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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Oct 01. 2021

단 세 알

받기만 하네

최근에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을 꼽으라면 나는 대추를 꼽겠다. 잘 익은 빨간 대추도 아니고, 가지가 휘어질 정도의 주렁주렁 달린 대추도 아니다. 우리 집 대추나무에서 열린 대추 세 알이다.


엄마, 대추나무가 우리 식구 수도 아는 거야? 나무가 참 똑똑하네.


! 이거 너무 예뻐서 어떻게 먹어?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파릇파릇한 왕대추  알을  입에 홀랑 털어넣었다. 그리고 딸도 동시에


아사삭


이건 뭐? 과일보다 더 맛있는 대추라니! 대추를 왜 10월의 과일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꿀맛이라는 게 바로 요런 맛이었다. 너무 치명적인 맛이어서 남편 몫인 나머지 대추도 내 입에 홀랑 털어 넣고 말았다.


대추나무는 집을 지으면서 법정 조경으로 심은 것이다. 집을 지으면 말 그대로 법에서 정한 조경을 해야 한다. 일정한 면적에 정해진 수종을 심는 건데 그 기준은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나는 조경에 1도 신경 쓰지 못했다. 집짓기 말미가 되자 여러 가지 속상한 일들이 나를 덮치면서 집중력을 잃었다. 물론 내가 아니어도 남편이 조경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물어보는 듯했지만, 나중에는 남편도 지쳤는지, 일단 시공자가 심어주는 대로 일단 심자였다. 그러다 보니 집 짓고 1년이 되도록 저게 무슨 나무인지 모른 나무도 있다. 꽃 피고, 잎 달리는 거 보면서 무슨 수수께끼라도 하듯, 살구나무네, 자두나무네, 하다가 자두나무인 걸 알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신경도 못 쓴 나무들인데, 정작 집을 짓고 나니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나무다. 일단 커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특히 감나무는 제크와 콩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가고 있다. 농구선수나 배구선수들 나와서 얘기하는 거 보면 1년에 10cm씩 컸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우리 집 감나무가 그런 느낌이었다. 자두나무도 창을 다 가릴 만큼 무성해지고 있으며, 그 옆에서 앵두나무도 부지런히 몸을 불려 가고 있다. 봄에는 보리수나무가 보리수 몇 알을 귀고리처럼 매달아 나를 즐겁게 하더니 가을에는 대추나무가 반짝반짝거리면서 대추 몇 알을 내어놓는 게 아닌가. 나는 나무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무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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