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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거 Aug 23. 2024

아이의 감정까지 계획할 수 없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모바일 스케줄러에 일정을 기록하고, 계획한 일정의 순서에 따라 울리는 알림에 잊지 않고 일들을 실천한다(하려 한다). 수기로 기록하던 많은 것들은 온라인 어플을 활용한다. 이 어플들은 친절하게도 나의 기록을 통계화해 주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정을 추천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러한 패턴(아주 간단한 내용만 썼지만)을 더욱 부추기고 있으며, 생성형 AI가 일상에 스며들며, 어찌 보면 이제는 이러한 패턴들을 '감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할 수는 없는 시대가 곧 올 것만 같다.


 이런 삶이 익숙해진 우리는 무엇인가 시작 전 '세팅'하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공부하기 전 주변환경 세팅, 요리하기 전 주방 세팅, 일하기 전 장비 세팅 등등, 그리고 디지털이 일상이 된 지금 이러한 세팅을 도와(있어 보이게 해) 주는 수많은 장비들까지 세팅을 한다.


 육아도 비슷한 것 같다. 출산 전 각종 육아용품들을 미리준비해 두고 자녀를 맞이한다. 자녀의 성장을 기록하는 데는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촬영 및 저장, 기록용 각종 어플 등). 그리고 예전에는 주변인과 책 한 권에 의지해야 했던 육아정보는 온라인 세상에 범람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육아 계획을 세운다. 아기를 맞이하기 전 에어컨은 미리 24도로 세팅하고, 분유용 정수기 온도 및 물양을 미리세팅하고, 젖병은 미리 살균 후 소독기계에 세팅하고 한다. 기저귀 갈이대에 각종 물품을 세팅하고, 아기용 비데와, 욕조도 세면대에 설치한다. 그리고 습득한 각종 정보들을 바탕으로 수유텀과 수면텀도 미리 계획한다. 그리고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많이 준비 한 만큼 아이를 맞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이 준비했기에 그 '준비'에 발목이 잡히기도 한다.


 각종 장비들이야 아이가 혹여나 적응하지 못한다면 사용하면서 바꾸면 된다. 돈이 조금 더 들뿐이다.


 문제는 '자녀'의 의중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팅한 계획들이다.


 태열을 잡기 위해 에어컨 온도를 낮추니, 아이가 콧물이 생기는 것 같다. 콧물 때문에 온도를 높이니 태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적정한 온도를 세팅하려 애를 써도 되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24도에 태열이 올라오고, 어느 날에는 25도에 콧물이 나기도 한다. 답은 '수시로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 밖에 없다. 


 어제는 분유 1000을 먹고 7시에 잠들었던 아이가, 오늘은 1000을 먹고 7시에 잠들었는데, 9시에 깨서 또 분유를 달라고 한다. 

 분명 오늘 낮까지만 해도 3시간 텀으로 분유를 먹었는데, 저녁이 되니 갑자기 2시간 만에 분유를 달라고 운다. 답은 '수시로 확인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 밖에 없다.


 52일간 내가 숲이를 지켜본 봐, 이 친구는 '한 가지 감정이 유지되는 유효기간이 5분'정도인 것 같다. 그만큼 감정의 변화폭이 갑작스럽다는 것이다. 즉, 아이가 한 시간을 잔다고 하면 60분을 잔다고 생각하기보다, 5분씩 12번을 잔다고 생각하는 게 마은이 편하다. 그래야만 '어제는 한 시간 잤는데 오늘은 왜 조금밖에 안 자지?'라는 의문과 스트레스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밥도 120을 먹는 게 아니라 10씩 12번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래야 '오늘은 왜 이러지?'라는 감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힘들더라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아이를 봐줄 수 있다. '오늘은 왜 안 자'가 아니라 '오늘은 아빠랑 조금 더 놀고 싶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부모인 내가 편하고, 나의 편안한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그 마음을 전달받은 아이는 조금 더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는 온전히 내 개인적 생각이지만, 부모인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건 분명하다.


  '양육에 있어서 스킬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 중요하다'


 오늘은 이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데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본질은 '관계형성'이다. 이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면, 굳이 스킬들은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스킬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다.

 의사표현을 '울음'외에 표현하지 못하는 신생아라면 부모가 더욱더 아이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부모세팅한 공간에서 부모가 짠 스케줄'에 의해 아이를 맞추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세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누구든 짜증이 나고 언짢다. 하지만 그 계획이 누구를 위해 세워져야 하는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가 빠진 양육계획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물론 부모인 '나'를 버리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라는 생각을 우선시하고 계획을 세운다면, 부모 역시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왜냐! 내가 세운 계획이 틀어지는 건 당연한 거니!).


 양육에 있어서 아직 '아날로그'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감성분석과 휴머노이드가 대중화되어, 아이의 감정을 수시로 읽고 대응해 주는 시대가 오기'전 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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