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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11. 2019

10.변화가 필요하면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가게를 하다 보면 많은 분을 만나고, 적지 않은 분이 묻는다.


'왜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해에 왔어요?'

'아는 사람 있는 곳이 편하지 않나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산과 바다가 끊김 없이 이어진 남해의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 이런 곳이라면 살아봐도 좋겠다 싶었을 뿐이기에, 질문은 받았는데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게, 왜 남해로 왔을까? 고향인 부산도 있고 본가 가족이 사는 김해도 괜찮은데, 통영도 너무 아름답고 순천도 좋은데, 친구들은 제주에도 있는데 말이다. 유배지로 역사가 깊은 남해기에 유배를 오는 심정이었냐 묻는 분도 있었다. 지역 문화를 공부하며 여행하기 보다 순간의 느낌을 좇는 여행을 즐기는 탓에, 무지하게도 남해가 유배지였다는 사실은 귀촌 이후 알게 됐다.


‘왜 굳이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곳으로 가면 늘 예전과 비슷하게 지내려 한다. 나를 환경에 맞추지 않고, 환경을 나에게 맞추려 한다. 절대 맞춰지지 않고 대부분 힘들어하다 실패함을 알면서도 그렇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많이 의존하고 살아오던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변화를 바라지만 ‘과연 변화가 이루어질까?’ 누구도 확신을 주지 않기에 불안에 떨다가, ‘안정’이라는 마약 같은 편안함과 안도감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다. 용수철처럼 뛰쳐나갔다 되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변화의 확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만이 만들어가는 것인데도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모든 생활을 정리한 후 서울을 떠난 이유는 이번만큼은 삶의 변화가 절실해서였다. 이대로 살다가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은 끝이 없었다. 이번에도 습관을 붙잡고 늘어지며 변화를 기대하면, 또다시 헛된 공상이자 망상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피어올랐다. 변화가 절실했던 마음이 철저한 고립을 택하는 방법으로 표현됐다. ‘배수의 진’이라는 거창함까진 아니어도 완전한 외톨이가 되면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지곤 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이제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려 한다.

"변화가 너무 필요했어요. 익숙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완전히 다른 변화를요."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라는 열매가 조금 더 단단히 익으면, 지금의 생각마저 달라지겠지. 그런데도 가진 것을 버리기는 싫고 익숙함을 따라 편하게 지내면서, 해오던 생활을 똑같이 반복하며 생기는 변화는 없지 않을까? 그럴 수 있는 건 변화가 아닌, 진화나 발전 혹은 적응에 좀 더 가까운 듯하다.


여기, 아무 연고도 없는 조그만 시골 마을은 변화를 갈망했던 한 사람의 인생에서 크나큰 전이공간으로 기억되겠지.


▶ 난 누구? 여긴 어디?! 제 고향은 거제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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