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할머니의 플루티스트 되기 001.
플루트 연주가가 되는 건 다음 생에나 이룰 희망이었다. 이번 생에서는 이미 때를 놓친 일로 여겨졌다. 아니 플루트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다시 태어나면 악기 연주가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음악회에 다녀올 때마다 나는 공연장을 나서며 늘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꼭 악기 연주가가 될 거야.”
다시 태어나면 할 일이 또 있다. 스키 점프 타기. 나는 원래 미끄러지는 느낌이 싫어서 스키는 물론 어린 시절 미끄럼틀도 안 탔다. 그런데 스키 점프는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어서일까? 하지만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잘못하여 골절상이라도 입으면 이제는 생명에까지 위협이 된다.
하지만 연주가가 되는 것은? 위험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생각해보니 못할 것 없었다. 꼭 음악대학에서 전공해야 연주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문득 다음 생에 연주가가 되려는 꿈을 이번 생에 이루기로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연주가가 되려고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를 했었다. 그때만 해도 관악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도 웬만한 음악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어머니께 지원을 요청했다. 같은 반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오보에 배우는 친구가 있던 것도 나를 부추겼다.
“엄마, 나 관악기 전공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플루트나 클라라넷이요.”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말이 없었다.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을 때니 5남매의 막내인 나까지 음악 교육시킬 여력이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돈이 없으니 안된다고, 모처럼 꺼낸 딸의 소망을 잘라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미술대학을 졸업한 언니가 나섰다.
“예술의 길은 너무 힘들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공부하는 거야. 너 공부 잘하니까 그냥 공부만 해.”
‘예술의 길’에 들어선 경험자의 말이어서였을까? 나는 언니의 말에 바로 연주가의 꿈을 접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여전히 말은 없었지만 어머니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역력했다. 어쩌면 내 포기에는 언니의 말보다 어머니 표정이 더 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언젠가 돈과 시간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악기 연주를 배울 거야’라고.
대학에 진학한 나는 악기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시간 여유도 있고 아르바이트해서 용돈도 넉넉했지만 술 마시고 다른 놀거리에 더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첫 해 악기 연주의 꿈은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견딜 수 없는 불행감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정말 참을 수 없이 불행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저 20대 여성이 겪을 만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있었을 뿐. 분명한 원인이 따로 없었기에 그냥 극복의 방법만 찾으면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진실로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가 악기 연주가가 되고 싶었던 고등학교 때의 꿈을 기억해냈다. ‘언젠가 돈과 시간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악기 연주를 배울 거야’라고 했던 그 기억.
나는 플루트를 선택했다. 나는 여자니까 여성스러운 플루트가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편견 외에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6개월 정도 모은 적금을 해약하여 낙원 악기 상가로 가서 암스트롱 중고 플루트를 장만했다. 악기를 손에 쥔 것만으로 나는 플루티스트가 된 기분이었다. 플루트의 효과는 놀라웠다. 나를 짓누르던 불행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하늘이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