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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Oct 03. 2022

#3 나는 책으로 제주도를 배웠다

제주살이를 준비하면서 스무 권의 책을 읽었다. 제주도를 가본 적은 있지만 경험한 적은 없던 나에게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소설과 소설 사이에서 단조로운 직선 운동을 하던 나에게 여행 에세이는 휴식 같았다. 곧 머무르게 될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제주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시적 독립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도 해소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 줄씩 흘러나오는 꿀팁을 메모했다. 머릿속으로 나만의 동선을 만들었다.


다음은 제주살이를 위해 읽었던 독서 목록 중 일부이다.


1.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책을 펼쳐 들었지만 하루에 다 읽지는 못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끝이 저릿저릿해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작가가 루게릭 병을 앓으면서 쓴 이 책에는 죽음의 기운이 흐르고 있다. 죽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들이니만큼 자신에게 솔직했고, 자신의 허물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내가 그 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섬에 한낱 인간인 내가 있었다'는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김영갑의 삶이 되었다. 작가가 생을 바친 섬에서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2. 왜 사느냐면, 제주도에 (허수경)

회사라는 조직 생활에 실패한 나에게 그녀는 "때로는 잃는 것이 더 큰 성장을 가져다준다"며 심심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하나의 실패가 인생 전체의 실패는 아니라며, 그 실패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녀가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제주는 내게도 근사하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3. 제주도 살고 싶다, 두나 게스트하우스

<본문 중> 갑작스럽게 많은 일들이 벌어져서 어리둥절하지만, 어떤 결도 없이 느슨하게 펼쳐 있던 내 삶이 다시 촘촘하게 잡혀 가는 기분이다.


이 책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개인적인 삶에 충실하지 못했다. 월급을 받기 위해 내 에너지를  쓰고, 주말은 일하기 위해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루를 내 마음대로 설계하게 되면서 ‘내 삶이 다시 촘촘하게 잡혀가는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쫄깃

만화가 메가쇼킹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야기다. 지금 힘들다면 모두 다 낚인 거라며 한 번뿐인 인생, 지금 당장 즐기라고 말하는 그의 말은 내 선택에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본문 중> 내가 누리고픈 삶은 노는 게 일하는 거고 일하는 게 노는 삶. 남은 인생 그런 삶을 누리는 게 목표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꼭 글을 써야겠어? 지금보다 돈을 못 벌어도 좋아?"

“응, 나는 글 쓰고 책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해. 1년 동안 독서실에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책을 보라고 해도 즐거울 것 같아. 작가가 못 되더라도 행복한 독자는 될 수 있을 것 같아."


 5. 제주에 살어리랏다

방송 작가 특유의 근성으로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집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작가. 저녁에 동네 마실을 나갔다가 불이 켜져 있는 체육관에 들어가게 되면서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어 마을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본문 중> '저항'은 나쁜 것이라 배우며 자란 내게 '도전'이라는 단어 또한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보편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바른생활 지침서'가 나의 강박인 셈이다.


나의 고유성을 알게 되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나의 욕구와 개성은 얼마나 억눌려 왔을까? 작가 또한 제주도에 가서야 자신이 달려온 인생과 그녀를 둘러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제주살이는 낯선 곳에서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6. 제주 보헤미안

내가 부러워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제주에 정착해 있다고 해서 이 책이 궁금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루를 꽉꽉 채우며 살아가는 삶.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그다음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이 무얼 해야 행복한 지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보는 내내 행복했다. 그들의 삶은 나의 선택과 도전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7. 제주로망주의보

제주도에서 1년을 사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하기로 한 어느 서울 부부의 제주살이 이야기다. 제주살이에 대한 환상을 말하거나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고, 부부가 겪고 느꼈던 제주에 대해 담담하게 말해준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별생각 없이 와서 머무르다 가라"고 한다. 이것저것 재기만 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한다. 일단 마음먹었으면 그다음은 어느 정도 운에 맡기고 해 보는 게 좋다.


다른 삶을 꿈꾼다면 우선 딱 한 발자국만 움직여 보는 거다. 그러면 다른 시야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달라진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보기다.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진짜 나를 찾는 것. 그리고 내 생각을 필터 없이 자유롭게 원고지에 쏟아내는 것. 그게 내가 제주도에서 할 일이다.


제주살이를 결정하기 전에, 스스로를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다. 3개월 동안 금주할 것, 일주일에 5회 이상 독서실에서 10시간 동안 책을 읽을 것. 매일 같은 생활을 하면 질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반복은 나를 강하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독서실에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은 한 달 후부터 사라졌다. 매일 아침, 아무 생각 없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왔고, 독서력이 향상되었다. 처음에는 100페이지를 읽으려면 3시간이 걸렸는데, 어느 순간 2시간 반으로 줄어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 내 의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제주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제주살이가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밥상에서 엄마한테 툭 던지듯 제주살이 계획을 말했다. 말로 내뱉고 나니 진짜로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준비들은 부수적이었다. 항공권을 끊은 후에는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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