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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09. 2021

너무나 입추

달라진 일상

새벽잠을 설치다 어스름 녁에 일어나 앉는다. 머리가  하다. 밤새 돌아간 실링팬이 헐떡이듯이 힘겹게 돌아간다. 팬이 떨어져 나갈까  섭지만 실링팬을 끄지 못한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원피스 차림에 슬리퍼 찍찍 끌고 산책에 선다. 해가 뜨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후텁지근하다. 동네  바퀴 돌았을 뿐인데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마당 수돗가에 달려들어 어푸어푸, 소리를 내며 요란한 세수를 하고 목덜미, , 다리에 찬물을 끼얹고, 마당에 물을 뿌린다. 벌써부터 이글거리는 해와 마당의 습기가 만나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발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 몇개를 따서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커튼을 쳐서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햇빛을 일단 차단한다. 실링팬의 강도를 높인다. 냉장고를 열고 얼굴을 들이민다.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운  콜드 브루 원액을 평소보다 두배쯤 부어 벌컥벌컥 들이켠다. 덥기 전에 집안일을 해치운다. 꼼지락거렸다고 배가 고프다. 찬물에  말아서 오이지에 먹는다. 선풍기를 안으로 밖으로 풀가동한다. 선풍기 앞에 앉아서   보려는데 책장이 넘어가질 않는다. 분명 읽었는데  읽었는지 모르겠다.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 같이 멍하다. 꽁꽁 얼린 얼음팩을 꺼내 선풍기 앞에 둔다. 효과가 있는지 모르지만 얼음팩을 계속 바꿔준다. 비빔면을 대충 끓여 먹고 에어컨 있는 도서관에 가기로 한다. 어린이 자료실인데도 머리 희끗희끗한 분들이 많다.   보다가 도서관  편의점에서 레모네이드나 바나나맛 우유를  먹는다.  저녁때서야 집에 돌아온다. 샤워를 하고 맥주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신다. 밥을 해야 하는데 불을 쓰고 싶지 다. 마른반찬에 텃밭에서  풋고추로 저녁을 먹는다. TV 보다가 냉장고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내 먹는다.  식구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빤다. 자꾸 엉겨 붙는 딸을 인정사정없이 떼어낸다.  식구가 저녁 산책을 나간다. 어쩜 저녁에도 바람   없냐, 야속해하며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내면서 뛴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창문 쪽으로 머리를 대고 눕는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네,  무더위언제나 가실까, 지금이라도 에어컨을 사야 하나, 바람아 제발 불어라, 하면서 무더위에 무기력함에 잠이 든다. 열대우림을 여행하던 꿈을 꾼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입추가 지난 후


새벽녘 찬 기운에 잠이 깬다.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산책을 나간다. 산책 후 돌아와 마당 수돗가에서 발만 간단히 씻는다.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역시 커피는 뜨거운 커피라며, 여름에 어떻게 맛없는 아이스커피를 마셨는지 신기해한다. 아침에 국을 데우고 계란 프라이를 부쳐 먹는다. 바람길에 있는 책상에 앉았어 바람이 드나듬을 느낀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제자리를 맴맴 돌던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오후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태풍이 온다고도 한다. 비빔면이 아니라 따뜻한 라면 생각이 간절하다. 좁은 소파에 셋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TV를 본다. 맥주 캔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넣어둔다. 냉장고 문 여는 횟수가 줄어든다. 저녁 산책을 나선다. 바람이 선선하다 못해 차갑다. 내일은 옷 하나를 걸치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돌아와 창문 몇 개는 닫고 침대에 눕는다. 창문에서 먼 쪽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귀뚜르르 뚜르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사이사이 다른 풀벌레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려온다. 귀뚜라니는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지, 저 소리가 애정 공세라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매미 소리까지 모든 소리들에 관대해진다. 바람이 커튼을 들추고 그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배를 쓰다듬고 이제 여름도 다 갔네, 곧 가을이네, 에어컨 안 사고 버틴 것을 스스로 장하게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든다. 새벽녘 찬 기운에 잠이 깨서 이불을 끌어다 덮고 다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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