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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Oct 02. 2019

#1 내 남편은 비밀 미남

내 남편은 비밀 미남이다. 어쩌면 그가 잘생긴 게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작지 않은 얼굴, 고르지 않은 치열, 덥수룩한 머리와 눈가의 주름을 보며 이내 의심을 거두곤 했다. 마른 체형도 한몫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몸에 시선이 가느라 얼굴을 마지막에 봤다. 하체가 가늘어서 바지가 태극기처럼 펄럭였다. 키 차이는 10cm가 넘는데, 몸무게는 5kg밖에 차이가 안 났다. 몸무게가 역전될까 봐 초조했다.


그의 얼굴은 까무잡잡하다. 한여름에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그가 피부 미용을 위해 하는 일은 로션을 바르는 게 전부다. 브랜드를 알 수 없는 대용량 로션이다. 남자 목욕탕 에 가면 똑같은 로션이 있다고 뿌듯하게 말한다.


촌스러움은 그의 미모를 숨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바지든 밑단을 두 번 접는다. 바지가 바짝 올라가 복숭아뼈가 도드라진다. 청바지는 그의 출근 룩이다. 옷장에 있을 틈이 없다. 겨울용 바지는 따로 없다. 청바지 안에 타이즈를 입는 작은 변화만 있을 뿐이다. 운동화는 두 켤레를 번갈아 신는다. 아디다스의 특정 시리즈를 고집한다. 새 운동화를 사자고 하면 취향을 존중해달라고 한다. 밋밋해 보이는 그의 패션이 확고한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시댁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난다. 거실 벽이 가족사진으로 빼곡했다. 액자를 하나씩 둘러보다가 낯선 남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미남이다. 사진과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겼다.

“나 사실 역변의 아이콘이야.”

그가 쑥스러워하며 고백했다.

남편의 고모님이 우리를 소개해주던 날, 이런 말을 남기셨다.

“우리 조카 별명이 장동건이었어. 서울 생활이 힘들어서 그런 거지….”


그의 외모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아야겠다. 명탐정 코난에 빙의한다. 첫 번째로 불균형한 식사가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스무 살 때부터 자취를 했다. 집밥의 은혜로움과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의 자취방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난다. 작은 냉장고 안에는 변변한 먹거리가 없었다. 냉동실에 빠삐코 하나, 냉장고에 콜라 한 병, 신김치, 먹다 남은 한솥 도시락 반찬이 다였다. 남편을 미남으로 만들기 위해 결혼하고 한동안 먹이는 데 집착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내가 2kg 찌는 동안 남편의 몸에는 변화가 없었다. 10년 넘게 같은 체중이라고 했다. 두어 달 노력하다가 포기했다.


두 번째로 손댄 것은 그의 헤어 스타일이다. 지나치게 풍성한 머리숱과 새치가 거슬렸다. 먼저 새치 염색을 했다.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그를 의자에 앉혔다. 참빗을 사용해서 염색약을 촘촘하게 펴 발랐다. 30분 뒤에 머리를 감고 나온 그가 거울 앞에서 만족스럽게 웃는 것으로 새치 미션이 완료되었다. 다음은 풍성하다 못해 덥수룩한 헤어 스타일이다. 단골 미용실에 그를 데리고 갔다. 다운펌으로 옆머리를 눌러주고, 세련되게 커트를 하니 얼굴 라인이 정돈돼 보였다.

다음 날 퇴근한 그에게 물었다.

“회사 사람들 반응은 어때? 잘 어울린대?”

“한 명도 못 알아봐. 신기할 정도야.”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집념과 오기가 생겼다. 겨울 외투와 신발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옷이 날개라고 했다. 그가 외투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가격이 꽤 비싸서 3개월 할부로 샀다. 신발도 하나 샀다. 운동화만 신는 그를 위해 구두처럼 보이는 검정 골프화를 샀다. 이 외투와 신발이 그를 돋보이 게 해줄 것이다.


외관보다 중요한 것이 균형 잡힌 영양 상태다. 눈가가 떨리는 걸 보니 마그네슘이 필요했다. 아침마다 비타민, 마그네슘, 우루사, 오메가3와 홍삼 한 포를 챙겨주었다. 그의 얼굴에 미묘하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잠복근무 중인 그의미모가 꿈틀거렸다.


나의 마지막 스타일링은 결혼반지다. 원치 않는 상대가 남편의 잘생김을 알아볼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남편이 처음에는 반지 끼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한 달만 끼어보라고 권유한 나의 ‘발 들여 놓기’ 전략이 통했다. 그는 결혼 4년 차인 지금까지도 출근할 때 결혼반지를 낀다.

한 번은 출근하려고 나선 그가 되돌아왔다.


“반지를 깜빡했어. 미안해.”


남편의 행동이 사랑스러워 다정하게 껴안아주었다. 이제 누가 뭐래도 이 남자는 내 남자다. 그가 36년간 비밀 미남으로 살아와서 다행이다. 덕분에 나한테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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