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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Sep 05. 2022

[도와주세요]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울고 싶었다

나와 같은 생을 사는 당신들이 아는 체도 없이 나를 지나치는 게 이상해서

도와주세요


말해도 될까 모르겠어요

사실은 아주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냅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울어보자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러면 누구는 나를 도와줄까


왜 그러시죠 물으면

생리통 때문이라고 할까

오랜 지병이 있다고 할까


아니면

나와 같은 생을 사는 당신들이

아는 체도 없이 나를 지나치는 게 이상해서

그랬다고 할까


나는 왜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는가

나도 겉만 멀쩡한 척하려는 거짓말쟁이 아닌가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로

마음을 열지 않는 당신들처럼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도와주지 않는 당신들처럼




요즘 몸상태가 심상치 않다.  안쪽에 다래끼가 하나 나더니, 일주일이 넘도록 미열이 올랐다. 코로나19 의심되어 신속항원검사를  차례나 받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체온계를 샀다. 다행히도 코로나 전조증상이 아니고 면역력이 급강한 거였다. 미열이 떨어지고는  몸에 급성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고, 뜨끈한 갈비탕  그릇에 위장염이 도지기도 . 팀원들의 확진으로 일할 손이 줄줄이 떨어져 나갈  팀장님이 쥐어주신 고급 비타민도 소용이 없었다. '컨디션'이며 '저질체력'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직장인으로서 골골대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면역력'이라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주말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토요일마다 새로운 질병이 찾아오니 이제는 어떤 새로운 증상이 찾아올지 기대가  지경이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실은 반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만큼, 건강하지 못한 신체에는 정말 건강하지 못한 정신만이 깃들었다. 평소라면 웃고 넘어갔을 대표의 잔소리에 반색을 하고 회사 전체의 문제를 언급하기도 하고, 집에 와서는 청소도 안 했다. 향초를 엎어서 엉망진창이 된 원피스는 몇 주 동안 그대로 걸어뒀고, 주문한 김치는 봉투가 팽팽해질 때까지 싱크대에 방치해두었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공황장애의 오랜 부작용인 불안과 초조가 심해졌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남자 친구가 회사 앞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퇴근 후 1시간 이내로 데리러 오면 딱히 불편한 점이 없었다. 그런데 요새는 회사 앞에 조금만 일찍 도착해도 근처에 출근하는 동료는 없는지, 당장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도와줄만한 착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근처에 있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했다. 보통 퇴근 후에는 근처 공원을 걸으며 노래를 듣거나 올리브영 따위에 가서 간단하게 쇼핑을 하다가 "왜 이렇게 일찍 데리러 왔어"라며 즐거운 투정을 부리기도 했는데, 요새는 그 시간이 두려워서 괜히 사무실에 30분을 더 앉아있기도 하고 금방 끊을 줄 알면서도 공연히 가족들한테 돌아가며 전화를 걸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이런 상상을 한다. 광화문 대로변을 줄지어 걷는 이 사람들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예를 들어 "지금 제 남자 친구가 저를 데리러 오고 있는데, 혼자 그걸 기다리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러니 삼십 분 정도만 제 등을 두드려주면서 웃긴 얘기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봤을 때, 이어폰과 교통카드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분주했던 양손과 발끝을 내쪽으로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공황장애나 광장공포증이라거나 하는 걸 입에 담는 상상은 절대 안한다. 그러면 더 서러워서 가슴에서 외로움이 더 울컥울컥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아, 저분은 그렇게 해줄 것 같아.라는 인상의 사람이 지나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반대로 헤드셋을 쓰고 묵직한 백팩을 메고 열 블록도 넘게 멀리 있는 정류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걷는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게 군중 속의 고독일까?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고독은, 그야말로 혼자서 그 외로움을 꿀꺽꿀꺽 삼키는 듯한 느낌의 단어 아닌가. 나는 꼭 아무나 얻어걸려라, 내 외로움과 불안과 초조를 불식해줄 희생자를 자꾸만 찾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황장애를 한번 겪은 이후 주변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누구는 '너는 너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갉아먹는 인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일단 타인과 어떤 얘기라도 나누면 당장의 불안과 초조는 사라지니까. 누가 옆에 있어주면 마음은 그 사람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안정이 되니까. 벌써 십 년이 가까워지게도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던 거다.


이번 주말도 커튼을 치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컴퓨터를 하다가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드라마를 보니까 시간 개념이 적어져서 약도 제때 챙겨 먹지 않고, 또 그 사실이 불안해서 오늘은 리보트릴 반 알을 더 먹었다. 내일도 출근길과 퇴근길에 나는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줄 온화한 인상의 피해자를 스캔하고, 또 그 사람이 나의 불안정한 정서를 기꺼이 도와주는 상상을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순한 배려 강요자인가. 하, 내 멘탈은 어디까지 무너져있는 것인가.


일요일에는 남자 친구도 자고 있었고, 모처럼 전화한 아빠도 자고 있었다. 내 마음에 큰 안정을 주는 이들이 낮잠이라는 평온의 극치를 즐기고 있을 때, 떠오르는 아무 노래나 흥얼거리면서 할 일을 했다. 찬장 깊숙한 데 있던 김치통을 박박 씻어서 배추 네 포기를 꾹꾹 눌러 담아 냉장고 한편에 예쁘게 쌓아뒀다. 촛농이 묻은 옷은 위에 휴지를 덧대고 다리미질을 하니 깔끔하게 지워졌다. 불규칙하게 자란 손톱도 바짝 깎았다. 마음속에 쌓아둔 쓰레기를 한 순간에 분리수거해버려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안다.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다. 자기의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강한 마음과 오기를 가지고, 그래도 안되면 차라리 약으로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을 찾는다.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싶고, 가족들에게 이해받고 싶고, 동료들에게서 배려받고 싶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100% 순수한 호의를 느끼고 싶다.


자기 연민의 단계는 지났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고충도 안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욕심이 자꾸만 생겨난다. 그건 뭘까. 얼른 면역력을 되찾아서 이 말도 안되는 잡념들이, 지금 내가 빠진 구렁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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