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의 시작
지금은 내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을 받으셔서 미국에서 몇 년간 거주했었다. 내가 살던 동네 근처 쇼핑몰 한 구석에 스포츠 카드를 판매하는 샵이 하나 있었다. 매 주말이면 부모님이 주신 용돈과 심부름을 해서 모은 돈으로 농구나 야구 카드를 구입하곤 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샵 입구에 놓인 장식장 안의 카드들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역동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 다양한 선수들의 카드가 즐비 했지만, 누가 뭐래도 나의 원톱은 시대를 막론한 최고의 농구 아이콘 마이클 조던 이었다. 차별화 된 농구 실력으로 상대 선수를 놀리듯 혀를 내밀고 있는 카드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아저씨, 이 카드 얼마에요?”
나를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저씨는 내게 손가락 10개를 펼쳐 보였다.
“마이클 조던 루키 카드 100달러에 줄게”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했던 내가 살 수 있는 가격의 카드가 아니었다. 결국 2달러 짜리 팩 두개를 사서 곧장 그 자리에서 뜯었다. 비록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은 아니었지만 그의 팀 동료 스코티 피펜(Scottie Pippen) 카드가 나와 너무나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지나 내가 사지 못한 100달러 (당시 약 9만원) 짜리 마이클 조던 카드는2021년 1월말에 이베이에서 35만달러 (약 3억9천만원)에 팔렸다. 물론 카드의 보존 상태가 최상급을 받아야만 가능한 가격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쉽기만 하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스코티 피펜 카드는 검색해보니 동일한 날짜 기준 99센트에 팔렸다.
안타깝게도 어릴 적 마이클 조던 루키 카드를 구입하지 못했던 것이 큰 한으로 남아있다. 이제 가격이 안드로메다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카드를 구입하지 못하고 2년이 지났을 무렵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그 날도 함께 스포츠 카드를 수집했던 친구와 모아놓은 푼돈을 들고 스포츠 카드 샵으로 향했다. 탑스(Topps)라는 전통적인 스포츠 카드 브랜드에서 발매한 1996-97 시즌 농구 카드 시리즈를 고르고, 제발 좋은 카드가 나와 달라는 바람과 함께 팩을 뜯었다. ’96 NBA Draft Redemption 13’이라고 적힌 카드 한 장이 있었다. 이는 1996년 13번째로 신인 지명을 받은 선수의 카드를 향후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13번이 누구야?”
우리 옆에 있던 다른 손님이 오랫동안 간직할 만한 좋은 카드가 나온 것 같다며 축하의 말을 건네며 그 카드의 주인공은 바로 ‘코비 브라이언트’라고 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1996년에 13번째로 샬럿 호네츠의 지명을 받고 곧바로 LA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된 후 20년간 단일팀에 몸 담았다. 이처럼 오랜 기간 원 팀맨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장기간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선수는 전 스포츠 리그를 통틀어도 매우 극소수이다. 그는 총 18번의 올스타에 선발되고 리그 및 NBA 파이널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수상한 레전드 중의 레전드였다.
나는 이 카드가 내게 온 후부터 현재까지 오랜 추억을 담고 24년간 잘 간직하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후 3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스포츠 카드에 손을 대기 전까지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한 장의 카드였다.
재미있는 투자는 없을까?
우리 부서장과 나는 19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나지만, 누구보다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그와 함께 첫 해외 출장을 떠났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그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는 우리가 공유하는 취미가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포츠 카드를 각자 수집하는데, 나는 NBA 카드를, 그는 MLB 카드를 중심으로 수집 활동을 하고 있었다. 회사 업무 이외에 대화 주제는 우리가 좋아하는 농구 및 야구선수에 대한 이야기와 각종 기록을 포함하여 우리가 응원하는 팀에 대한 시즌 분석 및 스포츠 카드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추신수 선수의 팬이었고, 그는2002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전설적인 유격수 오지 스미스(Ozzie Smith)의 팬이었다. 김광현 선수가 카디널스와 계약이 발표된 다음 날, 내가 쓰고 있었던 텍사스 레인저스 모자를 벗기고 선물이라며 내게 카디널스 모자를 씌워줬던 그날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아들에게 각종 스포츠 룰을 설명해주고 팀과 선수들의 등번호를 맞춰가며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에 종종 스포츠 카드 팩이나 박스를 구입하고, 운이 좋으면 간혹 고가의 카드가 나오기도 했다. 솔직히 카드 가격을 떠나 어릴 적 추억을 내 아이와 공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럼에도 고가의 카드는 안전하게 맡아주겠다는 명목으로 내가 갖고, 저가의 카드는 모두 아들에게 주었다.
이러한 소비로 카드 수가 늘어갈 수록 동일한 카드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지인이나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지만 낱장의 싱글 카드를 되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어느 수집가의 블로그에서 읽게 되었다.
‘나도 그럼 팔아볼까?’
취미,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
고기를 잡으려면 강이나 바다로 가라고 했던가?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구하기 위해 스포츠 카드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장은 동일한 취미를 공유하는 많은 수집가들이 모이며 자신의 수집 방향이나 노하우 등을 공유하곤 했다. 싱글 카드를 어느 채널을 통해 거래하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얼마만큼 수익을 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행사장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홀로 카드 팩을 뜯고 있는 60세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의 카드 수집 목적 및 내력부터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거래 방식 등에 대해 듣게 되었다.
“자네 주식 거래 해봤나?”
“네, 주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얼마 안됐지만 조금씩 공부하며 투자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카드도 주식시장과 매우 유사해. 주식시장에서 아마존이나 테슬라 같은 기업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비싸잖아. 스포츠 카드도 마찬가지야. 브랜드의 시리즈, 종목, 선수, 포지션, 소속팀 벨류 등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있어. 그리고 시기에 따라 가격의 오르내림도 있어.”
그와 30여분간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을 LA다저스 팬이라고 소개했던 그 아저씨는 자리에서 막 일어서는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마지막 조언을 하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꼭 취미 활동을 하시게. 취미가 있으면 친구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네. 그리고 취미를 통해 인생의 재미도 느낄 수 있어. 반가웠네, 아미고(친구)!”
내가 주식에 투자하면서 공부한 개념들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은 정말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취미를 통해 수익 창출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 카드 시장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스포츠 카드 시장, 규모 및 거래 등에 관해 리서치를 시작했다. 결국 본격적으로 스포츠 카드 수집을 넘어 투자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시장만의 독특한 공급과 수요의 법칙을 이해하게 되면서 거래를 통한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병원비 청구서에 얼마가 찍힐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 가는 것을 미룰 필요가 없을 정도의 본업 외 추가 수입이 생겼다. 즉 또 하나의 수입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