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추어리 May 09. 2022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공황과의 맞짱

삶의 의지가 고개를 들 때, 공황과 맞짱 뜨는 하루를 살아버렸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가끔은 마음으로 생각해

머리로 느끼고

몸은 그대로 둬


내 마음이 나빠서

몸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나를 가련히 여기는 생각


머리가 그러는데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질문을 던지고

마음의 소리를 오랫동안 들어


또박또박 규칙적으로

태연하고

그리고 고요하게 설명하는

네 박동을 들어


될 수 있다면 머리를 떼어내고

아니면 전두엽이나 해마의 일부분이라도


그리고 난 살 거야

내 마음을 보전할 의무로

여전히 삶을 사랑하겠다는 의지로




공황장애 혹은 사회 공포증, 우울증 따위의 신경정신 병력을 가진 사람은 알 거다. 내 심리를 건드는 그 어떤 약속이나 외출, 그러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낯선 곳을 탐험하며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그러나 진짜 슬픈 건 그걸 안 하고는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는 거다. 분명 그것은 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게 삶이고 하루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안 하다 보면 자연스레 '비포의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인간관계도 변한다. 애인이나 친구로부터 손절당하는 것 까지야 참는다 쳐도, 다가오는 명절마다 찾아오는 미안함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족에게서까지 이상하거나 불쌍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만큼 좌절스러운 게 없다.


4월부터는 회사에서 도서구입비를 지원해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살 수 있게 됐다. 평소에 독서를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이참에 이 돈으로는 쉽게 사서 읽지 못했던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샀다. 구시대적인 발상과 당시 정세를 반영한 내용이 다분했지만, 목적이 아닌 수단에 잠식당하지 말자는 메시지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실히 전해질 메시지였다. 여기서 말하는 수단은 돈이나 자동차, 집과 같은 물질적 소유물이었지만 신경증을 가진 사람의 삶의 태도에도 대입해 생각해봤다.


어디에 가야 하는데 기차를 타야 해서 안돼, 친구는 만나고 싶은데 지하철을 오래 타야 해서 안돼...

그간 나는 얼마나 많은 중요한 약속(목적)들을 대중교통(수단)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는가. 물론 컨디션 조절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지난 7년간 파투  약속들의 100% 극단적인 컨디션 난조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거다. 대중교통 사용 유무  빈도가 관계를 좌우하고 하루를 좌지 했다. 결국 삶의 질이 극도로 하락했다.


공황과 맞짱뜨는 일보다 가족을 실망시키는 게 더 싫어서 냅다 올라탄 KTX.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고, 빨리 도착해서 행복했다.


그나마 익숙해진 출퇴근 이동 루틴, 그리고 가끔씩 힘을 내어 나가는 나들이나 동네 걷기로는 삶이 제한돼 따분해 죽겠다는 생각이  즈음, 동생들에게서 카톡이 날아왔다.  어버이날이니  가지를 계획하자는 거였다. 둘째당직이라  내려가기로 했고, 셋째나보고 힘들면 굳이  와도 된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쌍수를 들고 좋아했겠지만 냅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산소, 그러니까 당신의 부모님을 뵈러  아빠께 '어버이날에 내려가겠노라'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명절에도 고향에 갈까 말까 했던 내가  소리 치니 아빠는 '올라고?'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수년을 닦달해도 꿈쩍도  하던 시절이 있어 어느 정도 체념하고 계셨는데, 조금 기뻐하는 투인  같아 그것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내려가기 전날 밤이었다. 지금이라도 호언장담을 취소해?, 굳이 누가 오라고  것도 아닌데 괜히 나섰나, 지금이라도 KTX 예매를 취소하고 고속버스로 다시 예매할까(내가 가장 싫어하는 대중교통 순서는 KTX>>>>>>>>>>기타 기차>>>>>>>지하철>고속버스>버스 순이다)하며 온갖 불안에 시달렸다. KTX 타기 싫어 복지부나 기타 정부 산하기관 미팅이 잦은 회사에도 사정하며 외근만은  달라고 빌빌 거리며 사는 인생이었다. 그렇게 수년간을 원수처럼 척지고 살았는데 내일 당장 탄다니, '이건 아니야'라는 생각만 들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약속을 취소하기도 애매한  11, 가만히 앉아서  기분과 마음을 곰곰이 관찰했다. 분명 '기차는 나와 맞지 않아'라는 뿌리 깊은 생각은 머리에서 기인한 거다. 반면 내면을 들여다보니 심장박동은 놀랍도록 평안했고, 신체적 증상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인이 박혀있던 거다. "나는 절대 KTX 타면  "라는 생각으로 내가 나를 가련하게 만들려고. 아플  있는 상황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문득 최근 이슈가  계곡 살인사건의 이은해와 자선단체의 빈곤 마케팅이 머리에 스쳐 지났다. 어쩌면 나도 이은해처럼 '불쌍한 사람이니 무조건적인 도움과 이해를 받아야 한다'고 자신을 가스라이팅  것은 아닐까. 빈곤 마케팅처럼 여기저기 우울한 주제만 꺼내 주변인들에게 위협이나 협박을 하고 있던  아닐까.


고속버스는 되도록이면 아침에, 그리고 볕 좋은 날에 타기를 좋아한다. 불을 다 끄고 고요히 밤을 질주하는 건 별로다. 포켓몬고로 마음을 달래고 싶었으나 속도때문에 실패.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 되는 비겁자로만 남을 것 같아 무작정 기차를 탔다. 아이를 좋아하니까, 애들이 앉아서 와글와글 떠들면 덜 무서울까 해서 유아 동반석으로 끊었다. 약도 미리 먹고 인스타 스토리도 많이 찍어서 올렸다. 공황이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 만약 그게 온다면 한번 시원하게 맞짱을 떠서 우열을 가리자는 마음으로 탔다. 언제까지 내가 기죽어 살아야 하는데. 내 일상을 잃어야 하는데. 하면서.


그런데 허망하게도... 기차에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고속버스보다도 편안했다. 오랜만에 꺼내  자낙스의 효험이 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KTX 하나  타서   강남 버스터미널까지 오가야 했던 날들, 회사에서 비굴하게 미팅에 불참했던 날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까짓꺼라는 생각으로 한번 해보고 나면 어이없을 거예요"라던 의사선생님의 말이  맞아떨어졌다. 너무 개운하고, 어이없고, 행복한 상태로 KTX 직면기가 끝이 났다.


고향에 도착해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터널을 여러  지나 운전해가야 하는 식당에 씩씩하게 가서 밥을 먹고, 불을 끄고 모두가 야간 고속버스도  시간이나 타고 왔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연신내까지 지하철도 30분을 넘게 타고 마을버스로 환승해서 집에 왔다. 고비를 넘어 고비를 넘어 고비... 아마 오늘은 비행기를 제외하고 현존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같다. 시내버스와 택시까지 탔으니.

가족외식 후 후식으로 먹은 카네이션 앙금쿠키. 고속버스를 기다리다 만난 대전정부청사의 끝내주는 공원. 다시 찾은 일상은 예쁘고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어째 이야기가 급박하게 마무리된 것 같지만 이게 오늘 일어난 일의 전부다. 그저 오늘 단 하루 안에, 그간 내내 속으로 앓던 KTX도 타고, 타지에서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6종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돌아와 조용한 저녁시간까지 갖게 된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오늘은 안정제를 좀 더 챙겨 먹은 탓일까, 날아갈 듯 기쁘다기보다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그래도 가슴이 홀가분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내 삶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도.


이렇게 쉽게 적어뒀지만 사실 공황장애와 맞짱을 뜬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고, 나도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사실 그동안 많은 연습이 있었다. 시에 써둔 것처럼 부정적 편향에 빠진 생각에만 몰두하지 않고 인지부조화를 알아채야 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명상이나 요가를 통해 심호흡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습관도 필요하다. 나에게 맞는 약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도, 끝판왕(내겐 KTX)을 깨기 위해서 점진적 노출(지하철, 새마을호 등)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은 머리맡에 둔 책의 물음에 기쁘게 대답하고 잠들겠다.

공황에도, 불안에도, 하루 수십 번도 더 찾아오는 불편에도, 너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네. 나는 오늘 수단에 잠식돼 목적을 잃지 않는 일상을 살고 왔습니다.

        

이전 04화 [말하지 않는 병은 낫지를 않네] 정신병자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