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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Sep 27. 2022

#1. 뜻밖의 에티오피아

거리의 사람들, 고난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온기

아침 6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내렸다. 지금부터 밤 11시 이스라엘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약 17시간 동안 머물게 될 경유지이다. 항공사에서 준비한 호텔 바우처를 받고 비어가든 Beer Garden이라는 2성급 호텔에 하루 간 머물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렸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거리는 현지 사람들로 붐볐다. 난생처음 보는 아프리카의 풍경이었다. 

셔틀버스에서 내다본 풍경은 다소 위험해 보였다. 잠시 현지 풍경에 정신 팔려있을 때 셔틀버스는 진흙 구덩이가 가득한 비포장 도로로 들어섰다. 낡은 버스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차는 흔들렸고, 차가 구덩이에 박히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예사롭지 않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선 버스, 완공되지 않은 채 시멘트가 노출된 건물에서 무언가를 피고 있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 어쩐지 봐서는 안될 장면을 무심코 봐버린 기분이었다. '아, 함부로 밖에 나가면 안 되겠구나.' 단번에 위험이 느껴졌다. 


갑작스레 바뀐 비행기 일정으로 나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다짜고짜 많이 챙겨 온 짐은 쇳덩이처럼 양쪽 어깨를 짓눌렀고, 간밤의 야간비행으로 전혀 쉬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숙소 동행인 필리핀 친구들이 잊지 않고 챙겨준 덕분에 아침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몸의 밸런스가 천천히 돌아오는 것을 느끼면서 테라스 밖으로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밝은 아침이었다. 햇볕이 상냥하게 거리를 비추었고 테라스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일상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내려다보면서 이들은 어떤 일로 분주한 것일까 점점 궁금해졌다. 

'정말 위험한 걸까?, 잠깐이라도 도시를 느껴보고 싶은데, 어쩌지?, 혼자 나가도 될까?'

필리핀 친구들을 호텔에 머물며 쉬고 싶어 했고, 나는 잠깐이라도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를 걸어보고 싶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기약이 없는 곳이었다. 

아디스아바바 공항의 볼레 Bole 지역 한 켠의 풍경

일단 대충 챙겨 입고 가방에는 핸드폰만 넣었다. 호텔 데스크 직원에게 물어볼 참이었다. 

"여기 둘러보고 싶은데 혼자 걸어 다녀도 괜찮은가요?"

"네, 가방만 잘 간수하시면 돼요. 근처에 쇼핑몰 있으니 가보셔도 좋고요."

에티오피아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도착한 터라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내어줄 돈도 장신구도 값비싼 물건도 없었다. 그저 거리 풍경을 사진에 몇 장 담고, 현지 분위기를 느껴보고,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


직원이 괜찮다고 하니 일단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래, 쇼핑몰까지 찍고 돌아오는 거야.'

나는 잔뜩 긴장해서 가방을 손으로 짧게 쥐고는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쇼핑몰이 있는 방향으로 직진했다. 얼마 걷지 않았을 때 커다란 쇼핑몰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교차로에 섰다. 사실 쇼핑에는 그다지 취미가 없기 때문에 쇼핑몰에 들어갈지 다른 방향으로 더 걸어볼지 고민이 되었다.

숙소 근처의 쇼핑몰이 마주한 교차로 풍경

머뭇거리고 있을 때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흰 가운으로 몸 전체를 두른 여성분이 다가왔다. 

"돈 좀 주세요."

등 뒤의 아이를 가리키면서 손으로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돈이 전혀 없어요."

두 손을 모으고 가볍게 머리를 숙이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희미하게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여전히 교차로에서 어디로 갈지 서성이고 있었다. 바로 옆에 보이는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어떤 것들을 파는지 둘러보고 나와보니 왠지 지금이 에티오피아의 명절 시즌인가 싶었다. 교차로 건너편에서 비치는 흰색 가운을 온몸에 두른 사람들이 공원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부터 "해피 에티오피아 뉴 이어"라는 홍보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고, 가는 곳마다 노란색 리본이나 색줄로 장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한 해가 반이나 훨씬 지난 시점에서 새해라니... 나는 그저 이번해 1월에 장식해 놓은 것들을 지금까지 치우지 않고 있나 하는 정도로 무심히 지나쳤다. 

건너편의 공원에서 무슨 행사를 하고 있는지, 풍물 시장이라도 열린 건지 궁금해져서 교차로를 건너려는데,

"헬로우!"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몇 발자국 멀리서 들렸다.

아, 갓난아이와 함께 있던 아이 엄마가 나를 다시 발견하고는 인사하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반갑고 경쾌하게 들렸다.

낯선 사람의 기분 좋은 인사라니. 나는 그저 길을 걷던 행인이고, 그녀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었다. 잠깐 전에 만난 사람에게 저렇게 반가워하다니. 아마도 나는 그녀의 다정하고 유쾌한 뜻밖의 인사 때문에 긴장이 누그러지면서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디스아바바 볼레 지역의 어느 교차로 풍경


에티오피아, 길 위에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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