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놀러 온 친구가 우리 부부가 하는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는 대화의 주제가 다르구나!”
우리가 한 이야기는 나무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엄청 고상하고 심오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 같다고 했다.
나는 나무를 키워본 적도 없고, 나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한다. 남편은 나보다는 관심도 많고, 주워들은 것도 많지만 초보자일 뿐이다. 그때 우리는 그저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선물로 나무를 받아 내려고 그동안 주워들은 이 나무는 어떻고, 저 나무는 어떻고 그런 얘기를 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제에 솔깃한 친구를 꼬셔 주목, 에메랄드그린, 라일락 이렇게 세 그루나 받아냈다. 그게 지난 가을이었고, 긴긴 겨울이 가고, 새 집에서의 첫 봄을 맞는다.
가까이 나무 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에 달려갔다. 봄이 오면 나무와 꽃을 심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뒤뜰에는 포도나무를 심고, 수돗가에는 하얀 수국을 심고, 생울타리가 되어줄 뭔가를 사고 싶었다.
고양시 나무 시장은 조성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나무가 많지도 않았고,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일 뿐인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흥분했다. 충동구매각이다. 땅만 있고, 돈만 있었으면 질렀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작은 땅과 쥐꼬리만 한 돈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해야 했다.
봄이라서 그런가, 남편은 벚나무와 목련나무를 심고 싶어 했다. 작년부터 딸은 능금나무를 심고 싶어 했다. 벚나무는 집 안에 심을 데가 마땅하지 않은 데다 주위에 있으니까 그거 보면서, 저게 내 나무다, 생각하자면서 킬! 딸이 원하는 능금나무는 아예 없었다. 능금나무를 대체할 사과나무는 벌레가 많고 농약 없이는 키울 수 없다고 해서 일단 보류! 그 헛헛한 마음을 어이 할꼬! 남편은 수선화와 튤립을 사면서 그 마음을 달랬고, 딸은 안개꽃을 사면서 그 마음을 달랬다.
우선 나무는 싫어하는 걸 감수하게 한다. 나는 비 맞는 걸 싫어한다. 고등학교, 대학 땐 비 오면 무조건 자체 휴강이었다. 그런 내가 기꺼이 비를 맞아가며 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비 맞는 걸 좋아할 테니까 빨리 심어주고 싶었다. 나무는 시선을 바꾼다. 나는 지극히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미래를 준비하거나 미래를 계획하면서 산 적이 없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현재를 위해서 미래를 희생시킨다. 그런 내가 나무를 심을 때는 미래를 사는 사람이 된다. 나무를 심을 때 나무가 커갈 모습을 생각하고 심어야 하고, 나무가 큰 모습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 짧은 시간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집을 지은 이상, 땅을 밟고 사는 이상, 유난히 추웠던 겨울 끝에 봄이 온 이상, 우리의 주제는 나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