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오후 급한 일이 생겨 볼티모어 시내를 가야 했다. 저녁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상점의 문과 건물의 불까지 꺼져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서인지 신호등에 걸릴 때면 어딘가에서 적군이 총을 들고 올 것 같은 불안에 차 문을 잠갔다. 미디어에서만 듣던 코로나 19의 두려움이 인제야 피부에 와 닿았다. 거리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생계도, 삶도 사라지고 있는 이 순간을 목격하자 숨이 가빠지고 갈증이 났다. 손님보다 경찰차가 더 많은 주유소에 들러 커피와 초콜릿을 샀다. 비닐장갑까지 끼고 샀는데도 커피는 많은 사람이 컵과 뚜껑을 만졌을 거라는 생각에 마실 수가 없었다. 나는 당이 떨어진 사람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려 급한 대로 초콜릿을 먹었다. 급한 일을 다 보고 그 어둠의 시내를 빠져나와도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삶의 거리가 이 혼란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듯 초콜릿의 달콤함도 예전 맛이 안 나고 쓰기만 했다.
코로나 19가 발생하여 자발적 격리를 시작했을 때도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 필터 없는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물을 빼앗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 수가 없었다. 나는 필터가 있는 냉장고가 있으니 그 물을 마시면 된다. 식품도 같은 것을 두 개 이상 사지 않았고 주식인 쌀조차 한 포대만 샀다. 휴지를 왜 사는지는 잘 모르지만, 불안 심리가 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말처럼 미국은 불법 체류자나 초기 이민자들 그리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30년 전 미국에 이민 와 시내에서 비즈니스를 20여 년 하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기 때문에 저 소득층의 불안을 나는 이해 한다. 도시의 수도관을 통해 나오는 물은 바로 먹을 수 없을 만큼 열악하고 작고 좁은 집에서 많은 수의 사람이 살고 있어 자발적 격리를 해도 사실 열악한 환경에 있다. 조금은 그들보다 나은 생활환경에 있으니, 나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된다. 또한, 이러한 위기도 곧 풀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실천하며 필요할 때만 장을 보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기 전부터 나는 삶의 거리를 두면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최근 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단절이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그 시간 속에서도 행복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질과도 거리를 두고, 욕망에도 거리를 둬도 괜찮은 나이가 60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이 60에 삶의 거리를 두기 시작해, 나름 맛을 알아가고 있을 때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어도 별 답답함을 느끼지 못했다. 미니멀한 생활을 하면서 누구와도 견주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나는 잘 늙어가는 축복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내의 폐허가 된 모습을 보고 나서는 나만의 삶의 거리는 사치 같았고 나만의 행복 속에만 빠져든다는 것이 불편했다. 아니 마음이 아프다. 내가 삶의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고 마음을 먹은 건 남 또한 편안한 상태여야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쌓아 놓은 재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뿐인데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조금이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일까 궁리를 해봤다. 우선 타인을 위한 기도를 매일 하고 있으며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는 글과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큰 캔버스에 물방울을 그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을 향에 올라오는 물방울을 그리면서 이 물방울들은 빛을 갈구하는 우리들이라는 생각에 흰 점을 찍을 때마다 고통받는 사람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작은 빛을 향에 그곳으로 서서히 올라가는 모습을, 그 빛은 주님의 빛이고 희망이니 모두 깨어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 역병인 된 코로나 19가 우리 모두의 거리에서 멀어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속히 풀리길 기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가 지향하는 삶의 거리를 두면서 살 수 있는 날 또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