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테크 왕국’ -1
미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테슬라 다이너에 다녀왔습니다.
지난달 테슬라가 문을 열고 연중 무휴로 운영하는 곳인데 차량 판매점도 아니고 충전소도 아닙니다. 전기차 충전도 하고,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쉴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에요. 먼저 테슬라를 세워놓고, 슈퍼차저로 충전을 시작하면 차량 내부 디스플레이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이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이버트럭' 박스에 서빙되는 음식을 받구요. 내부 공간이나 테슬라 굿즈, 테슬라 로봇과 같은 전시품을 볼 수도 있어요. 외벽 대형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공간은 어느 한 말로 정의할 순 없어서 테슬라의 쇼룸, 브랜드 체험 공간정도가 가장 맞는 말일 것 같습니다.
소셜미디어 X를 보유한 회사답게, 짧고 자극적인 메시시로 시장에 유행을 만들어내는 일론 머스크가 CEO인 곳답게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곳도 아주 핫했습니다. 체험을 하러온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하고, 언론사 인플루언서 할 것 없이 테슬라 다이너 후기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오픈 한 달째, 제가 갔을 땐 좀 횡하더라고요. 차량은 한 30대 정도가 있었고, 1~2층을 통틀어 식사 중인 손님은 20명 내외였습니다. 픽업을 온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긴 했지만, 소셜미디어에서 보던 그런 붐빔은 전혀 아니었고, 어떤 시기엔 손님보다 직원들이 더 많더라구요. 소문난 잔치에...먹을 것이 없다...!
다시 강조하면 이곳은 브랜드 체험 공간입니다. 그럼 이곳에서 체험한 테슬라는 어떤 회사였을까요.
테슬라 다이너에서 보여지는 테슬라는 더 이상 전기차 회사가 아녔습니다. 우주 회사였고, AI회사였고, 엔터테인먼트회사였고 또 로봇회사이기도 했어요.
외관을 보겠습니다. 테슬라 차량이나 사이버트럭 등도 워낙 미래적이고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가진 경우가 많지만, 이 다이너는 확실히 미래세계 느낌이 납니다. 은색+조명+둥근 모양의 외관과 흰 내부 모습이 마치 우주선을 연상합니다.
자연스럽게 일론 머스크 CEO의 '스페이스 X'와 화성 테라포밍 프로젝트가 생각납니다.
핫도그 밀크셰이크를 들고 차량 안 또는 테슬라 다이너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체험은 미래 차=엔터테인먼트 플랫폼, 테슬라=미래 차의 선두주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더 발전하면 차량은 '이동하는 사무실' '이동하는 영화관'같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즐기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운전석이 없는 차량, 4면이 스크린으로 뒤덮인 차량같은 미래 차에 대한 계획도도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은 외벽의 스크린이나 테슬라 내부 작은 디스플레이로밖에 감상이 어렵지만, 엔터테인먼트가 주 요소가 될 미래 차 시장을 테슬라가 선점하겠다는 야심이 엿보였습니다.
벽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었습니다. "Tesla Mission. Accelerating the world's transition to sustainable energy".
전기를 넘어 미래 에너지는 이미 테슬라의 중요한 사업군입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태양광 패널 등 에너지 사업을 실제 확대하고 있고, 지난해 테슬라 에너지 부문 매출은 약 101억달러로 전년 대비해서 67%나 증가했습니다.
곳곳에 사이버트럭에 굿즈도 많았습니다. 음식이 서빙되는 밀박스가 사이버트럭 모양이구요. 사이버트럭이 그려진 티셔츠나 핀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테슬라는 이 사이버트럭을 미래 로보택시로 밀고있습니다.
로봇도 있었습니다. 오픈 초기엔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가 팝콘을 퍼주기도 했다고 하는데, 제가 갔을 때는 없었어요. 그냥 벽에 로봇이 전시돼있었습니다. 실제 자동차 제조를 하고, AI 소프트웨어 기술도 있는 테슬라는 이 두개를 접목한 로봇개발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테슬라 다이너에서 본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 아녔습니다. '종합 테크 회사'였습니다. AI, 로봇, 에너지, 인프라, 자동차, 엔터테인먼트까지 다 하는 풀스택회사 같았어요.
최근 회사들 보면 AI기술을 필두로 밸류체인 전체를 다 완성하는 종합회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AI가 어느 한 산업군만 바꾸는게 아니라 다 바꾸니까 기본 정체성을 뛰어넘는 전방위 플레이어가 되는 것입니다.
'서치엔진'이 메인이던 구글은 AI기능을 앞세워 자사 스마트폰인 픽셀폰이나 구글글라스같은 하드웨어 사업군을 강화하고 있고, 자급자족하기 위해 AI칩 TPU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보니 아예 다른 클라우드 회사에 팔 생각도 하고 있다고합니다.
아마존은요? 이커머스 회사가 이제 AI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같은 클라우드사업을 앞세운 종합 테크 회사가됐고, 인스타 페이스북 가진 메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대 테크 왕국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국가 중에선 기껏해야 미국/중국/EU정도가 세계에 주요한 플레이어인것처럼, 일부의 거대 거대 회사들이 다 해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국가의 GDP정도는 거뜬히 뛰어넘는 규모의 소수 기업이 주요 플레이어가 되고, 이 기업들이 만든 기술과 인프라를 잘 이용해 빨리 성장하는 아주 소규모의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이렇게 산업이 양극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한 우물만 열심히 팠거나, 애매한 규모의 기업들은 설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926743?type=journali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