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래원 Apr 20. 2024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묘비명

묘비명 



석수장이에게 이렇게 새겨 달라고 부탁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저편의 어둠 속에서도

네가 사랑했던 것들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어눌하게 새겨진 글자 속으로 

비바람이 다녀가고

그럴 때마다 말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누군가 심어 두고 간 튤립이 흙 속에서 

손을 내밀 듯 꽃을 피우고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의 눈망울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흙 속에 뿌리내린 네가


*릴케의 <<기도 시집>>에서


나희덕 ( 1966 ~ )



 시의 화자는 누구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석수장이에게 부탁했을까? 이 시가 실린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2부에는 세상을 떠난 '너'라는 존재를 애도하는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시인의 혈육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버지의 묘비명을 석수장이에게 부탁했다. 아버지 당신 이름과 자식 삼 남매,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손주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평장을 하니 세로로 세우는 큰 비석이 어울리지 않았다. 작고 납작한 비석에는 인생의 발자취까지 써넣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생전의 아버지 성품이라면 이번에도 그만하면 되었다, 하실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했다. 그렇다. 고인의 이름만 보아도 자식은 아버지의 육신과 영혼, 인생을 모두 떠올릴 수 있다. 우리들 이름을  써넣은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당신의 유산인 우리가 살아가는 한 아버지의 생명은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을 욕되지 않게 살겠다는 약속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계속 사랑하고 그리워할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아버지 묘비에 우리의 말을 적은 것이다. 시인은 묻힌 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릴케의 시에 나오는 문장을 새겨 달라고 부탁했다. 

                            

                                  내 눈빛을 꺼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가 저편의 어둠 속에서도 사랑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하는 말은 고인을 위해서도, 남은 자들에게도 위로가 된다. 누군가 묘지에 심어 놓고 간 튤립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나희덕 시인의 시 중에는 흙과 뿌리를 노래한 시들이 여럿 있다. 터전인 연한 흙이 아낌없이 내어 주어 강한 생명력을 얻은 뿌리는 땅 속으로 힘차게 뻗쳐 나간다. 죽은 이의 분신인 튤립은 흙 속에 뿌리내려 꽃을 피워 내고 꽃의 눈망울은 죽은 자의 눈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버지 목소리로 마음속 묘비명을 생각해 본다. 


 나의 눈빛은 네 앞에서 꺼져 갔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보고 있는 너를 볼 수 있단다. 



  


매거진의 이전글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