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에-
"아아- 흔들린다."
사진의 초점이 흔들린다. 그런데 사진이 흔들렸을 리 없다. 왜냐면 아이폰은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의 초점을 잡아주니까. 흔들리고 있는 것은 나였다.
흔들렸다. 삶이.
슬럼프라는 것은 때때로 가장 의욕적인 순간에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일도 글도 의욕적으로 하고 있었다. 둘 다 꾸준하게 각각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일이 바빠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에너지가 없거나, 글 쓸 정신이 없거나, 대부분은 아예 집에조차 없었다. 나는 계속 다녔다. 여기저기. 무수히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지내는 것이 내 일의 이유라고 믿으며.
여유는 점점 사라졌다. 화가 생겼다. 분명 어느 정도 풍파에 초연해졌다고 믿었는데 말이다. 나는 다시 지독하게 바쁘고 반복적인 일상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일의 이유조차 제대로 생각지 못한 채 일단 일을 해내는 것에 몰두했다. 때로는 내 개인기로, 때로는 운으로, 대부분은 우리 팀원 동생들의 실력으로 어려운 상황들을 헤쳐나갔다.
"우리는 지금 것 이 일을 해온 팀들 중에 최고야."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팀. 마이 베스트 팀. 나의 부재를 메워준 동생들에게 복귀를 알리며 그들이 고생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음을 내 방식대로 표현했다. 인사는 '고생했어'라는 격려보다는 '고마워'라는 감사함에 가까웠다.
나는 얼마 전 승진 후 처음으로 팀장역할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리더역할도, 실무진 역할도 동시에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글쓰기와 일 동시에 최고 수준으로 노력을 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기대는 채 6개월도 안되어 깨졌다. 모든 것을 다 잘하긴 어려운 것이었다. 그걸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려웠다.
삶이 브레이크를 잃어버리고 치달렸다. 이성이 멈추라 명령하지 않으니 몸이 멈췄다. 나는 태어나 처음 수술대에 올라서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지독한 한기에 몸을 덜덜 떨었다. 비몽사몽 한 와중 '아일릿의 빌려온 고양이'가 귓가를 때렸다. 나는 이게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수술부위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마취가 점점 풀리자 수술부위가 움직였다. 나는 절로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로는 바로 앞에서 내 곁을 지키는 아내에게. 둘째로는 붓다에게, 하나님에게, 그리고 하나인지 여럿인지 모를 절대자들에게. 셋째로는 내 운명에게.
운명이 비싸게 삶에서 수업료를 치른 듯한 생각이 들었다. 10월 한 달, 나는 나를 되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정성스럽게 댓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나도 주기적으로 누군가에 글을 꼼꼼히 읽으며 코멘트를 한다는 것. 그런 교류들을 브런치에 유지하는 것은 꽤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할 수 없었던 10월 동안, 머릿속에 그들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글을 서로 읽고 쓰는 것, 그것도 대부분 좋은 글들을 쓰는 작가들과 함께. 그 유대는 생각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와 긴밀하게 글을 읽고, 서로 댓글을 남겨주는 작가님들께 수술 후 부재했던 지난 시간 동안 미안함이 켜켜이 쌓였다. 그래서 이 새로운 연재북은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사과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격조했습니다. 재활 중입니다. 다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