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직장인 열전 - 조선 인물들을 통해 배우는 직장인 처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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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후 이성계는 곧바로 세자 책봉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먼저 개국공신 배극렴이 입을 열었다.
“적장자를 세자로 세우는 것이 고금의 진리입니다.”
또 다른 개국공신인 조준도 의견을 개진했다.
“태평한 시절에는 적장자를 세우고, 비상시국에는 공이 많은 자를 세우는 것이 옳습니다.”
사실 가장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그의 말대로 장남인 이방우나 건국에 가장 공이 많았던 이방원을 세자로 세우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이었다. 조선이 건국되기 전, 이성계 일파가 큰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성계가 말에서 낙마하여 병중에 있음을 틈타 정몽주가 이끄는 온건개혁파의 대대적인 반격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 정도전도 정몽주에 의해 유배 중에 있었고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임으로써 온건개혁파는 순식간에 중심을 잃었고, 급진개혁파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끝까지 설득하고자 했던 이성계의 미움을 받게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조선 건국에 있어 이방원의 공로가 크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성계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이성계에게는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인 이방원을 포함한 6명의 아들 외에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얻은 두 명의 아들이 더 있었다. 한씨가 조선 건국 1년 전에 지병으로 죽자 강씨를 곁에 두고 아끼던 이성계는 자신보다 스무 살가량이나 어린 그녀의 자식에게 마음이 가 있었던 것이 다. 결국 이성계는 신덕왕후 강씨의 막내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삼기로 결심한다. 정도전은 적극적으로 누구를 세자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침묵으로 이성계의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만약 정도전이 적극적으로 이방우나 이방원을 세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아무리 이성계라도 그의 말을 그냥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이미 신덕왕후 강씨와 손을 잡고 있었기에 조선 건국에 아무런 기여도가 없는 11살짜리 막내 왕자를 세자로 선택한 것이다. 명분도 찾아볼 수 없는 결정에 이복형들, 특히 이방원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왜 하필 가장 어린 이방석이었을까?
정도전이 꿈꾸는 이상적 정치제도는 정승을 최고 실권자로 한 신권 중심 정치였다. 군주는 정승보다 위에 있을뿐 실질적인 권한은 정승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왕권 중심 정치에서 왕이 훌륭하다면 안정적인 치세를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폭군이라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왕권을 견제할 신권 중심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도전은 자신의 신념과 다른 인물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격하는 성격이었다.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주의자였기에 처음부터 한 배에 탈 수 없었던 셈이다. 정도전이 이방원을 집요하게 반대하여 권력에서 완전히 소외시키고자 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방석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방원 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다. 그저 왕권을 약화시키고 신권을 강화하는 데에 딱 좋은 인물 정도였던 셈이다. 물론 이성계의 총애를 받는 신덕왕후 강씨와 손을 잡아 자신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전략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의 야심은 더 이상 오래가지 못한다. 신덕왕후가 죽고 이성계도 병석에 누워 권력의 진공상태가 찾아왔을 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왕자들의 사병까지 모두 빼앗은 정도전은 긴장을 늦추고 있었고 이 틈을 타 이숙번의 사병 지원을 받은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첫 번째 제거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정도전의 권력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허망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성계를 리더로 키운 첫 번째 전략은 성공했다. 리더와 팔로워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석을 선택한 두 번째 전략은 오로지 자신의 성장에만 관심을 두었다. 리더의 성장은 도외시하고, 신권 정치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리더를 이용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나이가 가장 어렸던 이방석은 조선 건국에 아무런 공이 없었다. 차세대 리더로 명분이 부족했던 것이다. 정도전이 진정으로 리더와 함께 성장하고, 더 나아가 조직의 안정 및 성과를 중요시했다면 차선책으로라도 이방원을 선택해야 하지 않았을까.
정도전이 신권 중심 정치에 집착하지 않고 왕권과 신권이 부드럽게 조화될 수 있도록 제도와 기틀을 만드는 노력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조선 초기 극심한 혼란을 야기한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태종도 수차례 신하들을 숙청하며 왕권에 집착하는 모습보다는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였을 수도 있고,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통해 태평성대를 연 첫 번째 왕은 세종이 아니라 태종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도전의 실패 사례는 리더와 팔로워가 함께 성장하고 상생해야 하는 관계임을 말해준다. 제아무리 유능한 부하라도 상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 면 자신의 실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하며 제 아무리 유능한 상사라도 부하 직원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데에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면서 유능한 리더와 팔로워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성공 모델은 이방석과 정도전이 아니라 이방원과 하륜이 보여준다. 유능한 부하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이방원과, 정도전의 견제에 막혀 기회를 얻지 못하던 하륜이 만나 서로를 각각 왕과 정승으로 끌어올려준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와 부하 직원이 서로 견제하는 상황에 마주칠 수도 있다. 상사는 자신보다 뛰어난 부하 직원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게 될까 두려워할 수 있고, 부하 직원은 자신의 실적을 상사가 가로채지는 않을까 경계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실력 있는 상사와 부하 직원이라면 이런 신경전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상사는 부하 직원의 실력을 이용하고, 부하 직원은 상사의 지위를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