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름에서 영화보기 8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소개되었을 때 현란한 특수효과와 황당한 스토리를 보고는 볼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명필름아트센터에서도 버젓이 상영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사랑하는 극장, 명필름아트센터의 안목이 이 정도였나, 생각하며 몇 주간 관람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보다는 SF나 마블영화를 더 좋아하는 아내의 취향에 맞겠다 싶어 드디어 영화를 보았다.
울었다. SF 액션 영화를 보고 울다니.
빨래방을 하는 현실의 삶은 고단하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부모의 뜻과는 달리 엇나가고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을 한다. 영화의 소재가 되는 멀티버스, 즉 다른 공간에 수많은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바탕이 되면서 볼거리와 흥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내가 빠져들었던 지점은 정신없이 바뀌는 멀티버스의 세계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조부 투파키, 에블린의 딸인 조이가 멀티버스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존재는 에블린과 마지막 싸움을 하게 된다. 조부 투파키, 조이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삶은 서로에게 고통만 안겨주었으니 이제 자신은 영의 세계, 베이글로 들어가서 사라지겠다고. 에블린은 조이를 막으며 말한다. 비록 삶은 베이글처럼 허무하고 고통 속에 있으나 어린 시절에 네가 주었던 그 기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냥 그대로 있어달라고. 내가 눈물을 흘린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힘들고 지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조이의 성적지향도 가래떡 처럼 긴 손가락을 가진 행성도 모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는 메세지이다.
정신없는 멀티버스의 세계 속에서도 진정한 가족의 가치를 찾아 보여준 두 감독(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내공이 깊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것,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들을 밑거름으로 비바람 속에서도 행복의 나무를 키워나가는 것, 이것이 가족이 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기. 사람도 영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