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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BC vs ABC

미중 AI전쟁의 본질: '공대에 미친‘ 중국, 실리콘밸리도 접수

by 고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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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친구가 “메타에서 최근 게재한 것”이라며 한 논문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줬습니다. 제목은 ‘Deep Think with Confidence (DeepConf)’로 메타와 UCSD연구진이 함께 쓴 거더라구요.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추론 성능과 효율성을 모두 향상시키는 접근법에 대한 논문이었습니다.

논문 내용이야…어려우니까, 그건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에게 맡기자구요. 제가 주목한건 이들 저자의 이름이었습니다. 1저자 후궈쑤어, 공종저자 샹원 리, 쉬에즈 왕, 모히트 반살, 저우 유, 데니 저우. 이름으로 인종과 국적을 예측하는게 다소 편협할 순 있지만, 도무지 토종미국인의 이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중국인이거나, 중국계 미국인일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미중간 AI경쟁이 치열합니다. 두 나라를 빼고는 한국이든 영국이든 프랑스든 모두 다 공동 10위쯤 하는 상황에서 미국 중국만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오픈AI의 챗GPT로 대표되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우세한가 싶었는데, 곧바로 올해 초 중국은 딥시크로 반격해왔습니다. 고립되지 않은 미국이 기술개발에 유리할까싶다가도 국가주도로 데이터니 돈이니 다 특정 산업에 ‘몰빵’해주는 중국이 당연히 더 잘할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소프트웨어야 미국이 잘하겠지만, 로봇·자율주행과 같은 하드웨어 역량은 중국이 더 잘하니 정말 이 싸움의 끝을 예측하기 어려워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최첨단 칩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AI 행동 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중국을 적” “동맹국에만 AI패키지 수출”같은 말까지도 넣었는데요. 미국이 중국을 옥죄고 깎아내리고 공격하면 공격할수록 “중국이 진짜 잘하는구나!” “미국이 진짜 조마조마하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요. 사실 미중 AI경쟁은 ‘ABC’(America born Chinese)와 ‘CBC’(China born Chinese)의 싸움입니다. 어떤 관점에선 중국 대 중국인 셈이죠. 서두에 소개한 메타 논문에서 보시다시피 미국에서 AI를 연구하는 상당수의 공학자와 과학자는 중국인이거나, 중국계이거나, 적어도 중국인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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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가 초지능을 개발하겠다며 최근 수백~수천억을 들여 인재를 모셔와 꾸린 ‘슈퍼인텔리전스 랩’의 라인업을 봐봅시다. 외신을 통해 약 44명의 팀원 명단이 유출됐는데, 이 중 50%가 중국계였습니다. 이 트림팀의 수장인 알렉산더 왕 전 스케일AI 창업자 역시 중국계 미국인입니다. 부모님 모두 대만 또는 중국 본토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 이민 2세대에요.


AI학회에서 ‘미국’ 국적으로 출품되는 여러 논문 역시 중국계 연구자들의 것이 많다고 해요. 한 컴퓨터 비전 분야의 한국 교수님께서 “학회에 가면 대체로 미·중 논문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미국 논문의 상당수는 중국인이 쓴 것”이라고 하신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러면서 “중국은 이미 AI의 모든 분야에서 너무 잘한다”고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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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업계를 중국계가 이끌어간다는 것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저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메타, 구글같은 테크기업에 놀러가면 백인보다 아시아인이 훨씬 많아요. 빅테크 CEO를 비롯해 주요 임원들, 좋은 스타트업을 키워낸 창업자들과 관련한 기사를 쓰면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애플에 다니는 한 AI연구원님은 저한테 팀원이 12명인데, 본인을 빼고 다 중국인이라고 하셨어요. 아마존의 AI분야 박사급 직원 역시 저에게 매니저도 중국인, 동료도 대부분 중국인이라면서 일반적인 학·석사급 소프트웨어엔지니어는 인도인도 많지만, 박사급 AI연구원은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했습니다.


공신력 있는 자료로도 이는 증명됩니다. Global AI Talent Tracker 2.0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관에 소속된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 중 약 75%가 미국·중국 출신이라고 합니다. 올해 ITIF 보고서도 미국 기관에 있는 AI 연구자 중 38%가 중국 출신이라고 했어요. 네이처는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미국인(Asian Americans)’이 실리콘밸리 기술직 인력의 약 41%를 차지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이런 얘기들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 “미국 AI기술 다 중국으로 넘어가는거 아냐?”. 미국 빅테크에서 초격차기술을 연구하던 중국인들 알고보니 다 중국 스파이라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사실 그렇진 않아요. 대부분은 미국에 오래 거주하거나 시민권·영주권을 가진 이민 2세, 3세입니다. 미국에 연구 커리어를 두고 활동하는 글로벌 인재들이 많고요. 실제 중국에서 쭉 나고자라 공부까지 중국에서 한 인재들은 미국에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빅테크 직원은 “도리어 미국인들보다 중국을 더 싫어하는 중국계 연구자도 많다”고 했어요. 물론 ‘기술 유출’같은 사건이 아예 없는건 아니라서 반도체·AI같은 민감한 분야에서 미국 정부는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해 국적이나 사상을 더 엄격하게 보고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갈등의 본질이 결국 중국 대 중국이라는 것은 놀랍고 새로웠습니다. 중국인이 그 수 자체가 많은것도 이유일 것이고, 근거가 없는 소리일 수도 있으나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인들이 특히 과학과 수학 같은 분야에서 두각을 주로 드러내기도하잖아요. 또 중국 정부가 1980년대부터 유학생 파견정책을 시행하고, 미국에 많이들 자리잡은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저는 중국인과 중국계의 ‘공대 선호’에 특히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의대에 미친 한국, 공대에 미친 중국”처럼 공학자나 엔지니어들에 대한 인식이 좋고, 문화적으로 누구나 선망하니 유능한 사람이 몰릴 수밖에요.

실리콘밸리의 절대 다수인 중국인들은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며 함께 발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또다른 빅테크 직원이 자신이 처음 입사했을 때를 회상하며 해주셨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저녁약속도 회식도 없어서 ‘미국회사는 역시 다르구나’ 생각했는데, 나 빼고 중국인들끼리 회식하고 있더라”. 중요한 회의를 할 때는 중국인들이 중국어로 대화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구글에서 일하는 제 친구는 “실리콘밸리에 라틴계가 많다고 해 제2언어로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했지만, 취업하고 그냥 중국어나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씁쓸해하며 말하더군요. 잘하니, 빅테크와 좋은 학교에 중국인이 늘어나고, 또 잘해지고, 이 업계를 ABC들이 결국 선도하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말 부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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