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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30. 2021

조금은 다른 시간

나무의 시간

집에 나무, 아니 꽃과 식물만 있어도 시간 감각이 달라진다. 요즘 유행한다는 식멍을 하고 있노라면 나무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나무는 저 마다의 시간이 있다. 사람인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근데 그 나무의 시간은 시계 위에 있는 시간과 달리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 앞에는 기다림과 참을성이 요구된다. 근데 참을성이 부족한 혹은 나무의 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그 시간을 참을 수가 없어 조바심이 나고, 쉽게 진단하고 결론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우리 집 배롱나무가 그랬다. 여름이 다가오도록, 즉 동네에 있는 다른 배롱나무들이 새순을 내고 새잎이 무성해지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할 동안 우리 배롱나무는 마른 나뭇가지였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지난 겨울 추위에 얼어 죽었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나무였기에 더욱 망연자실한 마음이었다.


막 꽃이 피기 시작한 배롱나무


이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여름에 새순을 내놓아서 우리를 놀래켰다. 일부는 살았고, 일부는 죽었지만 그 자체로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죽었다고 체념한 순간에도 제 갈 길을 열심히 가고, 치열하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마음대로 짐작하고 결론내리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우리 배롱나무가 열심히 잎을 내는 사이, 동네에 다른 배롱나무들은 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놀랍고 기뻤으며 새순이 꽃보다도 예뻤다. 그리고 벌써 입추가 지났기에 때가 늦어도 한참 늦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꽃은 무리였다.


하지만 또 내가 틀렸다. 늦었다는 것은 내 생각이었다. 우리 배롱나무는 기어코 꽃망울을 만들어내더니 여름 끝자락, 가을 초입인 지금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다. 다른 배롱나무(목백일홍)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우리에게는 특별하다. 다른 배롱나무는 꽃이 지고 있는 지금 우리 배롱나무는 꽃이 피고 있다. 앞을 보면 꽃이 피고, 뒤를 보면 꽃이 지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서 나무는 저마다의 시간을 가지고 있고, 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꽃이 지고 있는 뒷집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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