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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Dec 08. 2020

빨래

오로지 쾌감을 위하여

드디어 빨랫줄이 생겼다. 빨랫줄은 집을 지으면서 마당 수돗가, 불 피울 화로대와 함께 줄곧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던 숙원사업이었다. 수돗가는 제일 먼저 아빠가 만들어주셨고, 불 피울 화로대도 얼기설기  꾸며서 요즘 잘 쓰고 있지만, 빨랫줄을 아직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빨랫줄 타령을 했고, 엄마도 전화를 할 때마다 ‘그나저나 빨랫줄을 매야 하는데...’라고 빨랫줄 걱정을 했다.


빨랫줄을 맬 곳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큰 나무나 기둥이 있어야 하는데 마당의 나무들은 빨랫줄을 맬 정도로 크지 않았고, 울타리는 죄다 낮아서 기둥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빨래 건조대를 펼쳐 빨래를 널고 있었고, 이불은 울타리에 걸쳐 널었다. 빨랫줄은 나무가 큰 다음에야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체념하고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빨랫줄을 맸다. 같이 동네 산책하다가 남편이 매의 눈으로 풀숲에 버려진 쇠파이프를 발견했고, 그것이 우리의 못다 한 숙원사업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남편은 재빨리 행동에 옮겼다. 움푹 꺼진 풀숲에 기어 내려가 파이프를 주워 올렸고 마당으로 옮겨 이리저리 대어본 후 자리 잡은 구석에 파이프를 쿵쿵 내려 찍으면서 파이프를 세웠다. 보기에 썩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쓸만했다. 사실 겨울이라 빨랫줄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었다. 일조량이 부족한 겨울엔 겹겹이 널어야 하는 건조대에서 빨래가 완전히 마르지 않을 때가 있어서 실내로 옮겨와 다시 한번 말려야 한다. 그래서 겨울에 더욱 일렬로 빨래를 널수 있는 빨랫줄이 필요하다.



보통 마당에 빨래를 너는 이유는 햇볕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나는 바람 때문이다. 특히 겨울에는 더더욱 바람 때문이다. 바람은 축 늘어진 빨래를 토닥이고 섬유 조직 사이로 드나들면서 한 올 한 올 달래면서 말린다. 여름엔 햇볕과 협동하여 풀 먹인 것처럼 빳빳해서 손에 닿는 촉감이 좋고, 볕이 부족한 겨울엔 서늘하고 시린 바람 냄새가 좋다. 그렇게 바람의 자취가 여전한 빨래를 걷을 땐 저절로 코가 벌름거린다. 그것도 모자라 나는 바싹 마른 빨래에 얼굴을 파묻기도 한다. 이 냄새 어쩔... 섬유 유연제가 절대로 흉내 내지 못할, 내가 아는 단어들로는 형용하기조차 어려운, 냄새라고 하기에도 너무 투명하고 시린, 오묘한 냄새다. 가끔은 오로지 그 냄새, 그 감촉에서 얻는 쾌감을 위해서 빨래를 하기도 한다. 딸아이도 이 맛을 조금은 아는 듯 하다. 섬유 유연제 냄새는 질색팔색 한다. 딸아이는 아직도 동네 언니들에게 옷을 물려받아 입는데 옷을 얻어오면 몇 번을 빨고 바람에 말려서 대기업 냄새가 싹 가셔야만 입는다.



오늘 그 사치를 부리는 날이다. 마당에 빨래를 널기 위해선 일기예보에 민감하고 하늘의 사정을 살필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 해 뜰 녘 하늘은 유난히 아름다웠고, ‘오늘은 질러도 돼!’라고 말하는 듯했다. 벌떡 일어나 세탁기를 돌렸다. 날은 춥지만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이 살살 불고 있었다. 빨래를 널었다. 빨래가 바람이 이끄는 대로 산들산들 나부끼는 모습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빨래가 널린 마당을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매일 창조의 일을 마친 그분께서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보기에 참 좋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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