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트 리버를 지켜주는 영웅들

(심장 Heart ♥ 간 liver)

by 김한우리
간이 예쁘지 않다고요?
나의 심장을 위협하는 [간]. -이미지 다운로드-

선천성 심장병으로 4차례 수술을 받은 난 평생 심장만 잘 지켜주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특히 폰탄수술을 한 환자들은 간은 필수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해. 그때가 온 거 같아." 할아버지 교수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폰탄수술을 한 환자들은 결국 나중에 간이 망가져. 이건 폰탄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해당되지. ' 그때 알았다. 수많은 심장수술 종류 중 하필 난 폰탄수술을 받은 환자이고 거기에 합병증으로 간도 돌봐줘야 한다는 걸 성인이 되고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


내 몸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간 그리고 그다음은 어디 인 것인가? 나름 그동안 편하게 잘 지내고 무탈하게 일상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온 것 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엄청 난 건강을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몸을 망치긴 싫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몸이 아프고 고된 건 모두 '나이 탓'으로 돌렸다. 물론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난 플러스 요인이 더 첨가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간 소화기내과[간] 담당 교수님은 여자분이셨다. 심장과 교수님들은 모두 남자분들이셨기에 여자 교수님은 낯설었다. 할아버지 교수님이 퇴직 전에 [간]도 돌봐주셔서 안심은 되었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 그리고 말도 없다. 2달에 한 번씩 가는 심장과와 다르게 [간]은 일 년에 한 번만 가는 거라 더욱 그러했다. 5년 만에야 다시 말하면 5번 만나고 여자 교수님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의사와 환자의 궁합도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라포 형성이 잘 돼야만 의사를 믿고 치료받을 수 있고 환자를 믿고 치료해 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돼야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40 평생 병원 다니면서 터득한 나만의 방법이랄까?


[간] 교수님은 "음.. 간은 예쁘지는 않지만 괜찮아요. 검사 결과를 토대로 추적관찰을 하며 지켜보자고요. “

‘간이 예쁘지 않다. 대체 뭘까?’ 궁금증만 유발하며 다닌지도 7년이 흘러간다.


어벤저스 나의 심장과 교수님들


나의 할아버지 교수님을 만난 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중학교 때인 거 같다. 지금처럼 두 달에 한 번씩 가는 병원은 이제 나에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추적관찰을 하러 가는 것 밖에 없었기에 교수님과는 데면데면 한 사이였다. 교수님의 특징은 허스키한 목소리와 희끗희끗 흰머리 그리고 안경이 전부였다. 일 년에 한 번씩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교수님 말씀만 듣고 오는 게 전부였다. 많은 환자들로 진료시간도 3분 내외로 정해져 있기에 그 3분이란 시간은 나에겐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그 3분을 위해 난 지금껏 3시간을 달려갔다. 40년 동안 말이다.

내가 대학교 입학 후부터 교수님과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성인이라는 타이틀이 제법 낯설었지만 교수님과 데면데면이 아닌 대면할 수 있다는 거에 너무 좋았다. 취업이 되고부터는 부모님도 말씀을 안 하시는 결혼 이야기까지 오고 갔다.


이제 "결혼도 해볼까?", "혼자 살 거예요." 혼자 산다고 하면 교수님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음 외래 때도 나에게 결혼을 물어보시곤 하셨다. 요즘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꼰대(?)라고 하는데 나와 교수님 사이에서는 그런 의미로 얘기하는 건 아니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교수님은 심장수술 환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또 인생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셨다. 나뿐만 아니라 병원을 다니고 있는 성인 환자들에게 말이다. 청소년기 때부터 본 환자들이 성인이 되고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면 교수님은 흐뭇해하셨다.

표현은 안 하셨지 만 자그마치 교수님과 함께 한 23년이란 시간 동안 의사와 환자를 넘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교수님의 진료(?) 방침이셨을까? 나는 모나거나 삐딱하지 않게 바르게 잘 큰 것 같다.

항상 병원을 오고 가며 많은 것을 배운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지를 난 매일 느끼고 있다.


할아버지 교수님은 퇴직을 하시고 난 새로운 교수님을 만났다. 이미 심장과에서 유능하시고 젊은 교수님이셔서 걱정 없었다. 지금 교수님과도 라포 형성이 잘 되어 교수님 진료(?) 방침을 잘 따르고 있다. 현재 진행형으로 난 약을 타러 2달에 한번 병원 외래를 간다. 약을 타기 위해선 INR 검사가 필수 적이다. 할아버지 교수님이 계실 땐 혈액검사가 좋지 않으면 늘 나머지 공부를 시키셨는데 지금 교수님은 나머지 공부를 숙제로 내주신다. 컨디션을 잘 조절해서 다음 외래 때 다시 한번 결과를 지켜보자는 교수님만의 치료 방법이다.

“모범생 왔네.” 이 이야기를 듣기까지 난 얼마나 나를 관리하고 지켜냈는지 내 심장에게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에게 뭐가 뿔이 났는지 하는 검사마다 엉망진창이다. 그래서 요즘 난 많이 힘들다.


다시 극복해서 다음 외래 땐 ‘모범생’ 이란 말을 듣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너무 간절하다.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부드러운 미소 흉부외과 교수님

흉부외과 교수님을 만난 건 대학교 4학년 때이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한 학기를 더 다니면 졸업인 나에게 할아버지 교수님은 수술할 때가 온 거 같다며 취준생 발목을 잡으셨다. 처음 만난 집도의 교수님 첫인상은 차가웠다. 웃음기 없고 안경 너머로 매서운 눈빛과 키는 또 왜 이리 크신지.. 모든 게 압도적이었다. 그런 교수님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니 강철 로봇인 줄 알았는데 인간적인 매력을 뽐내주셨다.

말씀도 없으셨다. 결과가 좋으면 ‘괜찮다.’ 이 한마디면 모든 게 끝났다. 살을 덧붙여 장황하게 설명을 하지 않으셨다. 수술 전날도 회진을 하면서 한마디 하시곤 홀연히 사라지셨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는 최선을 다할 거야.”

‘최선’이란 단어는 나에겐 무서운 말이다. 최선이란 단어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교수님은 최선이란 단어의 무게를 담대하게 수술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긍정의 신호를 주셨는지도……그렇게 2차, 3차, 4차까지 나의 심장을 세 번씩이나 고쳐주신 교수님이시다.

이제 퇴직을 앞두고 계시는데 나의 5차 수술도 교수님이 해주셨으면 하는 환자로서 작은 바람이다.


나의 하트 리버를 책임져주는 영웅들이 있기에 난 결코 두렵지 않다.

삶은 용기를 북돋워주고 따뜻하게 나의 심장을 덥혀준다. 난 지금처럼 천천히 인생을 소소하게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다. 봄날의 햇살과 함께 그러고 싶다.


폰탄(Fortan) 수술은 적절한 방실 판막(atriventricular valve) 혹은 펌프실(pumping chamber)의 부재로 인한 단일 기능성 심실을 갖는 심장 기형에서 고려된다.

예를 들면 삼천판 폐쇄증, 심실중격 결손이 없는 폐동맥 폐쇄, 이중 입구 심실, 형성 저하 성 좌심 증후군 등이 있으며 폰탄 수술은 전신의 정맥혈을 우심실을 경유하지 않고 바로 폐동맥으로 유입하게 돼서 폐로 연결된다.

난 이중 입구 심실이 진단명이다.

폰탄 수술 후 만성 정맥 고혈압, 전신 정맥의 울혈과 심박출량의 감소가 발생되며 또한 폰탄 수술 후 발생한 혈류역학적 변화, 즉 증가된 전신 정맥 압력과 감소된 심박출량에 의한 만성적인 간 울혈 때문에 발생한다.

폰탄-연관 간질환은 경도 간 울혈에서부터 간경변증까지 다양하며, 문맥압항진증의 합병증과 간암을 초래할 수도 있다.
-네이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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