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 Dec 28. 2022

(시네클럽) 수프와 이데올로기

명필름에서 영화보기 7 - 양영희 감독 자신의 재일조선인 가족 이야기

양영희 감독은 전작 디어 평양(2006)과 굿바이 평양(2011)을 통해 조총련 간부 집안인 자신의 가족사를 다루었다. 이 두 작품에서는 특히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살고 있는 오빠들과 조카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번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와 양영희 감독 자신, 그리고 일본인 남편 아라이 카오루를 통해 어머니의 얘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감독 자신이 어머니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양영희 감독은 평생동안 가진 것을 북한에 있는 오빠들에게 보내주느라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작품 속에서도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오빠들에게 다 퍼주기만 하는 어머니를 힐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딸의 온갖 구박에도 어머니는 아무말없이 눈을 감고 듣고만 있다. 나는 이 장면이 무척 가슴아팠는데 이런 잔인한 장면에도 카메라를 들이댈 수 밖에 없었던 감독의 마음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세 아들을 다 북한에 보낸 부모를 원망했으며 보내놓고서도 계속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하는 상황에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 양영희는 어머니가 왜 한국 대신 북한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점차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는 이데올로기 때문만이 아니고 제주도 4.3의 참상을 목격하고 일본으로 피난을 온 것이었다. 


결국 양영희는 나중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에 오게 된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 영화의 화자인 양영희가 변화한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남편 카오루가 집에 오는 날이면 닭고기 수프를 끓여준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수프를 먹는 장면은 이데올로기 보다 더 진한 가족애를 상징한다.  딸인 양영희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수프를 통해 어머니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아픈 가족사를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 조명한 양영희 감독의 용기와 25년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