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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Oct 29. 2022

3_3#분명 여행 중이었다

Raymond Chang을 기억하며

레이몬드 창의 장례식 제단

나는 살면서 몇 번의 장례식을 가 봤을까.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장례식은 누구의 장례식이었을까.

호주 멜버른을 여행하던 중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많지도 적지도 않았던 장례식들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과 친구의 장례식, 할아버지의 장례식, 잇따라 치러진 할머니의 장례식,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과 친구 오빠의 장례식,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지인들의 장례식들... 가끔은 믿어지지 않았고, 대체로는 덤덤했지만 가끔씩은 터지는 울음을 삼켜야 했다. 고인의 친지보다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감정을 참고 여과해가며 예의라는 이름으로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려고 노력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두 달여간의 여행이 마무리될 즈음 접하게 된 스티븐 아버지의 죽음은 내 인생을 뒤흔드는 듯했다. 예정대로 귀국행 비행기를 탔더라면 놓쳤을 순간이었다. 나는 타국에서 그 소식을 들었을 테고, 내 자신의 슬픔도 달래지 못했을 것이고, 스티븐은 물론이고 함께 슬퍼할 친구들과의 위로를 나눌 수 없었을 것이었다. 

실은 단 한 번 뵌 분의 죽음으로 내가 이토록 슬픔에 잠긴다는 것이 의아했다. 물론 따뜻했던 가족 식사 모임 속에서 스티븐 아버지의 다정함과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치매로 많은 기억을 잃어가고 계셨지만, 한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본성은 그대로 남는 것일까. 여하튼 소중한 기억조차 희미해지고 잃어버리게 된다는 건 자신에게도 지인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다.


스티븐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스티븐과 스티븐의 어머니께 위로의 편지를 쓰려고 문장을 고르고 골랐다. 마치 온몸에 슬픔이 차서 출렁거리는 것 같았고 이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기분 전환 삼아 야라 강변을 걸었고, 벤치에 앉아서 편지에 어떻게 적을지 연습 삼아 적기 시작했다. 갑자기 난데없이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안 되는 영어로 노트에 주절거리면서 내 감정에 휩싸여버렸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보여줄 수 없었다.

호주의 장례 문화는 어떤지.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하다못해 작은 일이라도 어떻게 도와주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스티븐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최대한 결례를 피하면서 어떤 식으로 감정적으로 지지해주고 실질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홍콩계 호주 이민자들의 장례문화나 절차는 어떤 것일까. 대체 누가 답해줄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죽음을 대면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낯선 문화권의 장례 예절을 알아보고 이를 잘 모르는 언어로 표현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스티븐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주 화요일 던캐스터에 있는 토빈 형제의 집에서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야."

장례식 날 아침 일찍 스테피의 차를 얻어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나는 스테피에게 가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이것저것 물었다. 

"되도록 검은색 옷을 입으면 돼." 

"다른 건 준비할 필요 없어? 이를테면 꽃이라든지, 부조금이라든지."

"응 다른 건 안 필요해." "네가 그곳에 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Tobin Brothers Life Church, Doncaster 

평소에 늘 칙칙하게 입고 다니던 터라 여행 때는 되도록 밝은 옷을 챙겨갔는데, 장례식에 가게 될 줄이야... 

가지고 있는 옷을 뒤져서 최대한 어두운 계열로 맞춰 입고 장례식 장으로 향했다. 

장례식 장에 들어서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영화에서는 많이 봤던 장면이었지만, 서구의 장례식 경험이 전혀 없던 내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진짜 관을 가져다 두는구나. 근데 아무렴 비어 있는 관이겠지. 죽은 사람을 병원 밖으로 데려올 순 없잖아.'라고 중얼거렸다. 

장례식은 사회자가 준비한 대로 진행되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사진을 준비했고, 사진은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고인의 어린 시절부터 가장 최근까지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서 한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돌아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장례식 일정이 담긴 리플릿

추모음악이 연주되었고, 우리는 모두 묵념을 했다. 사회자가 나와 조심스럽게 장례식을 주관하기 시작했다. 레이몬드 장의 어린 시절과 가족들 그리고 청소년기까지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홍콩에서 태어나 말레이시아에서 자랐고 17세에 호주 퀸즐랜드로 이주하여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스티븐 아버지의 호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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