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사람들, 절절한 기도가 주는 울림
갓난아이 엄마의 기분 좋은 인사를 뒤로 하고 교차로에 섰다.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았고 눈치껏 현지인들을 따라 달리는 차를 피하면서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를 건넜다. 길을 건너자마자 성당의 푸른색 돔이 멀리 보였고, 돔을 중심으로 좌우로 에티오피아 국기의 삼색으로 장식된 깃발이 걸려있었고, 비치는 흰색 스카프를 머리부터 온몸에 감은 행인들이 돔을 향해 걷고 있었다. 주변의 좌판에서는 크리스트교와 관련된 크고 작은 물건들을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성경, 목이나 팔에 두를 만한 염주, 몸에 걸치는 스카프 같은 기도 하는데 필요한 종교 소품들이었다.
'아, 크리스트교 행사가 있나 보구나. 근데 에티오피아가 크리스트교인가?'
'난생처음 와보는 아프리카 대륙의 한 나라에서 크리스트교 행사를 보다니...'
'근데 대체 무슨 기도를 저렇게 하는 것일까?'
신도들과 함께 길을 따라 걸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 모드였던 터라, 일단 선글라스를 벗고 핸드폰을 아래로 가만히 쥐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조금 설레었던 발걸음을 고쳤다.
성당이 훤히 보이는 광장에 다다랐고 커다란 분수 너머로 커다란 규모의 성당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두 번째 규모로 큰 성당인 볼레 지역의 메르하네알렘Medhanialem 교회였다. 에티오피아의 인구 절반이 믿는 터와흐도Tewahedo 정교회 소속 건물이었다.
잠시 멈추고 성당 건물과 주변의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내가 목발을 짚으면서 다가왔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자신의 불편한 한쪽 다리를 보여주면서, 사정이 어려우니 돈을 줄 수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안타까웠지만 이번에도 하는 수 없었다. 나는 줄 수 있는 돈이 없어서 죄송하다고 두 손을 모으면서 말했다. 그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면서 조용히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뭐지? 왜 이렇게 공손하지?'
이것은 분명히 내가 소위 생각하던 '구걸'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서 보았던 구걸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손을 내밀고 무언가를 얻을 때까지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무례한 떼쓰기였다. 게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태도가 돌변하여 안면몰수하거나 욕을 할 수도 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든 주지 않든 그들에게서 평온함이나 감사 인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 이들의 행동은 무엇일까? 갓난아이 엄마나 목발을 짚은 남자나 도움이 절실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되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서 타인에 대한 분노나 배신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성당 앞으로 다가섰다. 사람들은 성당 입구에 서서 성당 벽에 뺨을 맞추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입맞춤을 하고, 조용히 입술을 달작거리면서 한참을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무엇이 이 사람들로 하여금 저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게 하는 것일까?'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한동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영문도 모르면서 양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괜히 민망해져서 나는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대체 이 사람들에게 기도란 무엇일까?'
'유달리 경건하고 절실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까 교차로를 건널 때 도로의 중앙선 한켠에 머리를 무릎에 박고 두 손을 감싼 채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있던 사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무슨 이유로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서 저리도 괴로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일까?'
성당으로 오는 동안에 보았던 길거리의 사람들은 여유롭거나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다가와서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되 강요하거나 떼쓰지도 않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던 사람들, 신에게 온몸으로 기도를 드리며 간절히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때 한 꼬마가 다가와서 간만에 영혼을 정화하고 있던 이방인의 침묵을 깼다.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는 게 아닌가.
'하아, 참... 꼬마 녀석까지 돈을 달라네...'
나는 내 가방을 속까지 다 뒤집어 보여주면서
"봤지? 줄게 없어."
조금 귀찮은 투였다.
'이런 성스러운 시간을 방해하다니... 집중하고 있는 게 안 보이나?'
산통이 잠시 깨졌지만 나는 다시 영혼의 정화의식에 집중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교회 입구에 서서 가볍게 인사드리고는 한참을 서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펼쳐 들고 자기만의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이들을 볼 수록 인간이 가진 한계와 그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늘의 신에게 자신의 영혼을 바쳐서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인간의 성스러운 영혼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다시 한참을 그렇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인가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 그 꼬마가 입가에 잔뜩 장난기를 머금고는 기둥 뒤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엇 쟤 뭐지?'
하는 차에 꼬마가 반대쪽 기둥으로 잽싸게 달려가서는 반쯤 몸을 감추고 몰래 나를 쳐다봤다.
'으하하하! 숨바꼭질 놀이 하자는 거구나!'
아차차 나도 모르게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럼, 놀아줘야지'
나는 기둥 뒤에 숨은 꼬마를 잡는 시늉을 했고, 꼬마는 까르르 웃더니 기둥 왼편으로 돌다가 오른편으로 돌면서 우리는 술래잡기를 했다. 주변에 기도하던 사람들도 우리가 노는 걸 보고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근데, 이 녀석 의외로 잡기가 쉽지가 않네'
성당의 기둥을 잡고 술래잡기를 하다가 나는 순간, 갑자기 날아든 천진한 아이의 행동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꼬마는 애초에 돈이 목적이 아니라 나랑 놀고 싶었던 거였다. 그저 이방인이 신기해서 호기심에 다가왔던 거였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순수할 수 있을까.
나는 꼬마를 불렀다. 내가 "포토, 포토"를 외치자 귀여운 녀석이 바로 다가와서는 스스럼없이 내 목에 팔을 두르고는 포즈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