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단상
사물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접시는 위에서 보면 둥근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긴 줄 하나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물이 다 그렇다. 그런데 어디에서 바라봐도 똑같이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완전한 구(球)가 그것이다. 완전한 구는 어디에서 바라봐도 구의 형태로 보인다.
구란 한 원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무수한 점들의 집합이다. 구를 구성하는 어느 점이든 원점으로부터는 같은 거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쪽에서 바라보든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둥근 것도 그런 원리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서나 통하는 '진리'가 있을까 하는 것이 늘 의문이었는데, 오늘 구(球)를 생각하다가 문득 '있다'는 쪽에 희망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모든 사물을 탄생시킨 만물의 원형도 '구'의 형태를 가졌을 것이 틀림없다. 그 원형으로부터 만물이 만들어졌다면, 시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진리'도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든 알지 못하든 그것은 상관없다. 그것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지 여전히 존재하고 작용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원형의 진리가 '정의'일 거라고 믿고 싶다. '정의'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 자연스러운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다수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공평하게,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원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서 있는 것(공평한 기회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출발이 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 사회적 약점을 가진 사람에게는 핸디캡을 적용하는 것이 출발점을 같게 하는 것이다. 그 핸디캡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자들의 양보를 전제로 한다. 그래야 공정한 경쟁이 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런 원형의 인간(人間)을 지니신 분이다. 그분에게는 누구나 같은 거리에 있다. 스스로 다가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분이 직접 가신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누구나 같은 거리에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원형의 진리인 '정의'를 나는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본다.
2014.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