 친구와 서로 인증 사진을 공유한 후, 서로 가진 퍼즐들을 교환한다고 한다.


로엘피는 친절한 홈스테이 아버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언젠가 시장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하루는 근처 일주일에 한번만 열리는 파머스 마켓(오일장 느낌)이 있는데, 가고 싶냐고 물었다. 마침, 주말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나는 로엘피를 따라 나섰는데, 그는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아닌 커다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얼떨결에 헬멧까지 받아들고, 바로 내리막길로 진입하더니 꽤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한국의 초여름이 생각나는 날씨였는데,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느끼는 바람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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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스마켓은 큰 규모라기 보단, 동네 플리마켓 수준으로 작은 규모였다.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나 과일, 계란 등을 바닥에 깐 천 위에 두고 파는 형태였는데, 우리나라처럼 일정량을 미리 소분해놓고 가격을 붙여 놓는 게 아니라, 원하는 수량만큼 바구니에 넣으면 품목별로 무게를 재서 가격을 매겼다. 로엘피는 “이 채소 뭔지 알아? 한국에 있니?”하면서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스페인어로 어떻게 부르는지 가르쳐주었다. 그 중 거대한 홉(맥주 원료로 쓰이며, 쓴 맛과 아로마를 냄)처럼 생긴 과일이 하나 있었다. 연두색의 울퉁불퉁한 녹색 표면을 가진 거대한 솔방울처럼 생기기도 한 이 과일은 아논(Anón) 혹은 슈가애플이라고 불린다. 훗날, 대만에서 석가를 보고, 이 아논이 떠올라서 알아봤는데 같은 과의 과일이라고 한다.

IMG_2112.JPG 소규모 파머스마켓

당시엔 야채인지 과일인지도 몰랐을 때라, 처음 본다고 하니 로엘피는 “그럼 이거 가서 맛봐”하며 2개를 담았다. 이 파머스 마켓은 유기농이나 품질이 훌륭한 신선식품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곳이라며, 대형마트에 가면 동일한 퀄리티를 1.5배 이상 가격을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서로 즐겁게 인사하고 안부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웠다. 저울에 우리가 구매한 식품들을 일일이 달며 가격을 수기 계산하는 아저씨는 평소엔 로엘피가 담지 않던 아논을 집더니 “이 아가씨를 위한 과일인가?”하더니, 저울에 올리지 않고 바로 로엘피에게 건넸다. “콜롬비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란 인사를 하며 이들은 나에게 달콤한 선물을 건넸다.


집순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아파트 단지 내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 피트니스 센터 구비된 게 마음에 들었다. 야외 수영장인데, 햇빛이 좋은 날엔 다들 수건 한 장 들고나와 수영장 옆 바닥에서 태닝하곤 했다. 사람들이 베란다에서 수영장을 내려다보는 형태라 처음엔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홀로 수영하는 것이 괜히 부끄러웠는데, 비키니 끈까지 풀며 태평하게 누워있는 여자들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IMG_1388.JPG 매일 독차지 했던 단지내 수영장

집에서 일하다가 답답하면 아래로 내려가 1시간동안 수영하곤 했는데, 평일 오전엔 거의 수영장을 독차지 할 수 있어서 종종 배영 자세에서 하늘을 보며 물에 둥둥 떠있노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멕시코에서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이 곳까지 오는 동안, 조금씩 쌓여왔던 긴장감들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항상 떠돌아다니는 역마살 여행자에게도, 가끔은 집순이 모드를 하고 싶을 때가 찾아온다.

IMG_1384.JPG 베란다에서 보는 메데진 야경

로엘피의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베란다의 해먹이었다. 만약 이 해먹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지독한 집순이가 되진 않았을 거 같다. 일단 테라스에서 보는 뷰가 상당히 좋다. 산 위에 위치한 12층 아파트에선 저 멀리 산들을 가득 메운 집들을 전망대처럼 볼 수 있었는데 특히 밤이되면 화려한 야경을 자랑한다.


IMG_1383.JPG 베란다 해먹

낮에는 차를 뜨겁게 우려, 커다란 머그컵에 담아 해먹 옆에 두고 글을 쓰곤 했다. 몇시간이고 해먹에 비스듬히 앉아 있으면 분명 허리 건강엔 좋지 않을 게 뻔하지만, 해먹이 주는 안락함과 고층에 위치해 종종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곳에 있다보면 전망 좋은 카페나 바 등이 생각나지 않았다. 밤에는 차가운 맥주를 꺼내, 산 위에 쏟아진 별세계를 연상케 하는 야경을 틈틈이 바라보며 추리소설을 읽곤 했다.


메데진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 그 이름


수영장과 해먹, 이 두가지는 분명 나를 집순이로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바깥 세상에 안나간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메데진의 주요 여행지를 방문하곤 했는데, 유독 페르난도 보테로 광장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드는 날이 있었다.


콜롬비아 메데인 시내 플라자 산 안토니오(Plaza san antonio)엔 페르난도 보테로의 볼륨감 있는 '새' 동상 2개가 나란히 서있다. 독특한 것은 왼쪽에 있는 새는 몸통이 뻥하고 뚫린 상태이고 오른쪽에 있는 새는 온전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기구한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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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90년대에는 드라마 <나르코스>에 나오는 것처럼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실상 메데인을 좌지우지하던 시기였다. 하루에도 20~30명이 죽어나갔고, 메데인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그들이 설치한 폭탄과 총으로 죽음을 맞이할까 봐, 매일매일 벌벌 떨면서 살아야 했다. 경찰과 군인, 심지어 대통령마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그야말로 메데인 사람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메데인 사람들은 이곳에 온 여행객들이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언급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뿐 아니라, 지금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메데인에 여전히 "위험한 도시"란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이름을 부르는 것도 꺼려해서 워킹 투어 가이드는 "앞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때 마다 그를 P.E라고 부르겠다"고 했을 정도다.


1995년,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새 동상에 폭탄을 설치했다. 이로 인해 23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금 광장에 서 있는 몸이 뻥 뚫린 새 동상이 그것이다. 메데인은 이를 철거하지 않고, "상처 입은 새(El pájaro herido)"란 이름을 붙이고 그 옆에 다시 만든 새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이 새 동상을 "폭력이 가득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평화를 추구하자"라는 의미로 "평화의 비둘기(La paloma de la paz"라고 명명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페르난도 보테로가 1999년,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의해 최후의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을 마치 영웅의 전사처럼 표현한 그림을 발표해 논란을 야기하기 했다는 것이다.


뚱모나리자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고향

새 동상을 구경하고 페르난도 보테로 플라자에 방문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페르난도 보테로의 볼륨감 넘치는 작품을 큰 동상의 형태로 접할 수 있는 게 인상 깊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만지고 심지어 동상에 올라타며 사진을 찍었다. 플라자 안엔 독특한 패턴으로 지어진 네오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 문화 팰리스 (Palace of Culture Rafael Uribe Uribe)이라고 불리는 정부 건물인데 국가 기념물이며,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예술 문화 시설의 역할을 수행한다. 내부엔 갤러리를 포함해, 도서관,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 박물관 등이 있다.

IMG_1853.JPG 문화팰리스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Rafael Uribe Uribie) : 콜롬비아 1000일 전쟁(1899-1903)에서 활약한 국민 영웅

이 문화 팰리스의 하이라이트는 옥상인데, 옥상에서 센트로를 포함한 메데인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콜롬비아 메데인의 자랑이기도 한 전철*이 지나가는 풍경 뒤로 건물 한 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춤추는 커플(Pareja bailando)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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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두 가지 요소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전철이 도시의 자랑인 게 조금 의아할 수 있지만,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보다 선진적인 전철, 트램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메데인 사람들이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름 알차게 메데진을 둘러보고 나서 집으로 귀가했는데, 식사 준비를 하던 로엘피와 그의 반려견 치키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치키는 7살된 강아지인데, 내가 바깥에서 음식을 사오거나 요리할 때만 다가와서 애교부리다가, 볼 일 다본 이후엔 나를 보는 듯 마는 듯 하는 기회주의견이었다. 이날도 내가 테이크아웃해온 콜롬비아식 곱창구이 춘추리아(chuncuria)를 보더니, 평소보다 훨씬 애교 강도를 높여 엉덩이를 흔들었다. 치키의 앵김을 애써 무시하고 로엘피에게 오늘 페르난도 보테로 광장이랑 그 근처에 갔었다고 말하니 그가 담담하게 “그렇구나, 오늘 그가 죽었지”라고 말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응?”하고 되물었는데, “오늘 그가 죽었어, 몰랐어?”라고 말하며 거실 TV를 틀었다.


페르난도 보테로 별세 소식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었고, 다른 채널로 돌려도 모두 페르난도 보테로 별세 소식 및 그의 연대기를 돌아보는 프로그램들로 재편성되어 있었다. 고백하자면, 난 페르난도 보테로가 아직도 살아있는 화가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래서 로엘피가 "그가 오늘 죽었다"라고 말해서 어리둥절했던 것도 있었고, 좋아하는 화가라 해놓고 현존하는 화가의 얼굴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콜롬비아 메데인 출신이지만, 유럽 모나코 저택에서 91세 나이로 2023년 9월 15일 (콜롬비아 시각 기준)에 숨졌다. 로엘피의 말에 의하면 페르난도 보테로는 유럽과 콜롬비아를 자주 오가곤 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 3,000여 점 작품을 남길 정도로 다작을 했다. 뚱뚱한 모나리자로 많이 알려져 있어 단순 명작 패러디를 많이 한 화가가 아닐까라고 여길 수 있는데 생전 정치 및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많이 남겼다고 한다. 과거 폭력과 부패로 얼룩진 사회상을 담은 작품들과,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미군의 이라크 교도소 수감자 대상으로 저지른 고문 실태를 폭로한 작품들이 있다. 화풍이 익숙하다 했는데 멕시코 민중 예술가로 유명한 멕시코 디에고 리베라의 영향을 일부 받았다고 한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콜롬비아 민족 예술 화풍 위에 '풍선처럼 빵빵한 볼륨감'이 있는 피사체를 담으며 자신만의 개성 및 독자 노선을 구축했다. 현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리의 전통과 결점의 화가, 빛과 같은 화가, 폭력과 평화의 화가인 페르난도 보테로가 세상을 떠났다 (Ha muerto Fernando Botero, el pintor de nuestras tradiciones y defectos, el pintor de nuestras virtudes. El pintor de nuestra violencia y de la paz)" 란 트위터를 남기며 추모했다.


세계적인 화가인 페르난도 보테로의 고향에서 그의 작품들이 가득한 곳을 둘러보고 온 날 저녁, 그의 별세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테라스에 나가 메데인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항상 그랬듯 산을 가득 수놓은 불빛으로 가득하고 고요하다. 내일 페르난도 보테로 작품이 있는 안티오키아 박물관(museo de antioquia)에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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