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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Jul 26. 2022

언젠가 살고 싶은 집

미루지 말고, 지금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자

꽤 여러해 동안 심사숙고하여 미래에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꼽아놓았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집앞에 가리는 것 없이 툭 트여 있어서 볕이 잘 드는 집, 마당이 있어 빨래나 채소를 직사광선에 말릴 수 있는 집, 아주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집, 방은 2개 정도 크지 않은 거실과 부엌, 간소한 살림살이만 둔 소박하고 단정한 공간이면 좋겠다.

집의 위치(행정구역)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찾아올 때 너무 멀면 힘드니까 서울에서 2시간 이내로 올 수 있는 곳이면서, 멀지 않은 곳에 물가가 있고(바다 호수 강 냇가 모두 좋다), 도서관과 목욕탕을 걸어서 또는 대중교통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이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꽤 오래 되었고 상상속에서 집에 대한 로망은 계속 구체화되었는데, 그게 언제쯤 가능할까 가늠하다 보면, 둘째가 20살이 되는 53세까지는 로망을 이루기 어렵겠다는 자포자기의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낳았으니 적어도 20살까지는 돌봄과 교육에 대한 책임을 져야다고 생각해왔다. 교육비로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대단한 교육을 시킬 것은 아니지만, 먹이고 입히고 약간의 사교육(수영이나 발레 같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취미들)만 해도 돈이 어느정도 필요하다. 필요한 돈을 벌려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하고, 일을 계속 하려면 지금처럼  도시에 살아야 한다. 그러니 로망인 집에서 사는 것은 둘째가 성인이 되는 53세 이후에야 가능 것로 생각하며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그러던 중 아래 글귀를 만나게 되었다.


《작은집 시리즈의 목적은 욕망의 절제가 아닌 욕망에 대한 직시다. 남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촘촘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충족시키자는 제안이다. 작은집의 주인이 되기 위한 요건은 어쩌면 검소함이 아닌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일지 모른다. 따라서 이 책에 부제가 있다면 '1억원대 내 집 짓기'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기 : 주택편'이 더 정확할 듯 하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작은 집, 다른 삶'의 서문이었는데, 본문도 아니고 서문에서 뼈를 맞았다. 지난날의 나는 가족을 핑계로 행복을 유예하는 태도는 비겁하다고 생각해왔다. 엄마에게 이런 저런 즐거운 활동들을 권했을 때 엄마가 "나중에 니 동생 결혼하면 그 때 하겠다"고 하더니 동생이 결혼을 하니까 "나중에 막내동생이 취업하면 그 때는 정말 자유롭게 살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자식들이 다 큰 이후로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행복을 의탁하려는 게 참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너무 희생하지 말고, 내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아야지, 아이들을 내 소극적인 태도의 핑계나 방패막이로 삼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가족을 핑계로 당장은 내가 원하는 집에 살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지금 사는 공간을 방치하고 있었다. 지금 사는 집에서도 내가 원하는 단정하고 소박한 공간으로 가꿀 수 있고, 우리집은 도서관, 목욕탕, 냇가와 공원이 충분히 가까운데도 지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고 있었다.

 

내가 게으른 탓으로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남편 탓과 아이들 탓으로 돌리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장하지 말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 첫번째 실행으로 지금 우리집에 내 취향의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집은 안방에 남편과 나의 트윈베드가 있고, 아이들 각자에게 방이 있고, 알파룸으로 이름 붙여진 제4의 공간이 있는데 우리집에서 이 방은 레고방이었다. 레고는 남편의 애착품이다. 이 집을 분양받았을 때부터 알파룸은 레고방으로 하기로 정했었다. 그런데 내가 둘째방에서 같이 자면서 트윈베드가 있는 안방도 남편방이 되어 남편은 방이 2개가 되었고, 우리집에서 나만 내 공간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참 서럽기도 했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정갈한 공간을 지 못해 아쉬웠다.

(내가 싹 치워놓으면 가족들의 물건이 여백을 점령한다..)


그래서 레고방에 있던 레고들을 안방으로 보내고, 안방에 있는 내 침대를 레고방으로 옮겨, 안방은 남편방으로 하고, 기존 레고방을 내 방으로 하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남편은 거부감을 표시했다. 방이 두개에서 한개로 줄어들고 레고부서지지 않게 옮기는 것도 힘들고, 큰 가구를 옮겨야 하는 불편함도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내지 않고 내 의지가 결연하다는 것을 여러번 드러냈더니 결국 남편도 수긍하함께 가구와 레고를 옮겨주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한나절이 걸리는 대이동이었다.

레고방이었던 알파룸

레고방에 들어갈 내 가구는 침대 하나였는데, 레고방에서 나온 가구는 큰 장식장 2개, 책상 2개, 서랍 3개, 기타 작은 수납상자와 레고박스 등 너무 많았다. 이 기회에 남편도 자신의 소유물을 직시하길 바라기도 했지만 그건 부수적인 목적이고, 주목적이었던 나만의 공간을 드디어 갖게 되었다. 싱글침대와 책상, 미처 나가지 못한 레고 장식장 하나가 남은 간결한 방이다. 다른 가족들의 잡동사니가 쌓이지 않는 내가 좌지우지하는 공간이다.

여백이 많은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나의 욕망과 필요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충족시킬 방법을 찾자. 내일, 내년, 십년 뒤의 나는 이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건강할지 아닐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미룸'의 이유를 가족 때문으로 돌리지 말자.


집에서 나의 로망 공간을 이뤘으니, 앞으로는 산책과 도서관 목욕탕을 부지런히 다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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