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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Mar 29. 2020

일주일에 하루는 자체 휴업

 "매주 3박 4일의 휴가권을 드립니다."


 우아한 형제들(배달의민족)의 채용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음이 끌렸다. 월요일 오후부터 근무를 시작하는 주 35시간 근무제라고 적혀 있었다. 월요일 오전은 유급 반차인 셈이었다. 손을 번쩍 들어 지지하고 싶은 바이다. 마음 놓고 늦잠을 자도 된다는 것은 바로 월요병을 없애 주는 특효약이 아닐까. 어릴 때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 아침 눈이 번쩍 뜨였었는데 그런 설렘이 없어서 일까. 직장인이 되고 나서 전날 잠을 일찍 잤더라도 아침에 일어날 때면 똑같이 졸렸다. 그럴 거면  일찍 자나 싶지만 깨고 나서가 확 다르다. 전 날 수면시간이 맑은 정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은 늘 그랬듯이 일찍 잠들기는 글렀다. 아니 아까웠다. 이 황금 같은 주말을 꼭 셔터 내리듯 닫아야만 할까. 왜 주말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가 싶었다. 보통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렇게 좋아진 기분은 토요일에 피크를 찍는다. 아직 토요일이고 내일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이 당연한 데 자꾸 강조하고 싶다. 언제 들어도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일요일 오후 해가 질 무렵이면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월요일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전속력으로 뛰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 무서운 녀석과 마주하게 된다. 일요일 밤 수면 시간은 한 주 컨디션을 결정하는 게 분명하다. 주말에 쉬었는데도 월요일이 피곤한 걸 보면 그렇다. 신체적 컨디션과 정신적 동기부여라는 두 마리의 토끼, 둘 다 잡은 우아한형제들에 박수를 보낸다. 엄지 척이다.


 "나의 꿈은 수요일에 쉬는 회사"


 나의 꿈을 얘기하면 열이면 열 모두 그 회사에 입사하겠다고 즉답한다. 난 인사 일을 하기 때문에 내 손으로 직접 꿈을 이룰 것이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답했다. 대학생 시절 주 4일, 주 3일 시간표를 짜 본 적이 있었다. 월화수목, 월화수로 강의를 신청하면 금토일을 쉬거나 목금토일을 쉬어 강의가 없는 주 3파 학기를 보낼 수 있었다. 연속으로 쉬는 날을 만들면 스터디,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기 쉬웠고 여행을 다녀오기에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회사를 오래 다녀 보니 금요일이나 월요일을 쉬는 것보다 수요일이 딱이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주 2파가 되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눈을 뜰 때면 '내일 하루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뭘~.' 월요병도 별게 아니었다. 다음 날 화요일은 바로 '불화'가 되었다. 무려 '불금'과 같은 급이다. 수요일은 중간 휴식 타임이다. '내일이면 벌써 금요일이네!' 목요일을 기쁘게 출근한다. 드디어 금요일이 되었다. 두 말할 필요 없는 주말의 시작이다.

 우아한형제들 2015년부터 주 4.5일, SK(주)는 2019년부터 격주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다. SK 텔레콤은 올해부터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이 유급 휴일이다. 한 달에 한 주는 주 4일 근무인 이다. 이제 내 차례이다. 매주 자체 휴업을 위해 개인 연차를 수요일마다 쓰면 어떨까. 지금부터 날짜를 따져 보니 격주로 사용하면 연말까지 가능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자체 휴업"


 모처럼 수요일에 연차를 사용했다. 듣고 싶은 외부 강의가 있었다. 마침 바쁜 시기가 지났기에 과감하게 질렀다.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연차란 1도 아깝지 않은 법. 꿀 맛이었다. 전날이 화요일 밤이었지만 여유 있게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헤이 구글! 오늘 날씨 알려죠. 재즈 음악도 틀어주고!" 부드러운 선율과 향긋한 핸드드립 커피로 시작하겠다던 다짐은 꿈으로만 그쳤다. 물론 매일 일어나는 시간에 눈이 저절로 떠지긴 했다. 그러나 오 분 더 잘까 망설일 필요 없이 또 잤다. 그냥 그게 너무나 좋았다. 평소였으면 이메일을 체크하고 업무에 집중할 시간인데 그제야 몸을 침대 밖으로 밀었다. 나만을 위한 하루, '자유'라는 단어는 역시 평일에 느끼는 게 제 맛이다. 그냥 놀고먹어도 되는데 강의를 들으러 가다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나를 위한 일이니 마음도 가벼웠다.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회사 말고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 자체 휴업!


 "휴업이 안 되면 재택근무"


 재택근무가 실험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로 다양한 업종에서 등 떠밀듯 급히 시작하고야 말았다. 재택근무는 미국, 유럽, 아시아, 인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난 코로나 이전부터 재택근무 검토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금 더 들어 보니 직원들이 집에서는 일을 열심히 안 할 것 같다고 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열심히 하겠어요?" 즉, 신뢰 문제였다. 내 주위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바로 옆, 뒤에 앉아 있는 동료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를 하면 들리는 얘기라도 있을 텐데 메신저, 이메일, 미팅으로 일하는 사무실에서 그들의 일을 물어보지 않고서야 수 없었다. 즉, 그들에게 직접 보고를 받는 리더가 아니라면 잘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이처럼 재택근무를 하나 안 하나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회사원은 회사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서로 신뢰가 없으면 계약이 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관리자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한데 이는 재택근무가 아니더라도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바로 옆에서 일한다고 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임원이나 조직의 리더는 자신들만의 집무실을 갖고 있다. 그들이 받는 연봉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들의 방을 카메라로 감시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감독관의 눈치를 보냐 안 보냐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성장할 수 있냐 아니냐가 동기부여 Key가 되는 세상이. 나도 누가 시켜서 일할 때 재미를 못 느낀다. 나의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할 때 일도 재미가 있.


 "재택근무 뭐가 좋을까."

 

 편한 옷차림이 좋다. 인사팀은 포멀 하게 입어야 한다고 누가 처음 말했을까. 알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집에서는 셔츠, 넥타이, 구두와 같은 작업복필요 없다. 아침 출근길 드라이하고 메이크업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없다. 가방이나 우산을 들고 러시아워, 지옥철을 뚫을 일도 없다.

 무엇보다 시간이 최고의 장점이다.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한 적이 있었다. 학교 캠퍼스까지 거리가 걸어서 정도였다. 술을 마시고 늦어 시험 기간 밤을 새도 지각할 일이 없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회사 역시 시간은 중요했다. 출퇴근 거리가 한 시간 반이면 왕복으로 세 시간, 삼십 분이면 왕복 한 시간 거리에서 각각 다녀 보았다. 가까운 게 매일 두 시간씩 세이브할 수 있었다. 한 주 동안 시간, 일 년이면 오백 이십 시간이 되었다. 하루를 여덟 시간으로 계산하면 올해 육십 오동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만의 여가 시간이 근무일 기준 세 달이나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재택근무로 출퇴근 거리가 제로가 된다면? 무려 한 해 백일 동안 하루 여덟 시간씩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새로운 스팟을 가 보고 미뤄두었던 책을 읽는다. 기약 없던 동창, 동기 친구들과 만나 한두 시간씩 사는 얘기를 나눈다. 나의 호기심을 채워 줄 강의를 듣는다. 그만큼 시야와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일에 시너지도 날 것이다.


 어찌 보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못하고 살았을까 싶다. 바쁜 업무 속에서  갑자기 찾아온 여유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그래도 된다. 그 날은 알람을 끄고 자는 건 어떨까. "그냥 내일은 하루 좀 쉬어." 퇴근길에 듣고 싶은 말. 잠시 휴식은 삶의 가치를 높여 줄 테니까. 바쁘게 달리는 인생, 지난 풍경은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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