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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May 08. 2023

청소를 마주할 결심

아이들에게도 청소를 가르치기로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입주한 직후부터 최근까지 3년 이상 주 1회 4시간씩 청소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해왔다. 청소도우미 서비스에 지불하는 비용은 (최근 기준) 회당 5만 원이었다. 매주 한 번씩 청소를 맡기는 비용으로 월 20만 원가량의 고정비용을 부담해왔던 것이다.

 

처음 청소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한 계기는 남편과 가사일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서였다.

아파트 입주 전에 살던 집은 39 제곱미터의 아주 작은 집으로, 방 2개, 거실 겸 부엌, 작은 화장실 1개로 구성된 집이라, 청소와 정리를 누가 할 것인지 정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너무 작아서 어지를 수 있는 여유 공간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아파트에 입주하니, 거실과 부엌이 따로 있고  방도 늘어나고 화장실도 2개가 되어, 집안일을 분배하고 서로 책임을 분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설거지를 제외한 집안일을 꽤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많이 해와서 잘하는 편인데, 평일의 과중한 업무와 주말의 집중 육아로 집안일을 맡을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남편보다 일하는 시간도 길고, 돈도 많이 벌어오고, 육아도 더 많이 하는데 집안일까지 많이 맡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해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남편은 집안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공부 잘했던 남학생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집안일을 해본 적도 거의 없으며, 하고 싶은 의지도 없었으니 당연히 집안일을 잘하지 못했다.

이런 남편과 집안일을 분담하기 위해 책임 분야를 정하느라 의논하는 과정이 귀찮았고, 그 후 남편이 맡은 부분을 잘하고 있는지 신경쓰는 것 싫었고, 남편의 집안일은 내 성에 차지 않을 것이 뻔하였기에 "내가 하고 말지"라고 청소를 도맡거나, '니가 언제까지 청소를 안 하고 버티는지 두고 보자'며 더러움을 참으며 오기로 버티는 내 모습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남편의 집안일을 감시하면서 잔소리하거나 말을 아끼면서 속앓이를 하느니, 도우미에게 외주를 맡겨 월 20만원 가량의 돈을 더 쓰고 차라리 그 시간에 돈을 더 벌자는 생각으로 청소도우미 서비스를 시작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청소에 대한 책임을 정하지 않고 외주를 맡겼다.  


그동안 청소도우미 서비스의 만족도는 꽤 높았다.

만약 내가 앞으로도 열심히 일을 해서 열심히 돈을 벌 마음이었다면, 지금까지처럼 일을 1순위로 놓고 생활할 요량이었다면 계속해서 이용했을 것이다.

 

청소 아주머니가 오시는 화요일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현관부터 깨끗했고 온 집안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행을 가서 호텔에 숙박할 때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시트며 수건이 말끔히 정리된 깨끗한 방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과 비슷하다. 화요일은 퇴근 후 깨끗이 정돈된 집에서 온전히 휴식을 누릴 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매일 청소할 필요는 없지만 주기적으로 청소하지 않으면 어느새 더러움이 쌓이는 화장실, 가스레인지, 창틀, 현관 등을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해주니, 그 공간이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어 좋았다. 무엇보다 어느새 더러워진 공간을 보며 '아.. 청소해야 하는데, 오늘은 기운이 없고, 내일은 시간이 없어.. 청소해야 하는데 언제 하지'하며 청소를 미루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처럼 만족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소 외주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직접적인 계기는 아주머니의 비용 인상 요구였다. 작년 6월에 5만 원으로 올려드렸는데, 엊그제 5천 원을 더 올려달라는 문자를 보내오셨다. 아주머니와 나의 가격 기준은 가사도우미 어플 'ㅁㅅ'였는데, 최근 이 어플의 가격이 한차례 또 올랐다는 것이 인상 요구의 근거였다. 근거 없는 요구는 아니었는데, 수긍할 수 없는 면도 있었다. 아주머니는 어플의 4시간 가격을 인상 요구의 근거로 삼으셨지만,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서 청소하는 시간은 3시간이 채 안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머니에게 시간을 채우지 않는다는 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던 까닭은, 아주머니가 그 3시간 동안 '내가 혼자 5시간을 청소해도 못할 만큼의' 청소를 한다고 생각해서였고, 말수가 적고 요구사항이 별로 없어(청소비품 등으로 요구사항이 많은 분들이 계시다) 나와 잘 맞는 분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시간을 다 채우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었는데, 3시간을 계시면서 4시간을 기준으로 비용을 올려달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비용 인상을 요구하기 전부터도 청소 도움을 계속 받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일단 올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직접 청소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 아이들이 평일에 시댁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집에 오던 때에는 일주일 청소기를 한번도 돌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평일에는 남편과 둘이 생활하며 둘 다 회사를 다니니 집에 사람이 없어 집이 어질러지지 않았고, 주말에는 주말에만 만나는 어린 자녀들에 대한 육아에 집중하는 것으로 벅차 청소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는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매일 집이 어질러지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생긴 내가 매일 조금씩 청소와 정리를 직접 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청소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아주 예전에 '호텔리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남자주인공 배용준이 호텔에 살았다. 배용준은 호텔에 살면서 '일만 알고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는데, 청소에 대한 책임을 가족 안에서 분배하지 않고(분배하는 과정과 분배 후 점검하는 과정에 기운을 쓰기 싫다는 이유로) 돈을 써서 외주를 주는 것은 왠지 모르게 '호텔에서 사는 것 같은, 삶의 본질을 마주하지 않고 있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동동 뜬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오시는 화요일까지 청소를 미루게 된다. 주말이면 부엌 쓰레기봉지가 거의 다 차서 넘칠 지경이 되는데 화요일까지 그냥 버틴다. 자기 물건들 정리를 미뤄두었다가 월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각자의 물건만 간신히 정리하곤 했다. 아들의 소변으로 변기가 더러워져도, 고기를 굽느라 가스레인지가 평소보다 더러워져도, 화요일이 되면 치워지니까 즉시 닦기보다는 그냥 미루게 되었다. 역시 개운치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들에게 청소를 가르치지 않게 된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정리(필요 없는 물건을 나누거나 버리기)와 정돈(제 자리에 두기)은 가르치고 연습을 시켰다. 그러나 청소는 맡은 사람이 따로 있으니 나도 별로 하지 않았고, 자연히 아이에게도 가르치지 않았다. 아직 혼자 무엇인가를 하기 미숙한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직접 할 수 있도록 기다리며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내가 그것을 대신해버리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도 힘들다. 예를 들어, 아들의 소변으로 변기가 더러워진 것을 발견했다면, 아이를 불러 변기 상태를 보게 하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어봐서 생각하게 하고, 어떻게 치우는지 알려주고, 직접 청소하도록 한 다음 옆에서 지켜보며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이 경험을 통해 아이는 다시 변기를 더럽게 쓸 확률이 줄어들고 만약 더럽히더라도 그것을 직접 청소할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보다 그냥 내가 치워버리는 것이 당장은 훨씬 덜 수고롭고 빠르고 편하다. 그리고 내 경우, 내가 더러워진 변기를 직접 청소하지 않고 남에게 맡기니 아이에게 잔소리마저 안 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로 인해 더러워진 변기를 발견하고 청소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매주 오시는 청소 도우미님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청소를 다른 사람의 일로 생각하고, 자기 물건이 잘 찾아지지 않으면 '아주머니가 다른 데 두셨나 봐'라고 탓하곤 했다. 자기 물건을 제 자리에 두지 않고 남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그러니 월요일 저녁에 물건을 제 자리로 치웠어야 맞다고 아이의 말을 바로잡아 주면서도, 내 생활의 결과로 필요하게 된 청소를 다른 사람의 몫으로 여기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생활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청소가 필요하다. 물건이 별로 없고 어지럽히지 않는 성격이어도 먼지와 머리카락은 쌓이고 생활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소소한 더러움이 발생한다. 그래서 먼지 하나 없는 상태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더러움을 없애주는 과정(청소)을 거쳐야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 그래서 청소는 일상의 근간을 이루고, 청소를 '어렵지 않게 간단히' 하는 능력은 좋은 일상에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주 1회 청소 도움을 중단하더라도, 월 1회 단시간 도우미를 불러 화장실, 가스렌지, 창틀 청소만 맡길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청소에 대한 생각을 진전시킨 끝에 마음을 바꿔서 직접 내가 가족들과 청소를 나눠서 해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살림 관련 책을 열심히 읽어 왔고, 월요일에는 조명 청소, 화요일에는 화기 관련 청소, 수요일에는 물 관련 청소(화장실, 베란다) 등을 루틴으로 실천하는 살림 고수들의 요령을 부러운 마음으로 읽어둔 터였다. 왜 부러운 마음이었냐면, 당시의 나는 그런 매일 청소를 루틴으로 삼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이를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골치라고 생각했던 화장실 청소는 사실 큰일이 아니다. 이미 미니멀라이프를 꿈꾼 지 오래되어 공용 화장실에는 밖에 나와 있는 물건이 많지 않다. 샤워한 후, 아이들이 욕조 목욕을 한 후 습기를 머금고 있을 때 화장실 전체를 간단히 닦아주면 될 일이다. 그래서 오래 쓴 샤워타월을 청소용으로 걸어두기로 하고, 화장실에 나와 있는 물건 중 더 치울만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했다. 남편이 주로 사용하는 안방 화장실은 남편에게 직접 청소하도록 요청했고, 남편도 바로 수락했다. 우리 집 화장실 청소의 주책임자를 드디어 정한 것이다.


나름 최소한의 물건만 나와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화장실


내친김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인 설거지도 분배를 시도했다. 일요일 저녁으로 집밥을 해먹은 후 가족 각자에게 자신의 밥그릇과 앞접시를 초벌로 씻어 식기세척기에 넣도록 했다. 아이들에게는 수세미 쥐는 법, 그릇에 이물질이 없도록 닦는 법, 이물질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식기세척기의 어느 부분에 어떤 방향으로 넣어야 하는지도 알려주어야 했다. 아이들 곁에서 이걸 다 알려주느라 나는 매우 귀찮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굉장히 신나 했다. 그래서 내친김에 아들 속옷 애벌빨래도 직접 하도록 시켰다. 나는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웬만하면 속옷 애벌빨래 같은 건 하지 않지만(세탁기를 믿는다. 식기세척기를 믿는 것처럼), 가끔 배변 뒤처리가 미숙해서 아이들 속옷에 더러움이 많이 묻어 있으면 직접 손빨래를 한 다음 세탁기를 돌리곤 했다. 바쁠 때는 애벌빨래가 필요한 속옷이 몇 개씩 쌓여 마음의 짐이 되곤 했다. 때마침 애벌빨래가 필요한 속옷이 하나 나와 있어 아들을 화장실로 불러 손으로 비벼서 얼룩을 없애는 법, 젖은 속옷을 비틀어 짜는 법, 젖은 속옷을 빨래통에 바로 넣으면 안 되고 펼쳐서 말려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직접 빨래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번거로웠지만, 아들은 또 신나 했고, 빨래를 마친 후 "나 잘 크겠다~"라는 흡족한 말도 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도시인의 월든'에서도 마침 집안일 관련 이야기가 나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가르친 것이 집안일이라며, 집안일을 '성공이나 대단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어떤 것을 꾸준히 하는 태도'를 기르는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것보다는 덜 거창하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더럽힌 것을 직접 치우는 것이 습관이 되어, 가급적 덜 어지르고, 어지른 것을 어렵지 않게 치우고, 그 결과 항상 정돈된 공간에서 살 수 있다면, 그 일을 남에게 돈을 주고 맡기지 않고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면,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어떤 직업으로 얼마를 벌며 누구와 살더라도 잘 사는 것이라고 믿기에, 그런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장의 귀찮음을 감수하고 아이들에게 청소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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