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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Oct 04. 2024

10. 남편과의 만남

이메일 펜팔로 맺은 인연

남편과 나는 인터넷 펜팔로 알게 됐다.


1998년 당시 나는 10년 동안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던 시점이었다. 단 하루도 더 다니기 싫을 만큼 지쳐 있었고, 기자로서의 내 미래도 불투명해 보였다. 내가 그 회사에서 더 이상 성장하리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겠다’는 이유를 대며 회사를 그만뒀다.


물론 개인적으로 결혼을 고려했던 남자랑 헤어진 슬픔도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번아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어찌 됐건 회사를 그만둔 나는 단편 소설 한 편을 완성해서 투고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영어공부였다. 캐나다로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떠날 작정이었다. 늘 영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는 IMF 사태로 해고나 강제 퇴직한 실업자가 많았다. 그래서 정부가 지원하는 전문가 과정도 즐비했다. 새로운 기술을 익혀 재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 역시 자발적 퇴직이긴 했지만 실업자였기에 ‘인터넷 전문가 과정’을 골라 듣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각종 검색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와 인터넷으로 미래를 개척해 보겠다는 당찬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영어에 미래를 걸었기에, 영어를 익히기 위한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당시 서강대에서 하루 4시간씩 영어회화 집중 코스를 수강하면서, 집에서는 하루 종일 CNN을 틀어 놓고 살았다. 영자신문도 구독하고, 전화영어도 이용했다. 새벽에 오성식이 진행하는 ‘굿모닝팝스’도 들었다. 그러다가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외국인 친구 사귀기’란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영어를 직접 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 ‘나’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국적과 성별, 대략적인 연령대(30대, 40대 등), 직업 등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소개글에 나는 아마 ‘코즈모폴리턴’이 되고 싶다고 적었던 것 같다. 나는 가끔씩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경향이 있는데, 그때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세계를 무대로 정확하게 뭘 할지는 모르지만, 뭔가 대단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었다고 본다.


나는 내 소개글을 올리고, 몇 명의 대상자를 물색해서 펜팔을 시작했다. 내가 고른 사람들 중 한 명은 스웨덴 사람, 한 명은 홍콩 사람이었다.






남편은 뒤늦게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온 사람이었다. 자신은 독일인이고 미국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한국으로 파견될 가능성이 있는데,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좀 알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 소개글에 적힌 ‘코즈모폴리턴’에 관심이 갔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


나는 아마도 “곧 캐나다에 공부하러 갈 예정이지만, 한국에 온다면 기꺼이 한국의 모든 것을 소개해 주겠다”라고 큰 소리를 뻥뻥 쳤던 것 같다. 나는 사직하기 직전에 여행담당 기자를 했기에 실제로 아는 곳이 많았다.


그렇게 내 영어 펜팔은 세명의 남자에게 일주일에 두세 번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진행됐다. 왜 굳이 남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 싶다.


처음에는 그저 일과를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오늘 누굴 만나서 뭘 했다든지, 날씨가 어떻다든지 등이었다. 같은 내용을 영어로 적어서 세명의 남자에게 ‘복사해서 붙이기’로 보냈다. 그 세명의 남자들도 자신의 일상을 적어서 보내고, 내가 다시 일상을 적어 답장을 보내고…이런 식의 반복이었지만 남편의 답장은 아주 가끔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남해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아마도 아버지 첫제사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남해에 내려가 오빠가 키우는 물고기 양식장에 가서 물고기 밥 주는 일을 거들었다.


밥을 던져 주면 물고기가 떼로 몰려와 밥을 먹는 장면, 물고기가 움직일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남해에서 돌아온 뒤 그런 장면을 영어로 적어서 세명의 남자에게 보냈다. 영어사전 한영사전을 끼고 끙끙대며 몇 시간에 걸쳐서 썼다.


그런데 다른 두 명의 남자는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냥 “그렇냐?” 정도로 그치고 또다시 자신들의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달랐다.


“나도 바다를 좋아하는 데, 물고기를 키우는 곳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네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


내가 쓴 글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나와 내가 쓴 글, 그리고 내 고향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고마웠다. 무엇보다 '바다를 사랑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뭔가 통하는 게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다른 두 명의 남자와의 펜팔은 형식적인 인사말 정도로 줄이고, 남편과는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 내 미래 등에 대한 얘기였다.





<You’ve Got Mail>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는 1998년에 개봉돼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당시에 굿모닝 팝스에 나오는 그 영화 대사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나는 마치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맥 라이언’이 된 것 마냥 그의 메일을 기다렸던 것 같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내가 이 영화 얘기를 했을 때, 남편은 “내가 톰 행크스보다 더 잘 생겼지”하면서 잘난 척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그 영화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몇 개월 후 한국으로 출장을 오게 됐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것도 그때였다.


그가 한국에 오기 직전에 우리는 사진을 서로 교환했다. 만나면 얼굴은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사진에서 본 남편은 옆모습이었는데, 꽤나 심각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얼핏 알 파치노를 닮기도 했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따뜻한 인상, 그러니까 톰 행크스 같은 모습을 좋아했다. 비록 내가 맥 라이언을 닮지는 않았지만.


내 사진은 잔디밭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배시시 웃는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사망 후 얼마 뒤에 찍은 사진이라, 살짝 슬픈 모습도 묻어 있었으리라 본다. 그런데 남편은 사진 속의 나를 “귀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라고 표현했다.


한 달 정도의 출장기간에 우리는 서너 번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경복궁, 창경궁, 남대문 시장을 안내하면서, 마치 한국을 소개하는 친선대사가 된 느낌이었다. 좋은 감정은 가졌지만, 미래를 약속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캐나다로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었고, 그가 한국으로 올지도 미지수였다.


그런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지 한 달 만에 다시 한국으로 왔다. 이번엔 출장이 아니라, 한국 주재원으로 나온 거였다. 물론 우리는 그동안 몇 차례 국제전화로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오고 얼마 후에 나는 작은 홍보 대행사에 재취업을 했다. 선배의 주선이었다. 클라이언트가 대부분 외국 기업이었고, 그 기업을 한국 언론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영어를 많이 써야 하는 직무였는데, 내 영어는 그렇게 충분치 않았다.


나는 잘 모르는 영어 표현을 남편에게 자주 물어봤고, 그는 성심성의껏 설명해 줬다. 솔직히 남편은 오랫동안 미국 회사에서 일했지만, 독일 사람인 데다 기술직이라,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영어가 워낙 낮은 수준이다 보니 큰 도움이 됐다.


어느 날 내가 홍보대행사 사장에게 된통 질책을 당했다. 직원이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 추궁이었다. 나는 당시 과장급 중간관리자였지만, 영어 표현 문구에 대해 책임질만한 능력은 없었다. 기자로서의 내 경험은 문장을 쓰고 다듬는 데 적합했지만 갑과 을이 완전히 뒤바뀌는 홍보대행사에서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내가 그 일을 남편에게 얘기하자, 남편은 그 사장을 싸잡아 비난했다. 내 잘못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나를 옹호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 남자는 왠지 평생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기분, 이런 남자라면 결혼해도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걸림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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