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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Sep 21. 2020

나무

마당에 나무 심기

뭐 사줄까? 말만 해~!"


집에 놀러오는 친구가 묻길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를 사달라고 했다. 마당을 어떻게 쓰고 꾸밀지 정하지 못해서 법정 조경을 위해 심어야 하는 나무를 모두 뒤뜰에 심은 터라 정작 앞마당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휑했다. 그냥 몸만 오라고 해도 친구들이 저마다 과분한 선물을 들고 와서 내가 뭘 사올지 정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직후이기도 했다.


어떤 나무를 심을까? 같이 집을 지은 이웃 중에 조경 전문가도 있고, 지인 중에 나무를 잘 아는 사람도 있어서 자문을 구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집주인 마음 가는대로 고르기로 했다. 내 마음에는 두 가지 나무가 서성였다. 우선은 꽃나무다. 뒷집 할머니 마당에서 이름처럼 100일간 꽃을 피워 나를 위로했던 목백일홍(배롱나무)과 옛날 집 현관 앞에서 봄마다 나를 흥분시켰던 라일락이다. 친구와 같이 나무 가게에 가서 보고 고르기로 했다.


주인아저씨는 수형이 번듯하고 멋있다며 금송을 먼저 권했다. '금'자가 들어가서 그런가 남편은 솔깃한 눈치였지만 난 뻣뻣하고 번지르르한 모양새가 조화 같아서 영 끌리지 않았다. 그리고 꽃을 보려는 마음이 컸다. 역시 내 마음속을 맴돌던 배롱나무와 라일락으로 후보가 좁혀졌고, 마침 우리가 갔던 가게에 4년 정도 자란 아담하고 수형이 예쁜 배롱나무가 있어 낙점했다.



집에 와서 볕 좋은 곳에 남편이 구덩이를 팠고 친구 부부와 함께 나무를 심었다. 이게 뭐라고 감격스럽다. 그저 손바닥만 한 마당에 작은 나무 한 그루 심었을 뿐인데 뭔가 충만함이 밀려왔다. 나무의 시간이 내게로 왔기 때문일까? 나무 가게 주인아저씨가 '나무는 시간'이라고 했다. 오래될수록 가격이 비싸다는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였지만 나에겐 '나무 안에 시간이 있다'는 말로 들렸다. 이 작은 나무에는 어떤 시간이 담겨 있고, 또 어떤 시간을 살아가게 될까? 이 작은 나무가 앞으로 어떻게 커 갈지 너무 기대되고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궁금하다. 꽃이 피면 나무를 사준 친구가 보고 싶을테고, 꽃사진을 친구에게 투척하며 꽃구경하러 오라고 바쁜 친구를 졸라댈 것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는 나무였으면 좋겠다. 뒷집 할머니 배롱나무가 내게 그랬듯이 우리 배롱나무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집 짓고 나더니 내가 부쩍 나무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자긴 매일 하는 고민이 '뭐 먹을까?' '뭐 볼까?' '뭐 살까?' 죄다 소비적인 것인데, 나는 '어떤 나무 심을까?' 하고 생산적인 것을 고민한다며 고민의 차원이 다르다고, 너무 부럽다고 했다. 하긴, 나도 이렇게 멋진 고민하면서 살 줄 몰랐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어릴 땐 스피노자가 한 말로 알고 있다가 성인이 돼서는 마틴 루터가 한 말이라고 알고 있다가 이제는 '작자 미상'인 이 말을 누가 했으면 어떤가. 그냥 멋있는 말이다. 오늘 우리는 그 멋있는 일을 함께 했다.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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