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건드리기만 해 봐! 확 박아 버릴 테니!”
나는 한동안 그런 각오로 다녔다. 개를 데리고 산책할 때마다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전투태세로 걸었으니 보기엔 씩씩했다. 아랫집 할머니를 보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토사문제로 시비 걸던 그 할머니가 원망스러워서였다.
한 번은 먼 이웃 동네 할머니가 아침 산책길에 나를 흘낏거리면서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처음이 아니었기에 평소라면 그냥 못 들은 체하고 지나갔을 일이지만, “할머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따지기도 했다. 그 할머니가 “아침부터 여자가 사나운 개를 끌고 다녀서 한마디 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분기탱천해서 “할머니 일이나 잘하시라”라고 쏘아붙였다. 속으로 쌍욕도 했다. 뒤돌아서서 “에이, 듣게 할걸!”이라며 후회도 했다. 다시 가서 퍼부어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렀다.
점점 싸움닭처럼 변해가는 나를 보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털을 바짝 세우고, 바늘 끝 하나 꽂기 힘들 정도로 피폐해져 가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어쩌면 그 당시 내 운명에 저항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의 형벌로 산 정상을 향해 끝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가 자살하지 않고, 희망도 포기한 채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저항이라고 했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저항을 택했지만, 나는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는 방법으로 저항을 택했던 것 같다.
그 저항은 첫 번째 화살(상황)로 인한 상처에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쏘는 것처럼 나를 온통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나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조차 잊고 있었다. 세상을 적으로 돌리고 완전히 고립되어 더 이상 일어서기 힘든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시 108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2021년에 양평으로 이사를 온 이후 ‘바쁘다’는 핑계로 108배도 하지 않고, 수행을 게을리하고 있었다. 그때 이런 법문이 귀에 들어왔다. “당신의 행복이 타인의 눈물 위에 세워진 모래탑이 아니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정말 그래 보였다. 그동안 내가 누렸던 행복은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생각, 그리고 그 눈물은 누구의 눈물이었을까라는 생각. 남편의 전처와 그 가족들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그때 하와이의 고대 치유법 ‘호오포노포노’에 나온다는 ‘미용고사’를 알게 됐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 108배를 할 때마다 이 말을 읊조렸다. 눈물이 쏟아져 나와 절을 하다 말고 엎드려 펑펑 울기도 했다. 그때의 그 눈물이 참회의 눈물이었는지, 감사의 눈물이었는지, 원망의 눈물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효과는 있었다.
점차 마음은 안정을 찾아갔지만, 현실이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상속세 자체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에 이런 기사를 봤다. 대한민국에서 상속세를 단 10원이라도 내는 사람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2017년 기준). 300만 원 이상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대한민국 전체의 1%에 해당된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럼 상속세 22억 원이 나온 나는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할까? 모르긴 해도 0.5% 이내에 들지 않을까 싶다. 줄잡아 나는 상속세 기준으로만 보면 대한민국 상위 1%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우선 놀랐다. 우리 경제력이 그 정도 됐다는 점에서 자칫 우쭐할 뻔도 했다. 그런데 실생활은 완전히 딴판이라니, 그 괴리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속세가 아닌 부(富)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상위 1%의 삶이 어떤지 나는 잘 모른다.
기업가가 아니라면, 빌딩을 소유하고 있거나, 강남에 좋은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있겠지? 명품 백도 마음대로 사고, 골프도 칠까? 해외여행할 때는 최소 비즈니스석은 타겠지?
일단 상상이 안되니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봤지만, 나는 대한민국 1%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 생활은 위에 적은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기에. 다른 것은 몰라도 대한민국 상위 1%라면 최소한 자녀학비를 빌리거나, 생활비를 걱정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상속 분쟁에 휘말렸다 치더라도.
괜히 심통이 났다. 몇 년 전 면세점에서 본 그 흔한 샤넬백 하나 사지 못한 것도 억울했고, 우리 남편은 왜 매번 미국 아웃렛에서 신발이며 셔츠를 샀는지 이상했다. 왜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매번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웅크리고 다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우리 언니는 나중에 상속세 얘기를 듣고 놀라서 말했다. 그렇게 돈이 많았느냐고 물었다. 매번 한국에 올 때마다 아이며 내 옷차림이 허름해서 옷 살 돈이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살고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돈을 아끼기 위해 그렇게 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생활 태도와 생활 습관의 문제였다. 사치만 하지 않았을 뿐 나름대로 풍족하게 산 것도 맞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는 왜 그렇게 살았는지, 남편이 살았을 때 써 보지 못한 돈, 결국 죽어서도 써 보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뭔가 억울했고,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한국에 온 걸 후회하는 마음이 그때 가장 많이 들었다.
나는 변호사한테 혹시 (기업가가 아닌) 일반인 중에 상속세를 그렇게 많이 낸 사례가 있느냐고 물었다. 몇 백억 자산가 중에선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정도 수준에선 없다고 했다. “아니, 한국에 기업가도 많고, 부동산 부자도 많은데 어떻게 상속세 내는 비율이 그렇게 낮을 수 있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변호사의 말이 뼈를 때렸다.
“돈 있는 사람들은 미리 준비를 하기에 상속세를 그 정도로 많이 내지 않습니다.”
결국 준비의 문제였다. 남편은 기껏해야 월급쟁이였고, 알다시피 월급쟁이는 ‘유리알 지갑’이라고 할 정도로 소득세를 꼬박꼬박 내는 집단이다. 소득세 외의 세금에 무지했다. 우리는 한 번도 우리가 부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세금 상담을 해 볼 생각도 못했다.
사실 집을 지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경제적으로 그렇게 풍족한 편이 아니었다. 아마도 남편이 스톡옵션으로 받은 회사 주식 시세가 당시에 올라서 막판에 재산 규모가 훌쩍 뛴 것 같았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것 자체에 있었다. 남편이 외국인이었기에 땅도, 집도, 차도 모두 내 명의를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그 모든 것이 증여로 계산됐다. 우리는 증여니 상속이니 하는 개념 없이 그저 ‘공동 재산’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죽고 나니 그게 모두 증여로 계산됐다. 혜택은 줄어들고 가산금은 늘어나는 구조였다. 증여 시점에 비해 가치도 떨어졌다.
부인에 대한 상속세 공제가 30억 원이란 말은 나중에 들었다. 검사로 일하던 친구의 남편이 해 준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 검사도 우리 상속세가 22억 원이라고 했을 때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였다.
뒤늦게 알았다. 우리가 한국에 집을 짓고, 한국에 와서 했던 모든 행위들이 전부 불리하게 작용했다. 나중에야 집을 상속에 포함시키자고 했지만, 변호사는 어렵다고 했다. 나는 당초 집을 상속에 포함시키면 당장이라도 팔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집을 지키기 위해 증여에 포함시키자고 했지만, 알고 보니 그럴 염려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 변호사들은 너무 무심했다.
세금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국세청이 이미 낸 세금을 이중으로 계산하고 변호사조차 그걸 간과하는 해프닝도 생겼다. 결국 바로잡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변호사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
그 당시 내 상황은 고립무원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상속세 얘기를 했을 때 누구의 공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억울했지만, 억울하다고 말할 곳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지에서 나온 결과였다고 받아들여야 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운명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 운명이 나를 어디로 몰고 갈지 나는 두려웠다. 그렇게 뜬금없이 운명 공부를 시작했다.
<작가의 말>
참 재미없는 글이지요. 99%가 공감하지 못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계속 쓰기 싫다는 생각과 싸우다 보니 '중도하차'의 유혹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왜 시작했는지 자괴감에 시달릴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힘들게 한 문제였고, 지금도 진행 중인 문제라 쓰지 않을 수가 없네요. ㅠㅠ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상속세율이 높기로 유명한 나라에 속합니다. 50억 기준으로 상속세율이 50%에 달하니까요. OECD 38개 회원국의 명목상 최고 상속세율 12.9%에 비해 엄청난 수준이지요. 캐나다,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12개 국가는 상속세가 아예 없습니다. 다만 자본소득세라는 것이 있어서, 상속받은 자금을 처분하는 시점에 그 차익금에 대해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세금 납부 부담이 미뤄지기 때문에 편법 상속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요.
어쨌거나 이런 높은 세율 때문에 상속세 없는 나라로 이민 가는 한국 부자들도 많답니다.
상속세가 있는 나라들도 배우자 상속 공제에 대해서는 후한 편인데요. 영국과 미국은 배우자에 대한 상속은 전액 공제된다고 합니다. 결혼 후 형성된 재산은 부부가 공동 노력해 만들어졌다는 시각에 따른 것이지요.
우리나라 상속세법은 1950년에 만들어졌다는데요. 그때는 지하경제가 발달한 시점이라,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을 때였지요. 상속금을 남긴다는 말은 무조건 숨겨놓은 돈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혹시나 제 글이 상속세를 내기 싫은 부자의 푸념같이 들릴까 봐 한 가지 더 덧붙여 봅니다. 소득세를 착실하게 납부한 직장인의 배우자 입장에서 상속세율이 가혹한 면도 있지만, 어쨌든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상속세를 내는 것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지요. 저 역시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상속세가 상속금 기준으로 한꺼번에 나와서 일정 시기까지 전부 납부해야 하고, 상속재산이 들어오기 전인데도 그걸 내지 못할 경우 무조건 압류가 진행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난감하기 짝이 없지요. 제가 힘들었던 것도, 바로 국세청의 압류 때문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정부에서 상속세 최고 세율을 40%로 낮추고, 납부 방식도 개인별 상속금에 따라 내는 식으로 바꾼다는 얘기가 있어서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