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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랑카 Jul 08. 2024

노가다는 나의 벗

01    끙끙거리며 빈칸을 채운 서류 전형

2023.12.8. 며칠을 끙끙거리며 빈칸을 채우고,  1차 전형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떠나보냈다. 단 한 명 선발하는 EPS토픽 한국어 교육 분야에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해도,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속담을 철석같이 믿어 보는 법. 그렇게 해서 서류가 작성되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했던가 (서울의 봄에서) 그렇다나 역시 실패한 노가다 탈출기는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최종 선발전에서 발탁된다면, 이 연재도 공개되어 벗들과 함께 살아남을 것이다. 고백하지만 한차례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잘 봤다고 자평한 면접에서 떨어지고 보니, 자만감은 온데간데없고 탈출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겨울을 거쳐 초여름까지또 한 차례의  EPS토픽 한국어 교육 대상자를 선발하는 과정에 응시, 겨우겨우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이 노가다 탈출기가 성공한다면, 이 몸은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 해변에서,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외봉사단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상기 본인은, 2015년 태국 수린 라차팟 대학에, 2018년 몽골 울란바토르 국립 과학 기술대학에, 한국어교육 단원으로 파견되어 , 주어진 계약 임무를 나름 열심히 수행하였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해외봉사단에 문을 두드리는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어 교육의 기회가 제도권 학교에서의 교양과목 내지는  한국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범위를 벗어나, 절실하게 요청받고 있는, 한국행 일자리의 첫 순서인 EPS 토픽을, 지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한국어 교육 단원이 파견되는 대상 국가의 대학 교육은, 지역사회의 일원들과 함께 발전하는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에, 코이카 단원이 EPS 토픽 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라 사료됩니다. 본인은 첫 파견부터 시종일관, 한국어 교육을 가장 간절히 원하는 집단과의 조우를 희망하며, 소속된 대학과 현지 사무소의 허락을 받아, 파견된 한국어 단원들과 함께 지역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울 정도로 실패한 사례로 기록, 보고하였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보건대, 무상교육의 폐해 즉, 누구도 간섭하지 않으며 물질적인 피해도 없는 교육방식을 너무 쉽게 간과한 결과일 것입니다. 원컨대,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 진다면, EPS 토픽 기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펼쳐볼 수 있기를 희망하여,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경험과 그로 인한 영향 또는 변화는 무엇입니까?


살면서 어느 한순간, 중요치 않은 시간이 없었다면 조금 과장된 서술일까요, 가급적 안타깝고 우울했던 기억들은, 잘 잊어버리는 성격입니다. 좀 더 솔직한 표현으론, 애써 무시하고 스스로 위로할 뿐이지만요. 어쨌든, 즐겁게 실수하고, 난감함에 어쩔 줄 모르던 낯선 곳에서의 경험, 힘들어 내가 왜 여기 온 거야 하며 울부짖을 때, 감싸주었던 현지인들의 따뜻한 위로등, 제 삶의 한 부분을 장식했던 해외 여러 나라에서의 생활은, 저와 가족들 모두에게, 여러 부문에 있어 삶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역 이민을 단행, 다시 한국 땅에 정착을 하고, 힘든 생활을 감내해야 했지만, 좋든 싫든, 알게 모르게, 글로벌한 세계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 어느 순간, 뒤를 보니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민 초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단히 스마트한 나라로 변모해 감을 또한 실감하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일찍이 이렇게까지 국가의 기상이 높았던 적이 없던, 당대 최고의 국가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적어도 저는 우쭐해 있기도 합니다. 어느 한편, 진득이 한 터전에 뿌리를 박고, 그 척박한 토양에 몸을 맞추며 그곳에서 뭔가를 일궈내는 사람들이 내뿜는 아우라도 대단히 소중한 자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균형 잡힌 생각과 행동이 요구되는 다문화 사회에, 편견 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지원직종과 관련하여 다른 지원자와 차별되는 자신만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경험에 비추어볼 때, 파견된 한국어 교육 단원들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해, 젊은 20대부터 은퇴한 노년층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교육 집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의 자신만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시니어가 갖지 못한, 따라갈 수 없는 열정과 때로는 두려움 없이 수행하는 무모함조차도, 젊은 단원들의 무기며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젊은 단원들과의 협력 사업에서 시니어층이 담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면, 드러나지 않게 열정을 조율하고, 마무리가 필요한 부분에 지혜를 보태주는 것으로, 수차례에 걸쳐 사업을 수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깨달은 가르침이 있다면, 젊은 단원들에겐 때로는 시니어의 경험도 필요하고, 시니어층에게는 또 다른 경험을 선사받아, 주어진 파견 생활이 즐거웠던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시니어 교육 단원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요? 그렇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답하겠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자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수요자들에게, 효과적인 한국어 교육을 수행할 선생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의 블루칼라 실태를 제대로 알고 있으며, 그것을 분야별로 명쾌하게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하고, EPS 토픽 시험을 넘어, 한국에서의 안전교육 실태를 경험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선생이 요구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지원직종과 관련 있는 교육, 훈련, 연구 등의 경험과 파견국에서 그 경험의 활용방안은 무엇입니까?


 십수 년 전, 한국어 교원이 되기 위한 우연한 기회를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에 만났습니다. 내용인즉, 가이드 겸 포터로서 고용된 네팔 청년으로부터, 한국행을 절실히 원하는데 그 기회를 잡기 어렵다 하면서, 당돌하게 도와줄 수 있는가? 하는데 저로서는 방법이 없었지요. 그 뒤 네팔에 다시 밟을 순 없었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한국어 교원이 되었습니다. 그 뒤, 해외 한국어 교육단원으로 파견돼, 필요한 교재를 선정, 분석하고, 교안을 PPT자료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연재, 미리 예습과 복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봤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부분에서 실패한 수업인지를 일깨우기 위해 수업일지를 작성, 여러 나라에 파견된 교육 단원들과 블로그를 통해 공유했던 수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의 일천한 교육 경험에 따르면 무조건, 수업은 지루하지 않으며, 가능한 모든 수업자가 같이 참여해야 하며, 두려움 없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면 성공한 수업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혹여 기회가 주어진다면, 수업에 활용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바탕 신나는 수업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해외봉사활동 기간 동안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파견된 국가에서 이벤트성 사업 대신, 다음과 같은 화두를 갖고 주어진 파견 기간을 소비하겠습니다. 우선 첫째로, 열심히만 쫓아오면 누구라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족집게 EPS 토픽을 선보이겠습니다. 그 방법은 외국인을 가르치는 여러 기법 중, 효율적인 모델을 나름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그곳에서 만난 한국행 희망자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네트워크를 가동해, 사업장의 시설과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있는 관련 공무원, 노무사, 행정사등과의 연결을 주선해 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경험을 통해 얻은 한국에서의 안전사고 예방법을, 틈틈이 가미하여 , 그들이 안전하게 한국에서의 생활을 마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각별히 주지시켜,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해외봉사활동을 마친 후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살아온 날이 길어, 남은 시간을 가름할 수 없는 시니어 층입니다. 저의 신조처럼 굴욕을 당하느니 분투 중에 쓰러짐을 택하겠다는 다짐으로 세상을 주유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미래를 유추해 보건대, EPS토픽에 특화된 한국어 교육을 계속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저의 계획이 어떻게 변모할지 저로서는 예단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향후 무슨 일에 종사하든, 그들과 맺어진 인연을 기회로 삼아 한국에서 잘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와 관심을 늘 갖고 있겠습니다. 한국어 교육단원으로 파견된 시간이 저에게도 대단한 기회였고, 살면서 만날 수 있었던 큰 행운 중 하나였다고, 굳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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