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윤미 Apr 20. 2024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곡선이 있다

마흔에 시작한 새로운 취미

언젠가는 내가 서예를 배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시도 서예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담은 예술이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울산 예술가의 초상 전시회에 갔다가, 규빈 김숙례 선생님을 만났다. 한글 서예의 대가를 뵐 수 있어 영광이었다. 나에게 좋은 시를 많이 써달라고, 그래서 서예가들에게 큰 영감을 전해달라던 말씀이 여운으로 남았다.


명함에 적힌 주소로 시집을 보내드렸는데, 제목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신다. 규빈 선생님은 엄한 스승이면서도 별명이 울보라고 소문이 자자한, 가슴 따뜻한 분이셨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전해지는 끌림이란 걸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몇 번 뵙지는 않았어도 선생님을 더욱 자주 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서예를 제대로 배우고도 싶었기에 곧바로 서예 수업을 등록했다.


몇 주동안 세로긋기 가로긋기만 했다. 진도가 빨리 안나가서 재미는 없었는데, 아마도 붓을 추스리는 감각과 강한 필력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얼마 배우진 않았지만, 붓을 처음 놓는 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느낀다. 기필할 때에 붓을 제대로 놓아야 행필도 종필도 자연스레 따라와서 그렇다. 처음부터 붓을 잘못 놓았다고 이리저리 비틀어서는 안된다. 서예는 언제나 일필휘지. 한 번 놓았으면 끝을 봐야 하고, 틀렸다면 다시 처음부터 놓아야 한다. 붓 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희열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지루한 반복 훈련 끝에 드디어 ‘기역’을 쓰기 시작했다. ’ㄱ‘은 반달모양의 머리로 시작하여 붓끝을 엎어서 부드럽게 내려와야 하는데, 초보에게는 붓끝을 엎는 감각이 익숙할 리가 없었다. 기역을 죄다 악어입처럼 적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다가와 다시 천천히 알려주셨다.


“그런데요 선생님, 붓 끝을 엎는 느낌을 잘 모르겠어요.”

“……..니 지금 세 장 썼거든.”

“(민망해서 웃음)”

“기역 세 장 쓰고 붓 추스리는 느낌 알면 천재지. 그런데 서예에는 천재가 없어. 꾸준한 노력과 인내 뿐. 비단 그게 서예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의 주옥같은 명언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붓을 들었다. 서예를 대하는 자세, 인내와 노력은 곧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며, 인내와 노력은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 진리와도 같았다. 느리고 천천히, 시간을 많이 들이고 공을 들여 배운 것들이 오래 가지 않는가!


문학을 예로 들자면, 치열하게 읽고,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쓰는 사람이 진짜 문인으로 성장했다. 노력이 결여된 상태로, 가감없는 합평도 하지 않고, 그저 주례사 칭찬과 찬사만 바라면 반짝, 멋져 보일 수는 있으나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인간 관계로 예를 들자면,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대우하는 애씀과 수고로움을 베풀어야 사람을 얻었다. 오직 자기 말만 옳다는 아집, 귀를 닫고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편견, 오로지 대접만 받으려는 교만한 이들은 사람을 잃었다.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는만큼 살아내는 것이 언제나 어려울 뿐이지. 그래서 노력하고 배우는 태도가 기본값인 사람들을 만나면 존경심이 인다. 더 나아가 그 모든 순간들을 즐기시는 분들을 만나면, 일종의 경이와 전율이 인다. 살다가 힘들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해결책 없는 삶의 고민에 답답해질 때 마치 그 분들이 인간 이정표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에 ‘니은‘을 배웠다. 선생님은 ’너’와 ‘녀’를 쓸 때 사용하는 ‘니은’이 한글 서체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자라고 하셨다. 백조의 우아함을 닮은 모습으로 시작하여 따뜻한 국을 떠올리는 국자의 형상으로 마무리 되는 곡선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역시나 국자 모양이 잘 안 나와서, 두 시간 동안 아름다운 곡선을 향한 몸부림을 쳤다.


누구나 처음은 다 서툴고 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 아닌가. 제대로 똑바로 걸어왔다 생각했는데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구불구불한 곡선의 길이었다. 처음맞는 마흔의 해에, 쉼 없이 흔들리는 삶 속에서 서예를 만나 다행이다. 붓을 추스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부드러운 곡선같은 사람들이 좋다. 많이 배우진 못했어도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둥근 손등이 좋다. 많은 것을 이루었으나 자랑치 않는 입술이 좋다. 말하지 않은 것까지 헤아리는 선한 눈동자와, 자신이 깨달은 삶의 지혜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고운 뒷태가 좋다.


서예를 배우며 깨닫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곡선이 있다는 것을. 구부러진 길처럼 넉넉한 품이 있다는 것을. 곡선들의 틈 사이에서 소박한 들꽃들이 피어난다. 서예를 열심히 배우다 보면, 나도 곡선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앙큼한 꿈을 꾸는 봄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기사바로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수요 낭독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