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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Sep 13. 2024

동남아 여행 80여 일차, 어느 단상

 2024년 6월 23일, 대한민국 부산에서 출발해 베트남 호찌민, 캄보디아 프놈펜, 씨엠립, 라오스 팍세, 비엔티안, 방비앵, 루앙프라방, 태국 치앙라이, 치앙마이, 방콕, 그리고 싱가포르를 거쳐 필리핀 세부에 도착한 지 3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 현재 시각은 현지 기준 12시 39분을 지나고 있다. 수년간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다 자기계발 휴직계를 내고 세부로 어학연수를 온 친구의 숙소 거실에서, 친구는 먼저 자고 혼자 필리핀 국민 맥주인 Red Horse를 마시며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딱히 볼 것도 없고 심심하기도 해 여행 초반부에 열심히 기록하다 그만둔 브런치 스토리에 들어왔다.


 씨엡립 앙코르 유적 탐방기를 적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글 쓸 여건이 힘드니 잠시만 쉬어야지, 곧 계속 이어가야지, 조금만 있다 마저 적어야지를 그동안 몇 번이나 되뇌었던가. 게으르고 미루기를 반복하는 천성인지 습관인지는 이번에도 극복하지 못했구나, 내가 그럼 그렇지라고 체념과 자기 비하, 합리화를 하며 미루고 미루기를 여러 번. 이틀 뒤 태풍이 오는지도 모른 채 예약했던 보홀행 배편과 숙소비를 홀라당 날린 속상한 마음을 맥주로 달래다가 너무 할 게 없어서 주절저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을 계기로 중단된 여행 기록이 다시 이어졌으면 좋겠다. 허공에 날린 돈의 값어치 이상은 분명할 테니.


 여행을 하며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참 많았다. 생생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 하지만 잘 쓰기는 역시 힘들었다.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그것을 수정하고, 거기다 덧붙이고, 끼워 넣고 한 글을 다시 읽은 뒤 또 수정하고, 그러다가 지치면 맘에 들지 않아도 게시하고. 게시한 뒤에 읽어보곤 앞의 과정을 반복하고. 처음엔 마냥 재미있었던 글쓰기가 점점 부담과 숙제로 다가왔다. 전문 작가도 아닌 주제에 무슨 욕심은 그렇게도 많은 지. 그 주제넘은 욕심이 글쓰기의 재미와 기록의 소중함을 앗아가 버린 주객전도의 상황. 기록을 중단하니 여행의 질마저 떨어지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술이 들어가서인가 술술 털어놓게 되는 속마음, 조금은 후련해진다. 돈 받고 쓰는 글도 아니고, 어디에 걸릴 글도 아닌 자기만족일 뿐인 여행기지만 두 달이 넘게 글쓰기 중단에 대한 어떠한 부채의식을 갖고 지냈던 것 같다. 얼마 후 여행은 끝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 여행이 끝나기 전에 이런 글이나마 쓰게 되어 다행인 듯싶다. 벌써 새벽 1시 30분. 오전 10시 전까지 지프니와 도보로 50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의 오션젯 매표소까지 가서 예약한 배편을 환불 요청해야 하기에 이젠 잠들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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