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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Sep 18. 2023

[언어와 꿈] 내가 번아웃이라, 남편이 잘릴 수도

남편이 아니라 제가 이상한 거예요. 늘 고생뿐인 내 남편을 변호하며

언어와 꿈


5천만 개의 언어가 생기는 꿈을 꾸었다


언어와 생각 중 무엇이 먼저인지에 관하여

이제 누구도 논의할 수 없게 되었다

쓸 데 없으니 잘 된 일이다


거래처와의 미팅에서

중요한 선 자리에서

병원에서도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 소음만이

오로지 나의 이야기들만이 즐비하고

그 가운데서 외롭고 시원하게 웃는다


이제 세상엔 아무도 없다




느닷없이 번아웃이 왔습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유행하는 말을 빌려다 쓴 듯한 기분이지만 어쩌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밤 기절이나 혼절같은 단어를 검색하며 어떻게 해야 내일 출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나아가 회사 앞에서 남자친구를 붙들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이대로 죽어버리겠다고도 했으니까요. 더이상 내가 고통받는 상태로, 남에게 고통을 주는 상태로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휴직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간 밀린 사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회사의 배려(이자, 연차소진의 좋은 계기이므로 독려)를 받아 바쁜 와중에 일주일이나 더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은 일주일은 지난 같은 기간보다 사적으로 예정된 일이 적습니다. 결혼준비도 얼추 되었고 나서서 하려고 해도 아직 시기가 안된 것들만 남아있습니다. 오히려 휴식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출근을 해야하는 것 아닌지, 어느정도 기운을 차려 머리와 몸이 심심해 근질거리는 이 찰나, 도로 그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노예같은 삶을 사는 게 어울리는 인간이라는 것만 증명하게 되어버리는 꼴이 될테니까요. 최대한 심심함의 미덕을 즐기며 휴식이 뭔지 배워도 봐야지요.


문제는 내가 아닌 남편의 직장에 있습니다. 저야 회사에 미리 공황장애나 제가 가진 심인적 문제를 입사초기부터 오픈하고 4년 가까이 긴밀한 소통을 하며 지내왔기에 휴직을 하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런저런 업무사정으로 연차도 잘 쓰지 않고 진급하며 바쁘게 달려온 이력도 있었습니다. 남은 팀원들에게 타격이 있겠지만 괜찮다며 걱정해주는 따뜻한 배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경정신병증을 이해받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늘 바라던 바이자 일정부분 저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영역이었기에, 휴식과 더불어 저에게 더 큰 안정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상황은 다릅니다. 남편은 본인의 질병이 아닌 1개월 뒤 식을 올릴 예비신부가 공황장애와 약간의 우울, 강력한 분리불안을 가지고 있기에 휴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딛힌 것입니다. 분리불안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덧붙이자면, 제가 불가피하게 (공동)연차를 써야하는 상황에는 남편의 직장에 따라가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적도 수두룩하게 많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5인미만 사업장에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진 직장동료분들이어도 많이 꺼림직할 일입니다. 내가 사장이어도 여간 불편하고 이상하게 느껴졌을 테니까요.


그런 저의 상태와 남편의 상황을 듣고 남편도 저와 함께 쉬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2주를 제안하고, 1주 뒤에 다시 연락을 드리기로 했는데, 회사측에서는 이러면 곤란하다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곤란이라는 말로 일축했지만 남편의 표정은 피가 말라가는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잠깐 밖을 걸으며 들어보니 “정말 아픈 것이냐, 아니면 생떼인 것이냐”는 말과 함께,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장담 요청(?)과, “회사 내 회의를 통해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회사를 잘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말입니다. 내가 모자라 발생한 일이지만 생떼라는 단어선택이라든지, 호언장담을 바라는 말에 기가 풀썩 죽어버렸습니다.


나는 지금 작은 사회실험을 하는 기분입니다.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패션 정신병이 유행인 시대에 우리 사회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얼마나 너그러워졌는가, 그리고 그 주변인에 대한 처우는 어떠한가에 대해서요. 칼부림이 무섭다고 지하철역에서는 몸을 움츠리고, K-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열악하고 힘든지 인터넷 댓글을 작성하면서 정작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주변(사회)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 회사 대표님도 공황장애를 겪은 직원과 가족이 있는데, 금방 털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10년간 만성적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저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겠지요. 더구나 해당 직원은 이를 핑계로 놀러가거나 쉰 적도 많다고 하여 나이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 건지) 나는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회사의 무한한 지지와 독려를 받았지만, 남편은 죄없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저와 (회사)대표님 둘 중 하나만이라도 내 편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겐 원망을 받아야 하니까요. 뻔뻔하게 자기주장을 하기 힘들어하는 유약한 성격이라서, 조용한 집에서 쉬고 있노라면 오히려 남편의 마음이 더 아픈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말이라도 잘못 하면 아내가 남편의 앞길을 막았다거나 결혼 앞두고 퇴사한 남편으로 만들었다는 또다른 원망이 들어 싸울 수도 있겠습니다. 짤리면 어떻게 하냐는 남편의 말에, 오히려 나는 좋다며 차라리 이참에 운전면허도 따고 내조도 해주면 내가 먹여 살리겠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제게 책임이 있으니 전혀 빈 말이 아닙니다.


주변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에 대한 생각이 깊어집니다. 특히나 내가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서도요. 공적인 사건의 유가족이나, 노약자를 돌봐야만 하는 사람이거나, 워킹맘과 워킹대디거나, 내가 아직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요.


마음이 급하여 내가 먼저 이해를 받고 나서야 남편의 고충이 가슴에 깊게 들어와서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9년간 같이 살았어도 사실혼 관계에서는 누군가 상을 당해도 법적으로 하루도 쉴 수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하물며 그저 생떼로 보일 수 있는 신경 병약을 보필하기 위해 휴직을 하겠다는 게 쉽게 받아들여질 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것이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연차의 기준도 없이 그저 하루를 쉴 때도 너무나 많은 눈치를 봐야 하는 소규모 회사, 그 사정은 당연히 알지만서도. 나의 안정을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이 무한한 배려를 해줄 순 없다는 걸 알지만서도. 늘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라는 농담을 입에 달며 아내 몰래 운동화를 사는 그들의 장난스런 얼굴이, 그들의 허락을 기다리는 남편의 어두운 표정과 자꾸만 겹쳐서 보이니까요.


조용한 방 안에서 남편은 “회사 회의 결과”를 알리는 전화를 기다립니다. 나라고 무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시간입니다. 서로 웃기 위해서 둘 다 회사 그만두고 고프로 구입하면 돼!라고 외쳤지만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한 템포 쉬고 나서, 우리는 또 어떤 내일을 살아가게 될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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