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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Dec 11. 2022

[즐거운 나의 고통]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아기들에게

이 험한 무모 속에서 나를 키워낼 것

무모차-즐거운 나의 고통


엄마도 없이 아기는 제가 탄 유모차를 구른다


인파 속에서, 배운 적 없는 목적지와 동선과

신호등 같은 일련의 규칙들 속에서도

앞날이 훤이 보인다는 듯

아기의 눈은 지구처럼 동그랗고 빛난다


명동의 바람이 차다.

배가 시리고 살오른 발이 평평해졌을 때

아기는 이 생의 제목을 알았다.


이 험한 무모 속에서 나를 키워낼 것

돌볼 것. 달랠 것. 웃겨주고 이해하고 사랑할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것.


쓸쓸함이 바람처럼 제 몸을 제멋대로 움직일 때면

무해한 행인과 눈을 맞추고는 배시시 웃는다.

그러면 세상이 잠깐은 녹아내리지


엄마도 없이 아기는 제가 탄 유모차를 구른다

덜덜.. 덜덜덜

둥글었던 바퀴의 진동은 이제 심장까지 와닿으려는데

이 또한 즐거운 나의 고통

죽을 때까지 굴려갈 유일한 생의 증거




근 며칠간 아랫배가 싸르르 아프고 생리혈이 멈추지 않았다. 그에 대한 불편과 고통을 토로만 하다가 휴일을 맞은 김에 적당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골반에 좋은 스트레칭을 하고 진통제를 먹고 핫팩을 올려두고 낮잠도 잤다. 나 또한 원시인류의 후손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제 몸뚱이 먼저 챙기는 게 당연지사일 텐데, 왜 이리 미련하게도 지냈는지. 컨디션을 조금 회복하고 나니 과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공황을 처음 만난 건 약 십 년 전쯤이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과 세종의 두 캠퍼스 수업을 듣고, 서울 원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평일 알바와 주말 야간 알바를 했다. 남는 시간엔 부지런히 친구들을 만나고 신촌이나 대학로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쉬는 건 사치라고 생각한 고학생이었다. 밤샘 편의점 알바를 끝내고 여느 때처럼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가 1교시 수업에 지각한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서둘러 문래역 4번 출구를 빠져나오다가 처음 그 녀석을 만났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을 쉴 새 없이 굴리는 것이 보람찼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알바비를 가불 받아서 유지했던 오피스텔보다 쉼 없이 달리는 기차에서 쪽잠을 자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은 기차가 나 대신에 내 인생을 어디로든 굴려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년을 공황이 '이유 없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이유를 모르니 대비할 방법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무의식 중에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중환자실 환자도 아니면서 동생이든 누구든 '언제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주길 원했다. 지금은 예랑이 된 남자 친구가 연애 초기 내 5분 대기조였던 썰을 밝힌다면 경찰도 뜨악할지 모른다.

쉬지 않고 무리하는 일상-이게 공황의 전초였다면 그토록 애쓰며 살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되짚어봐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렇게 사는 게 나를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이 많았다. 부모의 지원으로 어렵지 않게 서울에서 복수전공을 하는 친구, 서울 집에서 통학하며 이런저런 번화가를 꿰뚫고 있는 친구, 기차도 KTX 우등석만 골라 타서 노트북을 꺼내 드는 친구... 모두 제가 만든 환경이라기보다는 잘된 돌봄을 받고 있는 애들이었다. 겨우 22살쯔음인데 그렇잖은가.

그래서 나는 돌봄이 없어서 하릴없이 방치된 '애'가 아니라 혼자서도 씩씩하고 대견하게 그 '애들'과 같은 아웃풋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뭔가 뒤처지지 않는지, 부족한 건 뭔지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하고 반성하고 채찍질했다. 머리는 몸을, 몸은 머리를 의심했다. 내가 내 편이 아니었다. 무모(無母)의 환경을 무모(無謀)한 정신으로 헤쳐나가려 했다고 할까. 돌아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갸륵하다.

하나 그때의 내가  오버스러웠긴 해도 살면서  자신을 돌보는 일은 중요한 일일 게다. 돌봄받은 적 없어 어떻게 자신을 돌보는지 몰랐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이제는 보여지는 것뿐만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해서 무엇을 어떤 식으로 돌볼지는 차츰차츰 배워가는 중이다. 이번 주말엔 게임을 달리는 것이 스트레스는 풀려도 얼마나 근육에 무리가 가는지 새삼 깨달아 컴퓨터를 꺼뒀다. 그저 이직, 이직 외치며 회사를 욕하는 마음도 '다음 주엔 출근하면 대표님께 내년 일정을 먼저 제시해봐야지'라는 맘으로 고쳐 먹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 아는 메타인지가 가능해진 다. 나뿐만 아니라, 아무리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해도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는, 무식하게 무리하며 사는 K-직장인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진다.

덧붙여 부끄럽지만 예랑이가 부르는  별명은 '아기'. 외모며 하는 짓이며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장난식으로 부르는 말이지만, 분명 내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부족한 점도 포함하고 있을 게다.  많은 도움을 주는 예랑이지만 지쳐 보일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도 위의 시처럼 무고한  명의 아기일 뿐인지도 모르니 그를 위해서라도  자신감을 회복해야지,  스스로 나를 지킬  있다는 믿음이 굳건해지도록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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