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름아트센터에서 영화보기 10 - 메모리아
원래 2022년 1기 시네클럽을 마감하는 열 번째 글은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에 대해 쓰려고 했다. 잠시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자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외아들 까를로를 전쟁으로 잃은 제페토가 만든 목각인형인 피노키오가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 영원한 삶을 포기하고 유한한 존재가 된다.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는 극 중 여신의 얘기는 이 영화의 주제이다. 그리고 제페토가 피노키오에게 하는 말, "피노키오 내 아들, 내가 널 다른 아이로 만들려고 했구나....네 모습 그대로 살아라. 난 널 사랑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나도 아버지로서 바로 이 장면에서 울컥했다. 넷플릭스에도 있으니 강추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감동적인 영화를 제쳐두고 마지막 글의 대상으로 선택한 영화는 <메모리아>다. 너무 괘씸한 영화라서 도대체 이 영화는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싶었다.
실은 이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시네클럽 연간 관람 횟수가 남아서 봤다. 그리고 중간중간 쉼 없이 졸았다. 나만 존 줄 알았더니 아내는 초반부터 졸았다고 했다. 극장을 나오면서 아내가 한 충격적인 말, "감독을 찾아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어." 아내의 말에 공감했다. 두 시간 동안 관객들(최소한 나와 아내)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 감독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름 작품성 있는 비흥행작품도 가끔 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예술영화로서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 너무 많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이 작품을 돈 주고 수입해서 배급하는 용감한(?) 영화사가 있는가였다. 티켓부스에 있는 명필름 직원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먼저 메모리아를 혹시 보셨는지 물었다. 전주영화제에서 보셨다고 했다. 정식으로 수입되어 배급된 영화라고 했다. 나는 너무 졸리고 힘들었다고 했다. 직원분들이 바쁘셔서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더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검색을 해보더니 칸느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우리는 한 번 더 놀랐다. 도대체 심사위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에게 상을 준 것일까. 또한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그동안 칸 영화제에서 수차례 수상을 한 유명한 태국 출신 감독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관객을 힘들게 한 괘씸한 영화를 내 관점에서 풀어보자.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정지된 화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문제의 쿵하는 소리에 주인공도 관객도 놀란다. 쿵하는 소리의 정체를 찾아가는 것이 스토리라면 스토리이다. 이 정지된 장면들은 잠깐이 아니다. 장면 전환이 빠른 다른 상업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오랜 시간 화면을 정지시켜 놓는다. 한마디로 아주 긴 롱테이크로 찍은 씬 스무 개 미만으로 구성된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제작비는 출연료 제외하면 10억 미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 스포라 얘기할 순 없지만 마지막에 돈이 조금 들어가는 장면이 한 번 나온다). 이러한 롱테이크는 우리 일상에 가깝다. 우리 일상은 끝없이 이어지는 롱테이크다. 상업 영화는 우리 일상과 달리 빠른 장면 전환으로 압축되고 특별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끔 정지된 장면과 롱테이크를 통해 보다 현실에 가까워지려는 것 같다.
좋다. 정지된 장면과 지루한 롱테이크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두 번째 장면에서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동차의 도난 경보등이 갑자기 함께 울리는 것은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면, 우리의 지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감독은 아마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음으로는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기억'이다. 틸다 스윈턴이 연기한 제시카는 여동생과의 대화 중에 서로의 기억이 다른 것을 발견한다. 또한 제시카에게 들리는 괴이한 쿵하는 소리의 정체를 찾는 것을 도와주던 음향엔지니어 에르난은 다른 날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그곳에 없는 사람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숲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도 에르난이었는데 제시카는 에르난과의 교감을 통해 그의 기억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우리의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되지만 기억의 공유를 통해 우리는 연결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결말부에서 소리의 정체가 밝혀진다. 아내는 이게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다고 했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감독에게 감사했다. 그래도 이유를 알려주셨으니. 이 장면마저 없이 끝났다면 나는 더 괴로워했을 것이다.
종합해 보자. 첫째, 우리의 삶은 화려한 장면전환이 아니라 영화의 롱테이크처럼 이어지고, 둘째, 우리의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되지만 기억을 공유하며 연결되며, 셋째,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신기한 일들이 있기에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뭐지?
아, 이게 아닐까? 그런 게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 지루하기도 하고,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지만 결코 다 이해하거나 알 수는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보듬어주자. 이런 게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삶의 실체를 체험하라고 관객들이 지루하고 엇갈리고 알 수 없게 만든 걸까?) 내 능력으로는 더 이상의 해석이 불가능하다. 제목이 기억이니 기억에 관한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중에 다른 글을 읽으니 아피찻퐁 감독이 실제로 머릿속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는 증상(폭발성 머리 증후군 Exploding Head Syndrom)을 겪은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그 증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내에게 말해야겠다. 우리를 힘들게 하였으나 쿵 소리로 고생한 감독을 때리지는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