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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윤 Oct 28. 2020

모유수유,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애증의 모유수유, 끝없는 고민의 연속

 '출산도 어렵지만 모유수유는 더 어렵다는 것을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은거야.' 


 모유수유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미리 알았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텐데 말이다. 출산만큼이나 모유수유에 대해 미혼 및 기혼 성인 남녀들이 모유수유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꼭 알았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몰랐던 첫째 때는 조리원에 있으면서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모유수유를 위해 엄청 노력했었다. 3시간 마다 수유 콜은 다 받았지만,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아 아예 아이를 내 방으로 데리고 왔다. 당시 남편은 사정으로 나와 함께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되니, 조리원에서 정작 몸조리는 못하고 몸을 혹사시켰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는 완전히 방전되어, 체력에 한계가 왔다. 자연스럽게 직수 횟수가 줄어들었고, 100일쯤에 분유로 넘어가게 되었다. 첫째의 경우, 출산 초반에는 완전 모유수유를 꿈꿨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채 힘들게 100일을 보내고 나니 모유수유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둘째는 조금 달랐다. 모유량이 많지 않으면 초유만 주고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편하게 시작했다. 첫째 때는 완모(완전 모유수유)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면 둘째는 편안하게 마음먹었다. 더불어 코로나 상황 등 여러 이유로 집에서 몸조리를 하게 되었다. 남편도 열흘 간 출산휴가를 받아 나를 챙겨주었다.


 신생아 2주 시기는 그리 크게 손이 가지 않았다. 잠을 계속 자다가 3-4시간마다 일어나서 그때마다 젖을 물렸다. 그리고 부족 분은 40ml 정도로 양을 정해 분유로 보충해주었다.  그리고 모유 증가에 도움이 된다는 제품들을 초반에 먹었다. 그렇게 2주를 보내니 신기하게 모유가 많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태생적으로 모유수유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되니 신기하였다. 그래서 양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분유를 조금씩 보충하며 모유 7: 분유 3 정도로 계속 젖을 물리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나의 체력적 한계로 인해 모유수유를 중단할 이유를 나도 모르게 찾고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의 체력적 한계로 인해 모유수유를 중단할 이유나도 모르게 찾고 있었다. 실제로 모유수유가 제대로 정착될 때까지는 밤낮 상관 없이, 3시간마다 아니면, 심지어 그것보다 더 짧은 텀으로 일어나야 했기에 잠이 많은 나는 이 부분이 상당히 힘들었다. 더불어 젖이 돌 때 드는 느낌이 있는데, 이 느낌은 썩 유쾌하지 않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그 느낌. 찌릿거리면서 매 수유 시간 마다 돌아오는 느낌인데 어째 적응이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엄마는 내가 출산 휴가 90일 후, 복직을 하니 그때는 어차피 모유수유를 못하지 않겠냐고 했다. 복직을 하게 되면 아이를 친정이나 시댁에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며 모유수유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모유수유를 언제 그만둬야 하나 머릿속으로 고민했다. 첫째 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모유수유였지만 모유가 나오는데도 내가 힘드니 간사하게도 분유를 줄까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찰나, 둘째 50일 경, 제대로 된 핑곗거리가 찾아왔다. 그날 밤, 나는 모유수유를 하고 나서 '모유수유, 이제 좀 열심히 해봐야지.' 싶은 마음에 유축기로 양쪽 모유를 비워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 옆쪽이 찌릿거리고,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머리도 아픈 것 같았다. 이상해서 바로 인터넷에 찾아보니 유선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머리도 아프고 열이 나서 우선 집에 있는 진통제를 먹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계속 열이 나고 몸에 힘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계속 열이 나고 몸에 힘이 없었다. 가슴을 만져보니 너무 뜨거웠다. 둘째를 맡길 데는 없어서 둘째를 데리고 갔다. 마침 산후 검진이 있어 산부인과로 향했다. 몸이 안 좋으니 그 날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렀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마주했다. 자궁경부 검사를 마치고 나는 바로 유선염 증상을 말씀드렸다. 유방외과를 권하셨지만 지금 너무 아프고 힘들어 더 진료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항생제 처방을 부탁드렸다. 단유 약도 함께 말이다.


 유선염에는 아이에게 자주 물리는 것이 좋다고 하여 아파도 직수를 멈출 수 없었다. 유선염 증상이 한 번 찾아오니 나는 모유를 끊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얼른 가능하면 단유를 하고 싶어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대부분 유선염이 완전히 낫고 단유 하는 것을 추천하여 조금 더 기다렸다. 항생제를 처방받아 5일을 복용했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었다. 그 이후가 되니 조금씩 괜찮아졌다.


 나는 드디어 단유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남편은 유방외과를 한 번 가보고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 했다. 그 말에 동의하여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께 나의 상태를 여쭈었더니 항생제 복용은 멈춰도 된다고 하셨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부분을 여쭈어보았다. 자연 단유를 하면 유선염 증상이 재발하진 않느냐 물었더니 약으로 단유 하든 자연 단유 하든 상관없다고 하셨다.


 남편에게 의사 선생님과 상담한 내용을 알리고 나는 단유를 선언했다. 처방받았던 카버락틴 정(일명 단유약)을 꺼냈다. 유선염 치료 기간 동안 충분히 단유에 대해 고민했다고 생각해서였다. 사실 병원에 다녀오기 전에도 자연 단유법을 항생제 복용이 끝나갈 때 즈음 시도해 보았지만 생각처럼 양이 드라마틱하게 줄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유축을 하고 유축 모유를 아들에게 직접 수유했다. 그런데 눈에서 눈물이 났다. 갑자기 웬 눈물인가 싶었다.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그렇게 단유 생각을 했으면서. 막상 잘 나오던 모유를 끊는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이때다 싶어 약을 삼켰다.


 12시간마다 4번 복용하는 약이라 그렇게 3번 복용을 했다. 복용을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 약을 복용할 때 또다시 재수유에 대한 고민이 고개를 들었다. 이미 약을 먹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는 다시 미친 사람처럼 인터넷에 재수유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관련 글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초기에 모유수유를 하듯이 더 열심히 시도해보라는 얘기가 전부였다.


 나는 단유를 하게 되니 알게 되었다. 계속 해서 모유수유를 하고 싶던 게 바로 나의 진심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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