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낄 때 역사를 꺼내어 본다. 들여다 보노라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보이고 앞으로 어찌 되어갈지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극이 인기를 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지 이야기는 그중 으뜸일 것이다.
삼국지는 망해가는 한나라가 배경이다. 난세에는 망하게 하는 인물과 세상을 구하는 스타가 함께 등장한다. 조조 유비 손권은 최후의 승자들이다. 그러나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대권주자들은 따로 있었다. 원소 원술 공손찬 유표 여포 등이 대표적이다. 배경이나 세력 능력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고 도리어 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대권 경쟁에서 실패하고 사라졌다. 왜 승자가 되지 못하고 사라졌을까? 역사의 패자들을 살펴보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떨어진 별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원소다. 우선 그는 출신 배경이 어마무시했다. 사세삼공(四世三公-사 대에 걸쳐 황제를 직접 모신 삼 공을 배출) 가문 출신에다 잘 생겼고 잘 배웠고 시작도 매우 유리했다. 젊을 때는 무리를 끌고 다니며 사회적 물의(요즘 고위층이나 재벌 자제의 뉴스와 비슷?)도 좀 일으켰던 것 같다. 당시 권력층들이 시대와 권력에 저항하는 불손한 행동을 한다고 보았다 하니 말이다.
당시 나라는 위에서부터 철저히 썩어 있었다. 문고리 세력이 황제를 에워싸고 국정을 농단했고 백성의 삶을 돌보는 민생은 간 곳이 없었다. 탐관오리와 부정부패가 넘치고 관권을 부당하게 휘둘러서 백성은 신음했다.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기의 영웅들이 차츰 저항의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황제의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이 자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권력 암투에 여념이 없어 나라를 더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싸움의 선봉장 쯤 되는 하진은 원래 백정이었는데 여동생이 황후가 되고 황자를 낳자 그 덕에 대장군으로 벼락 출세한 사람이다. 그 밑에 원소가 있었다. 권력 암투가 더욱 심해지며 위협을 느끼던 하진에게 원소가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는 작전을 건의한다. 지방의 강자 동탁을 데려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등판시켜 놓고 보니 동탁은 동지가 아니라 약탈자였다. 양이 여우를 몰아내려고 늑대를 불러들였는데 그 늑대가 여우를 몰아내고 양까지 잡아먹어 버리듯 동탁은 정적을 제거하고 하진까지 제거해 버린다. 이 일을 보면 원소는 작은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더 큰 악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즉 결과를 위해서는 부정한 방법도 쓸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원소는 모시던 우두머리 하진이 죽자 도망을 가야 했다. 그래도 집안의 막강한 배경과 연줄 덕에 제법 큰 지방인 발해의 태수 자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원소가 폭력적인 권력자 동탁에게 맞선 영웅이라는 소문이 전국으로 퍼졌다. 발해로 가는 중인데 각지의 세력이 모여들어서 원소를 지도자로 하는 <18로 제후군>이 생겨났다. 패배한 도망자가 순식간에 부패한 기득권에 맞서는 야권의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문제는 대권의 선두주자가 되어 영웅들을 이끄는 원소의 행동이 리더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선 제후들을 동지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는 듯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자기 세력을 키우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자연히 원소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단결력이 약해지고 손발이 맞지 않아 다투다가 해체되고 만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리더 한 사람 때문에 옳고 큰 목적을 위해 모인 조직이 불신과 적대감만 남기고 무너진 것이다.
연합군이 붕괴해서 발해로 돌아가던 도중에 식량이 바닥나 버렸다. 식량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배고프면서까지 충성할 군사는 없다. 강력한 군사력 기반이 무너질 위기였다. 다행히 근처 기주의 자사 한복이 스스로 나서서 도와주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원소의 목숨을 구해준 셈이다.
그런데 위기를 벗어난 원소는 욕심이 났다. 기주는 물자가 풍부한 지방이다. 그래서 작전을 짰다. 18로 연합군에 참여한 적이 있는 공손찬에게 기주를 함께 공격해서 나누어 갖자고 제안한다. 공손찬이 그러자며 공격을 준비하자 이번엔 기주 지사 한복에게 공손찬이 공격하려 한다고 정보를 흘렸다. 유도한 대로 크게 겁을 먹은 한복이 도와달라며 원소에게 매달렸다. 쉽게 기주 땅으로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들어간 원소는 기주를 차지하고는 한복과 공손찬 모두를 쫓아내 버린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으로 은인을 속이고 배신으로 은혜를 갚는 원소의 면모가 보이는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