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의 사랑
Sandman - Been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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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엘리베이터 창 밖으로 보이던 사람들의 얼굴이 희미해질 때쯤. 그쯤이면 우리 집이 있는 층에 도착한다. ’다 왔다. 집이다.‘ 피곤한 하루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향긋한 된장과 콩의 발효된 냄새. 청국장이 틀림없다.
“블랙이 왔어?”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가 집에 들어온 것은 귀신같이 알아채는 아내다. 가끔은 파자마 차림으로, 가끔은 외출복 차림으로, 가끔은 운동복일 때도 있다. 아내의 옷차림엔 그날의 하루가 담겨있다.
잠깐의 애정표현 시간, 사랑을 확인한다.
“옷 갈아입고 와~ 저녁 다 됐어.”
제때 퇴근하는 날은 거의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시켜 먹을 때도 있지만, 워낙에 외식할 일이 많은 나를 위해 아내는 직접 저녁을 차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무조건 내편. 아내와의 공간에 다시 들어왔다. 집이다.
(3시간 전)
“블랙아 이따 저녁 뭐 먹고 싶어?”
아내가 전화를 걸어 묻는다.
“음.. 아무거나?”
나는 아내와의 대화에 거의 집중하지 못했다. 너무 바빴다.
나의 '아무거나?'는 상당히 배려 없는 답변이다. 아내는 그럼 고민에 빠진다. 나의 말투만 듣고 수수께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 점심에 고기 먹었어"라고 말만 해줬어도 고민할 게 없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다시 점심에 이어 삼겹살을 마주한다. 저녁 7시. 부부의 식탁이 피어난다.
아내는 그 와중에서도 너무 넘치지 않게 식단을 조절한다. 그 이면에는 점심에 혹시 과식했을 수도 있는 나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다.
그러니, “아직 배부른데~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와 같은 나의 투정은 아내 입장에선 서운할 만한 말이다.
그래도 내색 않고, 아내는 나에게 식탁을 찍으라 시킨다. 아내는 예쁘게 식사가 차려진 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본인이 찍으면 되는 것을, 꼭 나보고 찍으라고 시키는 그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잘 찍었어? 봐봐~”
”이렇게~ 됐지? 이쁘지? 이제 밥 먹자. “
나는 허겁지겁 상추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가장 기름져 보이는 삼겹살 덩이 하나를 쌈장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듬뿍 적신 뒤 상추 위에 올린다. 첫 점은 가급적 크고, 다양하게. 김치와 밥도 상추 위에 올라간다. 걱정하지 말자. 내 입은 언제나 쌈보다 크니까. “아직 배부른데~” 같은 투정은 온데간데, 나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허기를 느끼고 식사에 열중한다.
따끈따끈한 삼겹살이 입안에서 뭉개진다. 고소한 돼지기름이 새어 나온다. 음미하고만 있을 틈이 없다. 방심하지 마라. 김치는 언제나 주연이었다. 신 김치가 짓이겨지면서 풍부한 채소의 향이 배어 나왔다. 그 다양한 맛들을 밥과 상추가 하나로 버무려준다. 조금씩, 조금씩 맛이 조화를 이루어간다. 맛있다!.. 아니 행복하다.
단순히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담긴 음식의 맛이어서 행복하다. 예쁘게 놓인 음식들 속엔 아내의 차분한 정성이 숨어있다.
사랑이 담긴 아내의 식탁은 살리는 맛이다. 쓰러져가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맛. 나를 회복하는 맛.
아내는 “맛없는데도 맨날 맛있다고 하니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뒷말에는 다양한 답안지가 숨어있다. 1) 신난다. 2) 고맙다. 3) 내 실력이 헷갈린다. 뭐가 붙어도 자연스럽다. 적확한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아내의 표정을 읽어본다. 알겠다. 오늘은 ”신난다”가 정답이다.
아내가 신이 나면 세상이 밝아진다. 구김 없고 밝은 아내의 흥은, 곁에 있는 이들을 웃게 한다. 긍정 에너지 그 자체. 나는 그게 그렇게 좋다.
“너랑 나랑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길래 이생에 부부가 됐을까.”
잠에서 깬 새벽 두 시.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잠든 아내는 아이같이 예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 생에는 내가 지켜줄게.’
그렇게 혼자 속으로 되뇐다. 그게 내가 매일 받는 근사한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