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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Sep 27. 2022

#2 구해줘! 홈즈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34년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 대학교는 버스로 20분 거리였고, 제일 멀리 다닌 회사가 여의도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회사에도 다녀봤고, 마지막 회사는 지하철로 네 정거장이었다. 심지어 취미 활동을 했던 스윙 댄스 바도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우리 집은 내가 활동하기에 최적의 베이스캠프였다. 독립할 이유가 없었다.


난생 처음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갔다. 제주 숙소를 찾는 작업은 나에게 설렘을 주었다. 우선 거주할 지역을 골라야 했다. 중산간 지역의 농가 개조 주택이나 바닷가는 제외하고, 편의 시설이 인접한 시내 원룸을 알아봤다. 제주도 교차로 신문, 오일장 신문 등에서 매물을 봤다. 제주 공항에서 가까운 연동이나 노형동이 번화가라고 했다. 깔끔한 풀 옵션의 원룸 사진이 네온사인처럼 반짝거렸다. 랜선 집 구경은 어떤 쇼핑보다 재미있었다. 홀린 듯이 하루 종일 집 구경을 했다. 이상형 월드컵을 하듯 숙소를 제외해가며 세 곳의 후보지를 선정했다. 1순위로 마음에 드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064로 시작하는 부동산 전화번호를 누르고 심호흡을 했다.


 "저... 한 달간 거주하려고 하는데요, 방 계약할 수 있을까요?"

 "여기 올라온 매물들은 다 연세로만 계약받아요."


그랬다. 제주도에는 연세라는 독특한 주거 형태가 있었다. 2순위 원룸도, 3순위 숙소도 모두 같은 답변을 들었다. 차선책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장기 투숙을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여행자들의 들뜬 분위기에서 집필에 집중할 자신이 없었다. 글보다 노는 데 정신이 팔릴 것 같았다.


이틀에 걸친 인터넷 서핑으로 설렘은 사라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방 한 칸만 내어주세요.'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갔다. 노형동의 한 원룸이 월 단위로 계약 가능하다고 했다.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두 달 뒤에 입주하고 싶다고 했다. 부동산 아저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주 일주일 전에 전화하세요."


확실한 걸 좋아하는 나였지만, 제주에서는 제주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차분히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입주 예정일이 가까워졌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부동산 아저씨는 그제야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한 달 내로 만기가 되는 방이 5개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계약해주겠다고 했다. 날짜를 정확히 맞추기는 힘들고, 하루나 이틀 정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무조건 네, 네 했다.


그날 저녁, 064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됐다, 싶은 마음에 기쁘게 전화를 받았다. 10평짜리 방이고,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라고 했다. 모든 게 적당했다. 계약금 20만 원을 송금했다. 보증금 외에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10만 원, 청소비가 5만 원, 관리비가 한 달에 5만 원이고, 가스비, 전기세는 별도였다. 아껴두었던 백수 자금을 쓰기로 했다.


한 달로 계획했던 제주살이는 준비 과정에서 세 달이 되었다.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아서 한 달만 있다 오기는 아쉬웠다. 소설의 80% 이상을 완성해 오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틈틈이 여행도 할 생각이었다.


마침내 3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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