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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Oct 30. 2022

#3. 뜻밖의 에티오피아

조용한 환대, "안녕하세요"

아이와 놀다가 함께 성당에서 뒤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여지없이 돈을 달라며 "머니, 머니" 라고 외친다.

순간적으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며시 속에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약간 귀찮은 투로 "쏘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길 가장자리 펜스에 기대앉아서 나를 불러 세우고는 약간 무례한 투로 돈을 달라던 두 명의 아주머니들이 멀리서 손바닥으로 키스를 보내는 것 아닌가.

"하하하하"

나는 다시 웃고 말았다. 

돈 달라는 말이 이곳에서는 이방인에게 하는 환대 인사인가? 

나도 손바닥으로 기분 좋게 키스를 불어 보내드렸다. 


호텔을 나설 때는 낯선 곳이 주는 긴장감과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풍경 때문에 위험을 느끼고 가방을 꽉 쥐어매고 길을 나섰는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기분 좋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데없는 환대를 받았다. 그저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니. 이곳의 사람들이 보여준 순수함과 천진함 때문인지 온몸에 감동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척이나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따스한 기분과, 그간의 괴로움과 걱정들이 온몸에서 전부 떨궈져 나가면서 감사함으로 떨리는 기분이었다. 대체 이들은 누구일까. 길 위의 천사들이 아니었을까.

호텔 앞 노상 주차장 풍경, 작은 간이 카페가 왼편에 보인다


순수한 환대에 무장해제된 상태로 호텔 앞 골목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또박또박 들리는 한국어였다.

'으응? 뭐지?' 주변을 둘러봤다.

왼편의 노상 주차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네, 안녕하세요!"

놀란 눈으로 바라보면서 한국어로 대답했다.


"커피 한 잔 하고 가요."

남자가 영어로 말했다.

"네? 죄송하지만, 제가 돈이 하나도 없어요."

당황한 나는 약간 바보 같은 투로 말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고,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셔봤냐고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허름한 노상 주차장 한 복판에 앉아서 젊은 남성 두 명과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주차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간이로 만든 텐트에서 커피를 한 잔씩 하는 노상카페 같았다. 그들은 본인들의 차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택시 운전기사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나는 어색하게 앉아서 상황을 살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다시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고, 한국어는 어떻게 알았으며, 내가 한국인인지 어떻게 알았던 걸까? 근데, 그건 그렇고 커피값이 없는데 어떡하지...' 

호리병처럼 생긴 투박한 토기 모양의 주전자에서 진한 색의 커피가 내 잔으로 따라졌다. 


그는 한국인 손님을 꽤 태웠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에 일하러 온 한국인들이 많다며. 

"근데 제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응,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코가 높고,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머리카락이 굵어요"

"하하하하"

아주 찰나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미묘한 차이를 단번에 파악해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언급한 차이점들이 너무 재밌어서 웃고 말았다. 


"근처에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어요."

거기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을 택시에 많이 태운다고 했다. IT나 전자제품 관련한 한국 회사들도 꽤 많이 들어와 있는지 한국문화나 한국 사람들에 대해 꽤나 많이 익숙한 것 같았다. 낯설면서 반가운 기분! 나는 모르지만 나에 대해 잘 알고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온 사람이 뜻밖의 선물처럼 내게 다가온 것 같았다.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조인 루시에 대한 이야기며, 유명한 인류학 박물관, 곧 맞이할 명절에 관한 얘기, 한국전쟁 때 에티오피아 군대가 파병 왔던 이야기, 그리고 근처에 맛있는 에티오피아 커피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었다. 아주 잠시 머무는 낯선 이방인에게 에티오피아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환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에 대한 은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부심을 가질만한 독립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진 국가이다. 


타인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순수한 환대로 이방인을 경계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놀라웠다. 뜻밖의 낯선 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전해주는 편안하고 은은한 안정감이 온몸에 감돌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사람이 낯선 누군가를 조건 없이 환대하고 경계 없이 대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는 것,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태도였다. 이곳에서 아무도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이 세상에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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