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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Oct 06. 2024

6. 누나가 다쳤어요!

대형견이라고 모두 입마개 하는 건 아니에요.

엄마는 개 전문가 조언에 따라 저를 데리고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다녔지요. 당시에 엄마는 연희동에 살았기에 주로 안산과 궁동산을 산책했어요.


안산은 연세대 북문, 서대문구청 뒤편을 돌아 홍제동, 독립문까지 이어지는 큰 산이랍니다. 산책로가 아주 잘돼 있었어요. 데크길도 있었고요. 하지만 사람 역시 많았답니다. 엄마는 혹시라도 저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사람이 많은 데크길로는 다니지 않고, 산 길로만 다녔어요.


그런데 엄마가 아무리 사람을 피해 다녀도, 시비를 거는 사람은 항상 있었어요. 언젠가 데크길로 가던 사람이 10여 미터 떨어져 산길을 걷던 엄마를 불러서 뭔가를 물어봤대요.


“저기요, 뭐 좀 여쭤봐도 되나요?”

“네, 무슨 일이신가요?”(엄마는 이때 그 사람이 길을 묻는 줄 알았다네요. 그래서 최대한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했지요.)

“그 큰 개는 입마개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이때 엄마는 엄청 열받았다네요. 질문은 언뜻 정중해 보였지만, “왜 입마개를 하고 다니지 않느냐?”라는 질책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것도 제가 뭐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거리도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에요.


엄마는 한바탕 퍼부어 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간신히 “이 개는 입마개 하지 않아도 되는 개예요!”하고 말았대요.


엄마는 그 당시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나름 힐링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늘 슬픔이 가득했거든요. 가끔 엄마가 제 목줄을 잡고 서서 한참 동안 하늘을 보고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저를 보는 엄마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을 때가 많았어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요. 한국에선 2021년부터 5종의 특정 맹견에게 입마개 착용이 의무화됐어요. 물론 의무화 견종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개가 공격성이 있다면 당연히 입마개를 해야 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대형견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니까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저는 참 슬퍼요. 아시다시피 우리 골든은 ‘세계 3개 천사견’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저도 아기를 좋아해요. 제가 갓난아기를 돌본 적은 없지만, 아기를 봐주는 골든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사람들 속담에도 ‘키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다면서요? 저는 엄마가 늘 빙구라고 놀려요. 사실, 빙구짓도 많이 하거든요. 헤헷


이모, 삼촌들, 제 바람이 있다면요. 대형견이라고 무조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조심할게요. 컹! (약속!)   




연희동에서 조심조심 산책을 다니던 엄마는 양평 집으로 오면 저를 뜰에 풀어놓을 수 있어서 좋아했어요.


어느 여름날 엄마는 양평 집에 수박 한 덩이를 사 왔어요. 누나가 여름 방학을 해서 양평집에 계속 머물러 있을 때였거든요.


엄마와 누나가 먹는 수박이 너무 맛있어 보였어요. 엄마가 빨간 속살을 조금씩 줬지만 그걸로 성이 안 찼어요. 계속 더 달라고 졸랐지요. 그랬더니 엄마가 세상에 수박을 통째로 주는 거 있죠. 껍데기이긴 했지만 살도 꽤나 많이 붙어 있었답니다. 얼마나 맛있었게요!


수박을 다 먹은 엄마와 누나는 저를 데리고 강변에 산책을 나갔어요. 강상 체육공원이라는 곳인데, 강을 보면서 걷는 산책로가 멋있는 곳이에요. 사람도 서울만큼 많이 없고요. 곳곳에 수풀이 우거져 있어서 쏴아아 하고 오줌 누기에도 제격인 곳이었어요.


누나는 평소에 학교에 다니느라 저랑 산책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저랑 함께 걷고 싶었겠어요. 이렇게 잘 생긴 남동생 흔치 않잖아요.


그래서 그날은 누나가 제 목줄을 잡고 함께 걸었어요. 그런데 누나도 저도 너무 신났지 뭐예요. 제가 먼저 달렸던 것 같아요. 누나도 저를 따라 달려왔지요. 그러다가 한 순간에 꽈당!


헉! 누나가… 누나가….


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버렸어요. 누나가 비명을 질렀어요. 엄마가 놀라서 뛰어와서 “괜찮냐?”라고 물었어요. 그때 누나가 “엄마, 나는 괜찮아”하는데, 누나 코에서 코피가 팡 쏟아졌어요. 안경은 벗겨져서 깨져버렸고요.


누나 다리도 팔도 바닥에 쓸려서 피가 났어요. 엄마는 반쯤 혼이 빠진 것처럼 놀랐지만 얼른 누나를 부축하고 병원 응급실에 갔지요.


엄마는 내내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 사거리 신호등에서 기어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하필이면 그 병원이 양평병원이었거든요. 아빠가 마지막 숨을 거둔 병원이래요. 그 병원, 그 응급실에서 누나가 치료를 받는 동안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착잡했을까요?


그동안 저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를 혼자 차 안에 내버려 두는 것이 처음이라 불안하긴 했지만, 큰일이 생겼다는 것을 저도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저는 얌전히 기다렸어요. 저는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엄마 눈을 볼 수가 없었어요. 너무 미안했거든요.


하지만, 누나를 데리고 나온 엄마는 저를 쓰다듬으며 “하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누나가 그저 스텝이 꼬였던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몰라요. 이런 엄마를 제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쨌거나 저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누나랑 산책을 못하게 됐어요. 아, 그러니까 누나와 함께 산책을 나가더라도 제 목줄은 항상 엄마가 잡았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엄마는 누나한테 산책 나갈 때마다 “긴 바지 입어!”라고 야단을 치더군요. 누나가 그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긴 했지요.


오늘도 제 얘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10월 13일 8시에 올릴게요. 바잇!





<작가의 말>

한국에서 입마개가 의무화된 5종의 개는 도사견, 로트와일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등입니다. 이 5개 견종의 잡종개도 해당됩니다.


동물 보호법상 의무화 견종이 아니면서 개물림 사고가 유독 많이 나는 견종이 진돗개인데요. 진돗개는 지자체에 따라 입마개가 의무화된 곳도 있다고 해요.


한 번씩 개물림 사고가 날 때마다 대형견 주인은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산책 나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요. 보는 사람마다 대형견을 비난하는 분위기라서요.


저는 물론 개 주인이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 입장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만큼 조심해야겠지요. 만약 개가 사람을 물었다면, 그 개는 안타깝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 주인도 마찬가지고요. 개 주인이라는 이유로, 내 개만 우선시하지는 않는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동물에 대한 상식이 너무 없는 것도 좀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무지가 편견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생활에 필요한 많은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또 편견을 없애기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동물 관련 교육도 지자체나 교육기관에서 좀 시켰으면 좋겠어요. 쓰레기 분리수거 방법을 설명하는 전단처럼, 개의 종류를 설명하는 전단 같은 걸 만들어 보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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