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삶에 관한 연구 #1>, <아트로포스 작전>
코코 푸스코는 2005년부터 이라크 전쟁과 미군 여성심문관에 관한 일련의 시리즈를 제작한다. <발가벗은 삶에 관한 연구 #1(Bare Life Study #1)>(2005), 시뮬레이션 심문-저항 실전 훈련을 담은 영상 기록물 <아트로포스 작전(Operation Atropos)>(2006), 여성 군인 심문관 퍼포먼스 <자기만의 방 :새로운 아메리카의 여성과 권력(A Room of one’s Own: Women and Power in the New America)>(2006-2008) 그리고 퍼포먼스 기록물이자 비평을 담은 <여성심문관을 위한 실전서(A Field Guide for Female Interrogators)>(2008)로 마무리된다.
해당 시리즈는 9/11 공격과 테러와의 전쟁에서 표출된 다양한 양상의 반응에 대한 푸스코의 비평이다. 9/11 공격이후 전례 없이 미 전역을 휩쓴 애국주의의 물결에 대한 우려스러운 감정은 2004년 4월, 소위 아부그래이브(Abu Ghraib) 스캔들로 알려진 미군의 포로 학대 사진이 유출되면서 푸스코에게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푸스코는 사진에서 전쟁과 여성’이라는 의제에서 항상 피해자였던 여성의 이미지와 완전히 상반되는 폭력의 가해자인 여성 군인의 모습에 사로잡혔다.
아부그래이브 사진이 공개된 약 5~6개월 뒤, 여성심문관들이 무슬림 남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이슬람의 문화를 이용해 성적인 학대를 가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대와 고문의 전략을 직접 지휘한 상급 여성 장관들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당시 이라크에 주둔한 전 군인의 15%는 여성이었고 그 중 전투부대가 아닌 정보부대에 여군의 35%가 배치됐다. 푸스코는 왜 많은 수의 여성들이 전투와 관련되지 않은 부대에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많은 여성 군 지휘관들이 성적 학대와 고문을 지시하고 허가 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국의 현주소를 바탕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군인 심문관에 대한 연구는 심문실에서 일어나는 심문관과 수감자 사이의 드라마틱한 상호작용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심문관들이 그들의 역할을 어떻게 체득하고 합리화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었다. 이 연구의 시작은 가상 시뮬레이션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훈련은 <아트로포스 작전>(2006)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었고 이듬해 같은 제목의 영상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훈련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한 퍼포먼스 <발가벗은 삶 연구>와 <자기만의 방>이 제작되었다.
푸스코는 <아트로포스 작전>에서 7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이른바 전쟁포로(POW) 또는 시어 훈련(SERE)으로 불리는 포로 시 행동요령 훈련에 참가했다. 훈련 첫째 날 참가자들은 팀 델타의 심문관들에게 납치되고 억류되었고 심문을 받으면서 사전에 주어진 비밀정보를 끝까지 누설하지 않는 것을 미션으로 수행했고, 2~3일째에는 심문관이 되어 심문의 기술과 전략을 배웠다. 푸스코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목적의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설 에이전시 ‘팀 델타(Team Delta)’의 도움을 받아 훈련을 진행했고 이후 팀 델타의 남성과 여성 군심문관을 심층 인터뷰했다.
푸스코는 팀 델타와의 협력과정을 통해서 군심문관들이 심문관으로써 ‘정신 공간’(mental space)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에 대해 터득하게 되었다. 심문관은 소스라고 불리는 정보제공자의 외양, 계급, 지위, 개인 기록 및 수감시설 내에서의 행동과 다른 수감자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심문관은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데 이 과정에서 적합한 ‘배역’을 설정한다. 그리고서 적절한 대사와 질문 그리고 악센트와 목소리 톤 등을 세심히 조정한 후 연기자가 무대를 꾸미듯 심문실을 그에 맞추어 정비하고 심문을 시작한다. 이처럼 심문은 한 명의 관객을 위한 연극적인 퍼포먼스이다. 따라서 심문 기술 학교(interrogation school)에서는 정보 제공자의 감정을 능숙하게 조정하기 위해서 다양한 성격의 수감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심문 시나리오를 통해서 역할놀이를 훈련한다.
이처럼 ‘상상에 입각한 가상의 캐릭터’를 발전시키면서 반복적으로 연습하게 되면 실제의 상황에서는 특별한 감정적 변화나 스트레스를 겪지 않으면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뿐더러 주어진 배역으로부터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 심문관이 특정한 배역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고 이를 연기하는 것은 연극이나 퍼포먼스와 동일하다. 따라서 여성 군 심문관들의 경우 이와 같은 훈련을 통해 때로는 온정적인 간호사관으로, 또는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배우로 그리고 가학적 포르노그래피의 여성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군사주의와 여성 심문관에 관한 푸스코의 퍼포먼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첫 번째 퍼포먼스는 2005년 브라질 비디오 페스티벌(15th Videobrasil International Electonic Art Festival)에서 상연된 <발가벗은 생명에 관한 연구 #1(Bare Life Study #1)>(2005)이다. 푸스코는 50명의 드라마 학교 학생들과 상파울루에 소재한 미 대사관 앞에서 교관과 수감자 간의 복종훈련을 퍼포먼스했다. 푸스코는 이라크 파견 군인의 군복에 모자와 부츠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하였고 그녀의 대대원들은 고개를 떨군 채 한 손에 칫솔을 들고 관타나모에 구금된 수감자들을 상기시키는 오렌지색 점프슛을 입고 대사관 앞 거리를 행진했다. 푸스코는 허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손엔 메가폰을 잡고서 포르투갈어로 구령을 외치며 수감자들을 걷거나 멈춰 세웠고 때때로 이들의 수감 번호를 호명하면서 행동을 교정했다. 명령에 따라 수감자들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바닥을 칫솔로 닦았는데 이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행해지는 일상적인 처벌방식을 재연한 것이다.
퍼포먼스의 제목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은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의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2008)에서 왔다. 그는 저서에서 사회적 삶(비오스, bios)를 박탈당한 채 생물적 삶(조에, zoe)만이 허용되었던 로마시대의 특이한 수인(囚人), ‘호모 사케르’의 삶의 조건을 통해서 오늘날 시민사회의 외곽에 놓인 존재들의 ‘벌거벗은 삶’에 대해 말했다. 아감벤은 국가주권의 보호와 법질서의 바깥이라는 ‘예외상태’를 탐구하는데 이 공간은 본질적으로 법적, 정치적 질서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장소다. 그가 4번째 세계라고 언급한 수용소와 같은 공간이 바로 그 예이다. 제네바 협정에 의해 보호되지 않으며 법정에서 공정한 심판을 받지 못할뿐더러 이들의 생명을 박탈해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경계선 너머에 놓인 사람들을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푸스코는 아부그래이브와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된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을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작가는 ‘테러와의 전쟁’,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대의 하에 이루어지는 미국의 수감시설의 강압과 폭력행위를 미 대사관 앞에서 재연하는 장소특정적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게릴라식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관타나모 수감소의 일상적인 스펙타클을 공공장소에서 대중들이 구경하도록 했다. 미 대사관에서는 해당 퍼포먼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브라질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9/11 공격 이후 미대사관의 빈번한 보호 요청에 지친 브라질 경찰들은 경호에 태만했을 뿐더러 외려 퍼포먼스를 보고 즐기고 사진을 찍으면서 퍼포먼스를 경호했다. 게다가 대사관 직원들은 미국의 관할구역 밖인 대사관 외부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직접 제지할 수도 없었다. 당시 퍼포먼스를 취재하려는 수많은 기자들로 인해 행진이 어려울 정도였으며 퍼포먼스가 주요 언론에 방영되면서 수감시설 내의 환경에 대한 여론을 환기 시키는 데에도 기여했다.
푸스코는 비 전시 상태의 수용소에서 적대적인 긴장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지배와 복종의 역할극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구령에 맞춰 움직이게 하고 무릎을 꿇어 청소를 시키는 단순한 반복 행동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가해지는 지배와 복종의 일정한 신체적 움직임과 수용소 내에서 자신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적인 도구인 칫솔을 이용해서 수감소를 청소하게 하고 더불어 자기 자신을 씻도록 하여 수감자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처벌행위는 수감자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수감자를 지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복종과 종속의 신체적 훈육을 통해 굴욕을 수행하는 예외 상태에 놓인 삶을 공공장소에서 상연함으로써 관타나모 수감소의 불법적인 행위를 환기시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