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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Dec 15. 2020

한 칸

너무나 사적이고 너무나 우주적인

설계가 99% 까지 끝났을 무렵, 딱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있는 화장실이 눈에 영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야말로 뒷간이라는 말처럼 화장실이 거실과 식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유독 화장실에 민감하다. 외출했을 때 어지간히 급한 경우가 아니면 화장실에 가지 않고 참았다 집에 와서 해결을 한다. 민감, 까칠, 예민함의 정점을 찍었던 고등학교 때는 점심시간에 집에 다녀올 정도였다. 청결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소리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나오던 ㄸㅗㅇ도 쏙 들어가 버린다. 이런 신체적 결함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건 아니고 나름 정제된 언어들로 포장된 나의 애로사항을 경청하던 소장님은 음...(난감하네) 하는 소리와 함께 도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여기 어때요?”



방황하던 초록색 만년필이 향한 곳은 중문 밖, 현관문 사이었다. 거기에 없던 점이 찍히고, 예정에 없던 사각형이 생겨났다. 이 창의적인 사각형의 창시자는 추가적인 노동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창조로 즐거운 눈치였다.



위치적으로 거실과 식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나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여러 장점이 있다고 했다. 현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밖에서 들어와 바로 손을 씻을 수 있고, 남향이라 채광, 통풍 면에서 매우 좋아 습하지 않고 겨울에도 춥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의 주문에 매우 충실하고 장점도 많은 위치였지만 갑자기 혹처럼 툭 튀어나와 억지스러워 보이고, 낯설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지만, 남편은 ‘신의 한 수’라며 좋아했다. 집을 지으면서 우리 가족 모두 만족하면 최선이지만, 잘 모를 땐 한 사람 만이라도 좋다고 하면 그 안을 선택했다. 1층 화장실도 오로지 남편의 감각을 믿고 결정했다.


나중에 화장실 위치가 바뀐 것을 본 시공 소장님은 남향(이라는 좋은 위치)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화장실을 놓기에 아깝지 않냐며 되물었다.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탁 트이면 좋을 남향에 누가 꽉 막힌 화장실을 놓겠는가. 하지만 남편이 확고했고, 되돌리기에도 늦었다. 그렇게 긴가민가 하고 반신반의했던 화장실은 남편 말처럼 ‘신의 한 수’까지는 아니어도 매우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선 밝아서 좋다. 해 뜨고 해질 때까지 불을 켤 필요가 없어서 좋다. 계절, 날씨, 채광에 따라 밝기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도 매력이다. 아침엔 화사하게 밝고, 오후엔 은은하게 밝다가 페이드 아웃된다. 낮에는 햇빛에 전적으로 의지하다가 밤에만 불에 의지한다. 나는 그마저도 켜지 않고 복도의 조명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조명 없이 하루종일 밝은 화장실


빛과 바람이 드나드니 늘 보송보송하다. 습식이지만 습하지 않고 건식처럼 말라 있다. 물로 바닥을 청소해도 햇빛과 바람이 들어 빠르게 마른다. 전에 살던 집의 화장실이 북향이라 늘 습하고 곰팡이 청소에 애를 먹었던 터라 체감 만족도는 더욱 높다.


화장실은 집에서 가장 작은 면적을 차지하지만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은 작지가 많다. 화장실은 배설과 해소라는 가장 원형적인 기능 외에도 도피, 고립, 안식, 위로, 사색, 무위자연(멍)이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물론 그것이 스마트폰과 함께여서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여전히 그런 기능을 한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한 칸은 그냥 한 칸이 아니다. 절대적 프라이버시와 함께 가장 사적이고 가장 독립적인, 가장폐쇄적이면서 매우 해방적인, 다분히 인간적이고 충분히 자연적인, 너무나 사사롭고 조금은 우주적인 에너지가 감도는 한 칸이다. 그래서 내겐 결코 사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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