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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Mar 20. 2022

[말하지 않는 병은 낫지를 않네] 정신병자들

직장인의 신경과 정신은 온전할 틈이 없다. 슬픈 일이다.


말하지 않는 병은 낫지를 않네


점심밥을 조금 먹던 너에게

아주 짠 반찬을


파란색을 좋아하던 너에게

뜨거운 히노끼탕을


매 아침이 생경했을 너에게

지루한 음악을


건네는 건 말처럼 쉬웠을지도

몰라


딱 한 마디 모자라

닿지 못한 편지가 하나 생겼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심해처럼 꾹 다문

너의 우울을 몰라


함박웃음 내리는

모처럼 밝은 겨울이 오면

말해 주고파


말하지 않는 병은 낫지를 않네

말하지 않는 병은 낫지를 않네




인턴이 사라졌다. 기획팀 인력이 부족해 일손 하나하나가 소중한 때였다. 대표가 아침부터 나를 비롯해 중간 직급 몇 명을 대표실로 불렀다. 인턴 한 명이 극심한 우울증으로 입원을 해야 해서 당일 퇴사를 한다고 했다. 너는 아랫 직원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로 아는데 여태 몰랐냐고 했다. 몰랐기에 몰랐다고 했다. 대표실을 나와 인턴에게 점심에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쪽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한 시간쯤 뒤에 바로 짐을 추려서 퇴사했다. 인턴은 회사를 떠나고 몇 시간 뒤에야 답장을 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격 탓이려니 했다.  성별답지 않게 행동하던 아이였다. 수줍고 소심한 면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번쯤은 물어봤어야 했다. 식사량이 비교되어 타박을 줄게 아니라  그렇게 음식을 조금 먹는지 물었어야 했다. 서류 확인이 늦어져 속으로 짜증을 낼게 아니라 '지병으로 인한 반차'에서 지병이 어떤 건지 물었어야 했다. 주변인들에게 절대로 먼저 말하지 않는 아이였다. 대표에게 그렇게 터놓은 것도 일찍 출근해 화장실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들켰기에 그럴 수밖에 없던  같았다. 내가   진중하고 믿음직한 선배였어야 했다. 모든 회사 직원이 몰랐고,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는 괜시리, 나의 탓을 했다.


나도 신경정신과 약을 5년간 복용하면서, 신경증에 관대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공황이며 우울이며 불안이며 불면이며... 현대에 아주 흔한 질병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나의 세계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도 멀쩡했고, 회사 사람들도 멀끔했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속에 썩혀두지 말고 배 째라 마인드로 살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많이 알리고 다녔다. 한 번은 옛 사수가 정신과 약 먹으면 어떻냐고 조심스레 물은 적이 있다. 괘씸한 마음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이 세상의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고, 과장해서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가식이었을 거다. 몇 년을 함께 지내면서 그런 표정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병이라는 편견과 판타지. 그런 게 있었기에 그대로 곡해하게 내버려 두었다.


해서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꼭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공황장애 극복 책을 내보고도 싶었는데, 지난 몇 년 사이에 이미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또 인기도 많이 얻어서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대신 내가 겪었던 일들(적절한 시기에 병원을 찾지 못한 것, 주변에는 생각보다 신경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걸 몰랐던 것, 그래서 상처에 매몰되지 않아도 되며 당당하게 내비쳐야 오히려 낫는다는 것)을 다른 초심자들이 겪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인턴이 내게 그런 말을 미리 해주지 않았다는 것보다, 왜 그리 급히 떠나냐고 자초지종을 묻는 동료들에게도 아무런 대답 없이 간 것이 더 아쉬웠다. 끝까지 비밀에 부친 아픔이 입원을 한다고 나아질까. 반드시 나아져야 하지만, 너는 그런 뒷모습으로 가면 안 됐다. 아무렇지 않은 척, 퇴사해서 마음이 시원한 척하고 떠나는 그가 안쓰러워 온 몸이 시려온다.


며칠 뒤에는 큰 소리로 화내길 일삼는 고위 상사가 기어코 일을 터뜨렸다. 오전에는 별일 아닌 일로 언성을 높이더니 퇴근 시간 가까이 되어서는 동료를 불러다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불안이 밀려와 리보트릴을 반 알 먹었다.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책상을 주먹으로 쿵쿵 치고, 발을 굴러대며 여기저기 전화해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었다. 그녀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직원들은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하고,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침묵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표도 포기한 성격이라 회사 내에는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의 침묵 속에서, 그날 우리 각자 깨달았다. 메신저가 여기저기서 날아들었다. 분노조절장애가 틀림없다고. 나도 인터넷에서나  병이다. 그녀에게는 적절한 약물치료나 상담이 분명하게 필요하다. 다음 주에는 이걸 문제 삼아 회사에 이의를 제기할 사원이 있을까? 그녀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직언할 동료가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회사에 직언하기엔 너무나 공공연한 비밀에 가까운 문제이고, 당사자에게는 실례가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는 왜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말하지 못해서 누구는 스스로 고통받고, 누구는 남들이 왜 자기에게 손가락질을 하는지도 모른 채 울화 속에서 그냥 살고 있나. 가벼운 신경증은 현대인의 감기라고 하더니. 우리의 집단지성은 과연 어디까지 따라왔나. 시대를 선도하듯 화려하게 늘어진 빌딩 숲 한복판에서. 눈 앞에서 아파하는 이들을 보면서 아직도, 아직도 우린 멀었다는 생각을 하고, 진짜 정신병자는 누구인가라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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