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사를 제대로 이용하다, 정도전 (1)

조선 직장인 열전 - 조선 인물들을 통해 배우는 직장인 처세법

by 신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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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가운데 새 세상을 꿈꾸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의 창업을 도운 최고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쇠락한 고려 왕조는 생명을 좀 더 이어나갔을 수도 있고, 새로운 왕조의 주인공은 이성계가 아닐 수도 있었다. 새로 창업한 ‘주식회사 조선’의 1대 왕 태조 이성계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가졌던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1342년 충혜왕 복위 3년에 문신 정운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총명하여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정몽주도 그와 함께 수학한 동문이었다.

성리학을 공부한 전도유망한 신진사대부 출신이었던 정도전은 과거 급제 후 비교적 순탄하게 고려 관리로서 길을 걸었으나 갑작스러운 시련에 직면한다. 원나라의 속국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반원친명(反元親明) 정책을 펼치던 공민왕이 갑자기 시해를 당한 것이다. 공민왕의 아들이 이인임의 주도로 왕위에 올라 우왕이 되고, 이를 계기로 권문 세족으로서 기득권을 대변하던 이인임이 정권을 잡아 친 원나라 정책으로 돌아선다. 성리학을 공부한 신진사대부 출신이었던 정도전은 성리학적 질서에 어긋나고 당시의 국제정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에 격렬히 반발하였다.


“원나라는 우리 고려를 오랫동안 못살게 괴롭혔습니다. 더구나 오랑캐의 나라 아닙니까! 그 수치스러운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공민왕께서도 그토록 노력하셨는데, 그 유지를 저버리고 다시 원나라 편에 선다는 게 말이 됩니 까?”

“시끄럽고… 고려는 다시 원나라와 손을 잡을 것이니 그리 아시오. 그리고 이번에 원나라에서 사신이 오는데, 그대가 나가서 사신을 맞도록 하시오.”

“그러면 저는 사신을 맞으러 나간 자리에서 당장 그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리든지, 아니면 그를 그대로 묶어서 명나라로 보내버리든지 하겠소이다.”


원나라 사신을 맞으라는 이인임의 지시에 정도전은 사신의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화끈한 항명으로 그의 분노를 산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도전은 유배 길에 오르고 마는데, 사실 조금만 타협했다면 가지 않아도 됐을 유배였다.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는 일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정도전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정도전의 유배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졌다. 중앙정치에서 완전히 소외되었지만 정도전은 백성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곤궁한 삶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고려 왕조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정도전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줄 사람으로 당시 명성을 떨치던 이성계를 선택한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운명적인 만남

이성계는 공민왕 시기에 급부상한 신흥무인세력이었다. 당시 이성계는 홍건적을 몰아내고 원나라 잔존 세력을 축출하는 한편, 백성을 괴롭히던 왜구 세력을 무찔러 불패의 명장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었다. 그때까지 이성계는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야겠다는 야망을 보인 적 은 없었다. 하지만 혁명을 꿈꾸는 정도전에게 이성계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유배를 끝냈으나 여전히 관직에 복귀하지 못한 채 유랑생활을 하던 정도전은 함주로 가서 이성계를 만난다. 그를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로 삼아도 될지 ‘리더 면접’을 보러 간 것이다. 이 만남으로 인해 정도전과 이성계의 인생, 더 나아가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꾸게 될 줄은 그들도 아직은 몰랐을 것이다.


“저는 정몽주의 절친인 정도전이라고 합니다.”

“아, 포은 선생의 친구 분이셨군요. 예전에 여진족과 전쟁을 했을 때 뵌 적이 있지요. 인품이 정말 훌륭한 분이셔서 제가 무척 존경했는데, 친구분 이시라면 누구신지 더 이상 여쭤볼 것도 없겠습니다. 사실 저는 평생 전쟁 터에만 있던 무인이라 그런 학자 분들을 마음속으로 참 존경합니다.”


정도전은 막사에 오면서 본 이성계의 군대가 무척 인상 깊었다.


“이 정도 군대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있겠습니까?”


불쑥 치고 들어온 말의 뜻을 이성계도 알아챘으나 그는 딴청을 부렸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눈치 빠른 정도전도 마음과는 다른 소리를 했다.


“저 몹쓸 왜구를 물리치는 일 말입니다.”

“아, 난 또 무슨 말씀인지 했습니다. 당연하지요. 하하, 우리 술이나 한 잔 드실까요?”


서로 딴소리를 하는 듯했지만, 이미 어떤 마음인지 서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성계의 가슴에 이전엔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던 야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흥무인과 신진사대부 세력이 결합하여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좋은 팔로워가 훌륭한 리더를 만든다

정도전과 뜻을 모은 이성계는 조선의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거저 얻은 자리는 아니었다. 수많은 고비가 있었고 그때마다 정도전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이성계를 실권자로 만든 위화도회군 또한 역성혁명을 향해 달려가는 정도전의 큰 그림 속에 있었다.

권력 전횡을 일삼던 이인임이 정계에서 물러나자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당대 영웅 최영이었다. 최영은 자신처럼 왜구를 토벌하며 큰 명성을 떨친 이성계를 정치적 파트너로 택했다. 그러나 권력은 심지어 혈육 사이라도 나눌 수 없는 법이다. 둘의 입장이 결정적으로 갈라진 계기는 명나라가 쌍성총관부가 있는 철령 이북의 땅을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면서부터였다. 원나라에 빼앗겼으나 공민왕 때 수복하였던 땅인데, 원래 원나라의 영토였으 므로 다시 내놓으라는 명나라의 억지 주장이었다. 최영은 명나라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선제공격을 선언하였고 요동정벌을 위한 선봉으로 이성계를 내세운다. 대국 명나라를 맞서 싸우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드는 것과 같았다. 그런 위험한 일을 이성계에게 맡긴 배경에는 자연스럽게 정계에서 밀어내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성계는 4대 불가론을 내세워 반대하지만, 왕명을 내세운 최영의 뜻을 꺾지 못하고 결국 출병한다. 하지만 이성계는 함께 출정에 나섰던 조민수와 함께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리며 오히려 그 칼끝을 우왕과 최영에게 겨눈 다. 국가적 차원에서 위화도회군이 과연 옳았는지 여부는 일단 떠나서, 적어도 이성계가 명실상부한 실권자로 부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위화도회군이었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후 우왕이 폐위되지만 이성계를 견제한 조민수와 이색의 결탁으로 그 아들인 창왕이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이성계 일파는 새로 옹립된 창왕이, 공민왕이 아닌 요승 신돈의 후손이기 때문에 폐위시켜야 한다는 폐가입진론*을 내세웠다. 이 주장으로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창왕도 폐위시킨 후 강화도로 추방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폐가입진론이 고려 왕권의 힘을 축소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새로운 왕조를 일으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힘이 강하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도전은 우선 권문세족이 독점하고 있던 토지문서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창왕의 뒤를 이은 공양왕의 승인을 받아 과전법을 도입한다. 즉 관리에게 토지의 세금을 걷는 권리만을 나누어주는 법을 도입하여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소수의 기득권이 토지를 독점하는 폐단을 막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정도전의 개혁정책은 새 왕조 개창의 명분을 축적하였고 마침내 조선의 창업을 성공으로 이끈다. 훗날 정도전은 이렇게 말한다.


“한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한 것이다.”


자신이 이성계를 선택했고 이용하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정도전은 조선을 세우고 이성계를 왕으로 만드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신하였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자신의 성공 스토리도 함께 썼다.


우리는 회사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상사를 선택할 수는 없다. 직장인으로서 정도전에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상사를 제대로 도왔고, 상사를 가장 높은 자리의 리더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좋은 팔로워가 훌륭한 리더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기술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리더의 영향력은 예전에 비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상사만 알던 전문 지식을 이제는 신입사원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상사의 말이 곧 법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비합리적인 지시를 내리면 직원들의 반발을 부를 뿐이다. 점점 부하 직원의 영향력이 커지고 그들의 도움이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원의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뛰어난 실력과 노력은 기본이고 회사 안에서의 정치력, 천운까지 모든 것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위에서 끌어올려주는 것과 함께 부하 직원들의 역량도 중요하다. 리더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리더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이지 실무를 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모든 과정에는 유능한 팔로워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수밖에 없다.

최고경영자가 아닌 이상 우리 모두는 팔로워의 위치에 있다. 우리는 리더가 되기를 꿈꾸기 전에, 좋은 팔로워 즉 유능한 부하 직원이 되는 것을 꿈꿔야 한다. 내가 모시는 상사를 훌륭한 리더로 만들고, 더 나아가 높은 자리로 올려놓겠다는 야무진 꿈도 한 번쯤은 가져 보아야 한다.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상사라면 더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결국 나에게도 상사는 필요한 존재이고, 상사의 성과가 인정받는 과정에서 내 실력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조선 창업 과정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공헌도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정도전을 크게 중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최고의 실권자가 된 그는 마침내 조선의 설계자가 될 수 있었다. 정도전은 단순히 지식이 많고 말을 잘해서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었다. 위화도회군, 폐가입진론, 과전법 시행 등 결정적인 시점마다 상사가 필요로 하는 성과로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 또한 그런 성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상사도 나의 실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검증된 실력을 보고 나를 끌어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폐가입진론(廢假立眞論) : 가짜 왕을 몰아내고 진짜 왕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우왕을 신돈의 아들로 보아 그의 왕권 정통성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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